집밥이 좋아? 외식이 좋아?
시댁 행사로 연휴 중 하루를 동서네 집에서 지내게 되었다. 결혼 햇수로 15년 동안 동서네 집에서 자는 건 이번까지 세 번째다. 내 집이 아닌 다른 집에서 잔다는 건 적어도 두 끼 이상을 신세 지게 되는 일이므로 살림을 맡아하는 안주인에게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그걸 알기에 방문은 하더라도 자고 오는 일은 드물었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가 없었다.
밤늦게 까지 놀던 아이들은 아침이 온 줄도 까무룩 모르고 잠에 취해 있었고 주방은 아침부터
그릇부딛치는 소리로 분주했다.
작은방 하나를 나에게 통째로 내줬기에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깼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조용히 쉬고 있던 나는 주방 소리에 이불을 대충 정리하고 얼른 나가보았다. 동서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침 준비 같이하자고 뭘 하면 되겠냐고 묻자 동서는 밀키트라 냄비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된다며 마다했다. 아침을 알리는 주방 소리에 깬 아이들이 하나 둘 거실로 나왔다.
아침 메뉴는 인도커리에 난을 곁들여 먹는 요리였다.
평소 인도요리를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우리 가족은 생소한 메뉴라 그 맛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흔히 먹는 카레와 얼마나 다르겠나 생각하며 아침식탁에 둘러앉았다.
밀키트에 닭가슴살과 양파를 듬뿍 추가해 만든 카레는 담백하고 푸짐했다.
달군 프라이팬에 살짝 구워진 따끈한 난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훌륭한 식사였고 커리를 올려 먹었을 땐 처음 맛보는 풍성한 풍미가 입속을 즐겁게 해 주었다. 인도 커리와 카레는 같고도 달랐다.
아이들과 나는 아침부터 훌륭한 식사를 준비해 준 동서에게 정말 맛있다며 연신 감사를 표했다.
"동서, 이거 어디 거야? 나도 좀 알려줘~ 너무 근사하고 맛있다. 인도 커리 전문점에서 외식하는 거 같아"
"그쵸. 이거 처음 사봤는데 진짜 간단하고 맛있는 거 같아요~ 호호"
식구들이 모두 맛있다고 칭찬하자 동서도 한시름 놓은 얼굴이다.
요리를 준비한 입장에서 식사에 대한 감사표현이 얼마나 소중한 피드백인지 잘 알기에 '외식하는 것 같다'라는 나름의 최고 찬사를 보낸 거였다. 그런데 그때 이야기를 듣던 큰 딸 사랑이가 한마디 보탰다.
"맞아요, 작은엄마. 이건 평소에 먹던 카레랑은 달라요. 진짜 맛있어요! 근데 사람들은 좀 이상해요.
집밥이 맛있으면 외식하는 것 같다고 말하고 외식하다 맛있으면 집밥처럼 맛있다고 해요.
뭐가 더 맛있다는 걸까요?"
사랑이의 말을 듣고 보니 정말 그랬다.
맛집의 리뷰엔 '집밥 같아요. 엄마가 해준 밥 같아요.' 같은 후기가 빠지지 않고
집에서 먹는 근사한 식사엔 '외식하는 기분이야, 외식보다 낫다'는 말로 감사를 표한다.
우리는 왜 집밥 같은 외식을 외식 같은 집밥을 꿈꿀까?
외식하는 것 같다는 말은 주로 근사하게 차려진 식탁에서 대접받을 때 사용한다.
늘 접하던 메뉴, 소박한 한 끼를 넘어서 안주인의 풍성한 베풂이 느껴질때 쓰는 표현일 것이다.
'집밥'이라는 말에는 주린 배를 채우는 끼니 이상의 가치인 사랑과 정성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어릴 때 집에서 자주 먹던 한두 가지의 메뉴는 때때로 우리에게 위로를 전해주기까지 한다.
우연히 들른 밥집에서 엄마의 향수가 전해진다면 '모수'(안성재셰프의 파인다이닝)가 부럽지 않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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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모수'는 부럽다.
집밥 같은 외식, 외식 같은 집밥을 꿈꾸는 우리.
어찌 보면 모순인 것 같은 말 속에는 맘속에 깊이 품고 있는 채워지지 않는 그리움 한 조각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