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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보통의 삶

머리빨을 포기하고 얻은 것

뭔가 특별한 사람들

by 쉴만한 물가

소망이는 어느 날 유치원에서 돌아와 머리카락을 많이 길러 기부할 거라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곤 좋은 일에 동참하겠다는 마음이 예뻐 그렇게 해보자고 했지만 펌을한듯 동글 거리는 곱슬머리도 기부가 될지 궁금해졌다. 머리카락 기부로 검색하니 기부받는 단체가 바로 나왔고 곱슬머리 직모 상관없이 기부받고 있었다. 그리하여 소망이의 첫 번째 기부는 6세. 그 이후로 쭉 길러 3학년 때 두 번째 기부를 했고 6학년 말에 세 번째 기부를 했다. 짧은 단발에서 기부가 가능한 긴 머리가 되기까지는 약 3년 정도가 걸리는 셈이다.

소망이가 머리카락 기부에 동참하던 7~8년의 세월 동안 나는 줄곧 긴 생머리를 유지했다. 나의 트레이드 마크라도 되는 듯 수십 년간 긴 머리를 고수해 온 것이다. 30대 후반 부터는 앞으로 얼마나 더 긴 머리를 할 수 있겠냐며 한해 한해 버텨온 게 벌써 40대 중반이다. 옷빨, 화장빨 못지않게 중요한 게 머리빨 이라고 확신하면서.


나는 어린이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그림책 강사다. 다음 주 선정 도서 『뭔가 특별한 아저씨』를 읽고 수업 자료를 준비하다 보니, 허리까지 내려온 치렁치렁한 내 머리카락이 문득 거슬리기 시작했다. 이 그림책은 평범해 보이는 회사원 다정 아저씨의 이야기다. 다정 아저씨는 머리카락을 기르면서 주변 사람들과 회사 사장님에게 눈총을 받는다. 하지만 기부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고 머리카락을 기른 다정 아저씨의 사연은 회사 사람들과 사장님에게 귀감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이 동화를 읽고 기부의 다양한 형태에 대해 알려주기로 수업 방향을 잡았다. 다정 아저씨처럼 머리카락 기부에 동참한 또래 어린이들의 사연도 영상과 사진으로 담았다. 그런데 머리카락 기부에 대해 이야기 하려니 치렁치렁한 내 머리카락이 거슬리기 시작한 거다. 어린이들에게 기부에 대한 정보는 주지만, 선생님은 동참할 마음이 없다고 온몸으로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이들을 키우며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한다’는 말이 나를 멈칫하게 했고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뭐 대수야, 어차피 40 중반 아줌마가 머리카락 좀 자른다고 아줌마 소리밖에 더 듣겠어? 아줌만걸 뭐..' 생각이 거기까지 이르자 이게 무슨일 일까, ’한번 해보자’라고 마음먹게 되었다.

마음이 좀 급해졌다. 『뭔가 특별한 아저씨』로 수업 하기 전에 머리카락 기부에 동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야심 차게 수업을 준비하며 했던 다짐은 어쩐지 점점 힘을 잃어갔다. 그날 밤 거울 앞에서 긴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단발로 만들고 요리조리 비춰봐도 이래도 이상하고 저래도 별로다. 역시 머리빨 이었다. ‘컷트 예약이 당장 내일인데, 지금이라도 취소할까? 아무래도 후회하겠지? 후회야 남겠지만 그 머리로 수업을 할 수 있겠어? 그냥 책을 바꿀까? 머리카락은 계속 길 텐데 뭐가 걱정이야’ 초록과 빨강이 차례로 바뀌는 신호등처럼 내 마음의 갈래도 반복되었다.

어려 보인다는 말이 그 어떤 말보다도 반가운 나에게 긴 생머리는 한 가닥의 동아줄과 같은 마지막 희망이었다. 숏커트에 뽀글 파마가 대한민국 할머니를 대표하는 머리인 것처럼 40대의 단발은 그냥 K아줌마의 표본처럼 느껴졌다.




금요일 오후 3시가 되어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원장님은 반색하며 말씀하신다.

" 아니 왜 커트만 예약을 하셨어요? 그 머리에 커트만 해서는 느낌이 안 살아요. 펌을 같이 하기로 했잖아요" 원장님은 레이어드 컷 예약을 한 줄 아신다. 나는 재빨리 실토했다.

" 원장님 저 단발하려고요, 머리카락 기부 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 네? 뭐라고요? 염색에 파마에.. 그 머리카락을 기부한다구요?“

미용실 원장님은 이 지역으로 이사오면서 7년째 우리가족의 헤어스타일을 담당하셨다. 연구원 마인드를 장착하신 원장님은 상술 없이 시술하는 실력자다. 내 머리카락을 이렇게까지 기르게 된 것도 원장님이 추천한 긴 머리 레이어드 컷과 펌을 하기 위해서였다.

" 40대 넘어가면 얼굴에 각도 생기고 얼굴형도 무너져서 단발을 하면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요. 지금의 분위기는 긴 웨이브가 담당하고 있는 거 알죠? 정 기부를 해야겠으면 이번에 레이어드 컷을 해보고 나서 그때 잘라요" 원장님의 주장에 늘 설득당하던 나였지만 오늘은 달랐다. 여기서 안 잘라주면 다른 미용실에 가서라도 자르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로 밀어붙였다.

"저 모든 거 다 포기하고 자를 결심으로 온 거예요. 분위기며 머리빨 다 포기할 결심으로 온 거니까 그냥 잘라주세요." 머리카락 자르는데 이렇게까지 결연할 일인가 싶었지만, 꼭 자르고 가야 하는 사연을 말씀드리며 간곡히 부탁했다. 원장님은 이번에는 내 고집을 꺽지 못하고 한숨을 푹푹 내쉬며 머리를 고무줄로 묶어 25센티를 자로 쟀다. 이윽고 25센티 묶은 머리가 댕강 잘려 나갔다. 마지막 동아줄이라 여기며 살아왔던 긴 생머리에 대한 미련도 뒷 모습이 아가씨 같다던 누군가의 사탕발림도 댕장 잘려 나갔다.

그깟 머리카락 하나 자르는 것으로 하루 동안 치열하게 현실과 이상을 오갔다. 내 마음엔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40대 중년이여! 그나마 네가 몇 살 어려 보일 수 있었던 건 긴 생머리 덕분 아니었겠소?’라고 다그치는 현실의 목소리와 ‘그래도 네가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인데 너도 못하는 일을 아이들에게 권할 수 있는 거야?’라는 회유의 목소리였다. 결국 두 번째 목소리가 내 마음을 움직였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와 미용실 입구부터 주차장까지 50미터쯤 되는 복도를 따라 걷는 길은 나 홀로 런웨이 무대에서 이상의 승리를 자축하며 걷는 듯 당당하고 뿌듯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모습과 기부할 머리카락을 사진으로 남기고 수업자료에 첨부해 어린이들과 즐거운 수업을 마쳤다. 기부를 위해 머리카락을 자르고 왔다고 하자 어떤 어린이들은 감탄하며 박수 까지 쳤다.

"저도 선생님처럼 기부할 거예요~"라는 어린이의 말은 내 마음에 더욱 힘을 실어주었다.

며칠 전 특강으로 나간 학교에서는 처음 만나는 6학년 친구들과 학교폭력예방교육 수업을 했다. 수업 중 어떤 질문을 던졌고 어린이들은 너도 나도 발표를 하겠다고 손을 들었다. 그중 노란 티를 입은 친구가 눈에 띄었다.

"거기 노란 티 입은 여자 친구가 해볼까요?"라고 지목하자 아이들 모두 깔깔거리며 웃는다.

"저요? 저 남자예요!"

"어머, 그렇군요. 선생님이 긴 머리카락만 보고 오해해서 미안해요."

가슴팍 아래까지 찰랑이는 긴 생머리에, 앞머리까지 가지런히 내어 있으니 영락없이 여자아이로 오해한 것이다. 수업을 마치고 마침 그 아이를 복도에서 마주쳤다.

"긴 머리카락이 정말 잘 어울려요" 아이가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저 기부하려고 머리카락 기르고 있어요." 지난주에 수업했던 『뭔가 특별한 아저씨』가 생각났다. 동화 속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아~ 그래서 기른 거예요? 선생님도 기부하려고 지난주에 단발로 자른 거예요." 아이가 정말이냐며 빙그레 웃었다. 올 겨울에는 기부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아이의 얼굴은 여느 사춘기 아이들에게서 볼 수 없는 환한 미소였다.

5학년부터 미운 사춘기가 극성을 부린다. 여자 아이들은 외모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5학년이면 화장을 시작하는 아이들이 생기고 남자 아이들은 머리카락으로 얼굴 반을 덮어버리는 똑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앉아 있다. 또래 관계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할 사춘기 남자아이에게 머리카락을 기르는 용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친구들에게 유별나다고 놀림도 받았을테지. 많은 사람에게 머리카락을 기르는 이유를 설명해야 했겠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외면했어야겠지.

단지 몇 살 어려 보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했던 지난주의 내가 부끄러워 숨고 싶었다. 둘째 소망이가 기부해 오던 7~8년의 세월 동안에도 놓을 수 없었던 머리카락. 몇 살 어려보이겠다며 갈등했던 시간들. 소아암 환자에게 주고 싶은 마음보다 어린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선택한 모발 기부. 보이기 위해 선택한 선행 뒤에 만나게 된 진짜 선행. 불편을 감수하고 배려와 선행을 몸소 보여준 어린이의 용기는 내 시커먼 속내를 드러나게 했다.




수년간 긴 머리만 고수하다 하루아침에 단발로 나타난 모습이 주위 사람들 에게도 신선했나 보다. 평소 같으면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갔을 이들도 모두 아는체를 한다. "머리카락 자르셨네요, 잘 어울리세요" 잘 어울린다는 인사치레가 나를 춤추게 한다.

머리를 자르며 원장님에게 했던 "머리빨, 외모, 분위기 다 포기했어요"란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나이 40에 아직도 외모에 집착 하는 게 무슨 소용이겠냐며 내면을 가꾸는데 치중하자는 비장한 마음으로 자른 머리카락이다. 하지만 긴 머리를 댕강 자른데 대한 주변인들의 관심 있는 한마디는 더 자주 더 오래 거울을 들여다보게 했다. 자고 일어나면 맘대로 뻗쳐있는 머리카락 덕에 더 자주 만지고 빗질한다. ”잘 어울리세요“라는 말은 그날 잠시 나를 스쳐갔지만 난 오늘도 그 말을 붙잡고 산다. 오늘도 거울 앞에서 그 말들을 떠올리며 머리카락을 손질한다. ‘숏커트도 나한테 괜찮을까?’ 사랑과 관심이 고플 때를 대비해 그 카드는 잠시 넣어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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