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 진로를 강요받는 우리 아이들
중2라면 사춘기가 극에 치닫는 시기이다.
우리집도 예외는 아니다만 중2 소망이는 자기가 먹고살 일에 대해 고민이 많다.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나 게임에 몰두하며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도 많다는데 진로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다.
소망이는 공부에 별 관심도 없고 중학교 성적도 그닥이다. 고등학교에 가서 공부로는 힘들 것 같은지 언니처럼 일반 고등학교는 가고 싶지 않다고 한다. 엄마인 내가 봐도 공부 쪽보다는 다른 재능이 워낙 많다. 그래서 몇 가지 대안에 대해 말해주었다.
우리 때 실업계라고 불렀던 '특성화고'에 가는 것 아니면 예체능 전공으로 돌려 '예고'에 진학하는 것, 것도 아니면 '자퇴'의 길이 있다고. 정 공부하는 게 힘들다면 자퇴하고 직업을 가져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이야기해 줬다. 공부는 나중에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을 때 그때 해도 된다고.
소망이가 지금 가장 꽂혀있는 건 네일 아트라며 네일 아트를 배워서 자격증을 취득해보고 싶다고 얘기했다. 네일아트 아니면 메이크업을 배워보고 싶단다. 이건 어느 정도 예상된 시나리오였다. 평소에도 친구 만나러 나가거나 주말에는 진한 화장을 하고 다니는데 그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가끔은 지금 그 얼굴이면 바로 뮤지컬 무대에 서도 될 정도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초5에 메이크업에 입문했으니 그 길에 들어선 지도 벌써 N연차다. 보기 싫게 진하게만 하는 건 아니고 상황에 맞게 의상에 맞춰 얼굴이 예뻐 보이게끔 교묘하고 섬세한 기술을 발휘한다. 평소에 화장을 전혀 하지 않는 나도 가끔 중요한 행사로 화장을 해야 할 때에는 소망이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꽤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도 한다. 이런 아이가 네일 아트 자격증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하니 말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실은 소망이는 시에서 어린이, 청소년에게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오케스트라에서 콘트라 베이스를 5년째 배우고 있다. 소망 이를 거쳐간 선생님들은 소질이 있다며 잘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셨고 이번에 담당 선생님은 전공해 볼 것을 권유하셨다. 공부에 별 뜻이 없어 보여서 그랬는지 정말로 악기에 소질이 있어서 권한 건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선생님께 개인 레슨을 받아본 적도 없고 소망이가 그 큰 악기를 구입해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기에 엄마인 내가 소망이의 연주 실력을 가늠할 만한 방법은 없었다. 소망이는 본인의 악기가 좋은 것도 있긴 하지만 선생님이 해주신 '공부를 덜해도 대학 입시가 가능해'라는 말에 귀가 팔랑대기 시작한 것 같다. 어디 소망이의 귀뿐이랴.. 유독 작은 나의 귀도 소망 이를 통해 건너온 '전공해 보라는 말'에 소머즈처럼 반응했다. 악기 전공만이 소망이에게 유일한 대입의 길인 듯 느껴졌다. '악기가 있어야 레슨도 받아볼 수 있을 테니 악기 구입이 선행되어야 해'라고 내 머릿속에는 이미 지도가 그려졌다. 전공을 결정한 건 아니니 전공자들이 쓰는 수천만 원짜리 악기를 구입할 수는 없다. 휴... 다행이다. 우리 같은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는 가정에서 수천만 원을 모으려면 수년은 걸릴뿐더러 수천만 원을 투자하고 아이를 닦달하지 않을 자신이 없다. 적당한 금액의 입문자용 악기를 구입하기로 하고 월급에서 차곡차곡 돈을 모으기 시작한 지도 6개월이 됐다. 그리고 올여름 드디어 구입할 만큼의 금액이 모아졌다. 이번 여름방학에는 악기를 사주기로 마음먹었다. 휴가기간도 끝났겠다 교회 캠프도 모두 마무리되었겠다 지금이 악기를 알아보고 구입할 수 있는 할 적기인데 소망이는 네일 아트를 배워보고 싶다는 뚱딴지같은 소리다. 하아... 돈 굳었다고 좋아해야 할 일인가? 분명 몇 달을 모으고 모아 마련해 둔 악기 구입할 돈이 카뱅 서브 통장에 두둑이 모아져 있는데 마음 한편은 씁쓸하고 허하다. 네일 아트도 배워보고 악기도 배워 보라고 할 수 있다면 좋겠다만 중2의 2학기 현실이 눈앞에 그려지니 마음이 다시금 바빠진다. 이 타이밍에 소망이가 한마디 내뱉었다.
" 아주 길고 화려한 손톱을 하고 싶은데 베이스를 전공하면 그 손톱을 못할 것 같아서 제일 싫었어. 이제 네일아트 배우면 길고 화려한 손톱을 붙이고 다닐 수 있겠다." 아이의 기분이 날아갈 듯 한없이 가벼워 보였다.
오늘은 소망이가 유일하게 다니고 있는 수학학원이 끝나고 바로 다이소로 향했다. 매니큐어 두 개를 사 와서 "엄마 나 이제 방에서 매니큐어 바를 거야"라는 말을 남기고 방 안에 틀어박힌 지 2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짠~ 하며 나온 소망이의 손톱에는 귀여운 키티 얼굴이 새겨져 있었다. 아트 재료라고는 흰색, 투명 매니큐어 두 개가 전부였지만 집에 있는 글루건, 아크릴 물감과 붓을 활용해 나름의 아트 효과를 냈다. 첫 작품치곤 나쁘지 않다. 손으로 하는 건 기본 이상 하는 소망이 다웠다. 키티는 작년부터 소망이가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첫 작품으로 키티 아트를 한건 키티 휴대폰 케이스를 사용하고 있는 중2 아이에게 딱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 하하하. 소망아~~~!!! 근데 엄마 악기 사? 말아?"
내일은 소망이 오케스트라 선생님과 전화상담이 예정되어 있다. 악기구입 관련해 상담을 하려는 게 그 이유이다. 수시로 변하는 아이의 마음을 어디까지 받아줘야 하는지 고민되는 밤이다.
우리나라에서 전공관련 직무를 하고 있는 비율이 궁금해 AI에게 물어보니 30~40% 수준이라고 한다. 전공과 관련없이 일하고 있는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뜻이다. 나의 경우도 전공과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고 내 주위만 살펴봐도 그렇다. 우리때야 대입에서 전공을 선택했으니 그나마 덜한걸까? 하지만 지금은 아이들은 고등 전에 진로를 정해야 한다. 고교학점제는 아이들이 한창 사춘기에 시달려 스스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학생들에게 진로를 결정하기를 강요한다. 몸과 뇌의 변화를 받아들이기도 버거운 사춘기 시기에는 더 많이 자신을 탐색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둘 수 있다면 좋겠다. 일찍이 두각을 드러내고 진로를 정하게 되는 행운이 우리 모두에게 똑같이 올 수는 없다. 대한민국에서 청소년기 아이를 키우며 대입을 염두에 두지 않는 일은 참으로 큰 용기가 필요하다. 마치 무인도에서 살아남기에 버금가는 모험이라 느겨진다. 나도 아직은 그 모험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우리 집 고등어도 진로 고민에 한창이다.
자아 탐색. 스스로를 알아가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은 진로라는 큰 바위를 짊어지고 부지런히 학교, 학원, 집을 오가고 있다.
"얘들아, 지금이 꼭 아니어도 돼.
엄마도 그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