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장구치는 법, 세번째
20241028 짧은 소설 3회차
물장구치는 법, 세번째
"심해(深海)는 나를 가두는 물 속의 감옥이다."
그날 이후, 학교 사람들은 모두 약속한 것처럼 나와의 연락을 끊었다. 나는 폐인과 다를 바 없이 집안에만 틀어박혀 지냈다. 그나마 뇌졸중 후유증으로 병실에 있는 아버지 덕분에 일주일에 한 번은 병문안을 갔다. 아버지는 이 시간에 학교에 있을 내가 당신의 병실에만 있으니 뭔가 석연치 않음을 느낀 것 같았다. 게다가 당신도 뇌졸중으로 왼쪽 팔과 다리를 쓰지 못해 심란할 텐데, 자식인 나마저 초췌한 얼굴로 당신을 맞이하니 직감적으로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
어느 날은 아버지가 참다못해 나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괜찮냐고. 나는 아버지의 말에 더 이상 휴학한 것을 숨길 수 없었다. 그저 태연하게, 자연스럽게, 중간에 쉬고 싶어서 휴학하는 여느 학생들처럼 말할 수밖에 없었다.
"저..., 중학교 올라가면서부터 지금까지 수영시켜 줘서 고마워요. 엄마 없이 동네 수영장에서 같이 헤엄쳐주고, 응원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근데 너무 수영만 하니까 갑자기 쉬고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아버지도 아픈데..., 잠깐만... 잠깐이나마... 아버지 돌보면서 쉬고 싶어 졌어요... 정말... 죄송해요..."
절대로 울지 않겠다고 했는데 벌써 눈가에는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표정은 의외였다. 당신에게 미리 상의도 없이 이제야 휴학을 했다고 말한 내가 미울 텐데, 아버지는 옅은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그래, 고생했다."
그렇게 한참을 아버지와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나는 병원 로비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앉아있는 대기석 앞에 TV가 있고, TV 화면에서 전국 체육 대회가 생중계되고 있다. 때마침, TV에서 나오는 경기는 대학부 수영 경기였다. 그리고 카메라에 학과 대표인 현주와 다른 학생들이 스쳐 지나가고, 그들을 코치석에서 지켜보는 김코치도 카메라에 스쳐 지나간다.
아마도 학교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멈췄던 훈련을 다시 이어갔다. 내가 대자보를 써서 학교 이곳저곳에 붙였는데도 학교는 그동안의 일을 철없는 학생 한 명이 일으킨 작은 사태로 볼뿐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김코치와 학생들을 붙여 전국 대회에 나가게 했고, 김코치와 학생들은 0.03초 차이로 다른 대학부 팀들 중에서 1등을 했다. 그들은 경기를 마치고 카메라를 보며 서로 세리머니를 하고 있었고, 심지어 코치석에 있는 김코치를 데리고 와 다시 세리머니를 이어나갔다. 그들의 이런 모습을 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사사건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모욕적인 말들을 들었으면서, 그것 때문에 훈련이 끝나고 락커 룸에서 엉엉 울어댔으면서, 이제 와 메달을 땄으니까 다 괜찮다니.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나도 여태껏 나중을 위해 김코치가 뱉었던 말을 속으로 삼키고, 김코치가 남겼던 멍을 파스로 감추면서 참아왔다. 메달을 따면 그에게서 받은 상처가 완전히 해소될 것이라고 스스로 다짐하며 물 안에서 달리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김코치가 던진 말 한마디로 깨지고 말았다.
"이지은, 너는 나한테 감사해야 돼. 몽둥이로 더 때리려던 거 너네 아버지처럼 다리 병신 될까 봐 여기까지만 하는 거야. 다른 애들 두 대 맞는 거 너는 한 대 맞는 거야."
당시에 나는 온몸이 떨렸다. 당신이 뭔데 우리 아버지를 들먹이는지. 무슨 자격으로 아버지까지 끌어다 다리병신이라는 말로 비하하는지. 나는 곧바로 바닥에서 엎드렸던 자세를 풀고 일어나 그에게 당장 사과하라고 소리쳤고, 김코치는 자신한테 대든다면서 나에게 손찌검을 하려 했다. 그러자 내 옆에 있던 현주와 다른 학생들은 큰 싸움으로 번질까 봐 김코치와 나의 사이를 떼어 놓았다.
그때 대자보를 썼던 나는 현주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도 나의 행동을 조금이라도 동의하고 이해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나의 오해였다. 전에 현주가 했던 말처럼 훈련이 전국체전을 한 달 앞두고 중지돼서 학생들 사이에서 기권을 하는 게 아니냐는 소문이 돌았고, 현주를 포함한 다른 학생들은 대회 출전을 위해서라도 잠깐 동안만이라도 대자보를 떼어낼 것을 부탁했다. 심지어 가만히 있었던 우리들을 비열하고 비겁한 사람으로 몰아붙이지 말라는 문자까지 받았어야 했다. 나는 예상과도 다른 반응에 그들에게 서운함이 들었고 허탈함마저 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원한 것은 김코치의 진정한 사과 밖에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어떤 말로 형용할 수 없이 복잡하다.
김코치의 행동을 고발하기로 결심한 내가 어리석은 게 아닐까 하는 이상한 생각도 든다.
급기야 나와 다른 곳에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그렇게나 좋아했던 수영을 두 번 다시 할 수 없을 거 같다.
그래, 당분간은 이 심해 속을 잘 헤쳐 나갈 자신이 없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