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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통의 삶

The 위

먹는다는것은

by 쉴만한 물가

< THE 위 >


감정을 집어삼키듯 닥치는 대로 음식물을 쏟아부어도

네 작은 몸 팽창시켜 가며 기어이 받아내고 마는구나

학창 시절엔 가던 길 돌아가서라도 한 그릇 먹고야 마는 시장 떡볶이가 행복의 근원이었고

달달한 짜장은 급식실에서나 만나는 메뉴

매콤한 짬뽕만이 비로소 나를 나답게 해주는 음식이었지

빨간 맛 중독자인 나를 주인으로 만나 고생이 많구나

공대여자 캐릭터가 씌어지곤 알량한 자존심 세우려

부어라 마셔라 독하게도 퍼부었던 독주들은 너를 또 얼마나 괴롭게 했던가

젊은 하나로 무장한 채 참으로 무방비했음을 나는 안다



결혼과 동시에 내 몸엔 두 생명이 공존하게 되었지

36개월간 수유했던 시절엔 빨간 맛과도 독주와도 잠시 이별했으니

위야, 너도 36개월 동안 평안했니?

하지만 이내 몸과 마음을 힘들게 했던 결혼생활과 육아의 스트레스는

빨간 맛 음식보다도 너에게 치명적이었지

부정의 감정들이 들어올세라 낌새라도 풍기면

오감이 느끼기도 전에 통증으로 알려주는 너

네가 보내온 통증의 신호들은 나를 식은땀 쏟으며 침대 위에서 뒹굴게 만들었고

나를 잠식하게 만드는 생각들의 근원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들었어

나도 어찌할 수 없던 깊은 부정의 감정들을 네가 보내온 통증 덕분에 조금씩 만날 수 있었지

지금도 가끔 통증이 시작될 때면 내 마음 구석구석을 들여다보며 내면에 어떤 다툼이 일고 있는지 살핀다

통증은 육신을 옭아매지만 이내 마음엔 작은 해방을 허락하지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 된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먹는다는 것은 음식뿐 아니라 말과 마음까지 포함한다는 것을 나는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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