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장구치는 법, 네번째
20241103 짧은 소설 4회차
물장구치는 법, 네번째
"그곳에서 나오는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여기는 차가운 물속. 수영복을 입은 나는 그저 두 눈을 감고 온몸에 힘을 빼고 있다. 그 위로 솔로 수영장 벽과 바닥을 닦는 소리들, 그 소리에 섞여 간간이 나오는 청소 이모들의 얘기들이 물속을 통과해 먹먹하게 들린다. 그럼에도 나는 끝까지 숨을 참는다.
시간은 30초까지.
1초... 2초... 3초... 4초... 5초... 6초...
7초... 8초... 9초... 10초... 11초... 12초...
13초... 14초... 15초... 16초... 17초... 18초...
19초... 20초... 21초... 22초... 23초... 24초...
25초... 26초... 27초... 28초... 29초... 30초...
그렇게 천천히 30초를 채우고 나면 물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숨을 뱉는다. 그러고 나서 물안경을 당겨서 그 안으로 들어왔던 물들을 빼고, 다시 물안경을 쓴 다음 숨을 크게 들이셔서 물아래를 향해 깊숙이 들어간다. 이런 행동을 한지 무려 1년이 지났다. 마치 경기를 앞두고 하는 준비 운동처럼 온갖 잡생각들을 비워내기 위해 잠깐의 시간을 빌렸다. 그렇게 나는 좁고 기다란 네모 패턴으로 점 칠 된 벽과 바닥을 둘러보며 천천히 헤엄친다. 내 눈에 벽과 바닥에 붙은 불순물들이 보일 때마다 손에 들고 있던 스테인리스 주걱으로 떼어낸다.
솔직하게 말하면, 앞으로는 절대로 물속에서 헤엄칠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웃기게도 하나의 이유로 어쩔 수 없이 나 스스로 물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것은 아버지에게 들어가는 병원비와 재활비... 그리고 간병비. 그러니까 '돈'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이제야 상태가 조금씩 호전돼서 재활 치료를 받고 있었고, 덕분에 왼쪽 팔과 다리를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돈'이 든다는 이유로 재활 치료를 멈춘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돈'을 보태기 위해 다시 '물'을 선택하고 말았다.
긴 시간의 청소가 끝나고, 나는 유니폼 차림으로 로비 의자에 앉아있다. 맞은편에 휴게실이 있지만, 그곳에는 청소 이모들이 자리에 누워 계신다. 아직 청소 이모들과 말을 터놓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라 어색하다. 나는 그런 어색함이 싫어 산책을 나간다는 핑계로 수영장 건물 안을 돌아다니다 로비 의자에 앉는다. 로비에는 수영장 안의 모습을 볼 수 있게 유리창이 설치되어 있다. 수영장의 시계가 아침 6시를 나타내자 조금씩 수영복을 입은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유 수영 칸에 몸을 담가 두 발을 번갈아서 차면서 강사가 오기를 기다린다. 나는 로비에 있는 벤치에 유리창으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그런데 그때, 바지 주머니에 있던 내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린다. 이에 나는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한다. 이름 없는 발신 번호이지만 난 그 번호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 번호의 주인은 현주였다. 나는 곧장 '통화 거절' 버튼을 눌러 현주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러자 현주가 내 전화를 받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는지 나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다.
‘언니, 연락 좀 받아주세요. 저희 언니가 필요해요. 언제라도 저한테 연락 주세요. 제발요. 저희 언니 없으면 진짜 큰일 나요.’
현주의 문자에 당황했다. 갑자기 이런 문자를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하지만 휴식 시간이 끝나가고 있었고, 나는 답장을 보내려다가 이내 핸드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는다. 그동안 나는 현주의 문자를 곱씹으면서 탈의실에 면봉과 수건을 채우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빗자루로 쓸어 담는다. 점심시간이 될 때까지 현주의 문자는 내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는다. 무시하고 싶어도 이미 역부족이다.
결국,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수영장 건물에서 나와 현주에게 전화를 건다. 한참 동안 통화 연결음이 이어지다가 현주가 전화를 받는다. 나와 현주는 아무 말도 꺼내지 않는다. 이 상황이 언짢은 나머지 내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건다.
"말해. 무슨 일인데?"
"언니..."
현주는 연신 한숨을 내쉬더니 어렵게 말을 이어간다. 현주의 말은 의외였다.
"언니..., 저희 좀 도와주세요... 솔직히 언니한테 이런 부탁하는 거 염치없는데..."
"알면서 이러는 이유가 뭔데?"
내가 툭 쏘아붙이자 현주가 대답한다.
"김코치님 또 사고 쳤어요."
김코치라는 이름을 듣자 내 두 눈이 흔들린다. 그리고 현주의 말이 핸드폰에서 흘러나온다.
"근데 이번에는 법정까지 가서 언니 때처럼 내부적으로 해결 못 해요. 게다가 이번 사건으로 예전에 언니 일도 빠르게 퍼지고 있고요. 그래서 언니가 언제 법정에서 아니라고만 얘기해 주시면 돼요."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현주와의 통화로 속이 메스꺼워졌다. 현주가 마지막으로 했던 얘기가 내 가슴을 쿡 찌른다.
"이번 일 잘만 넘기면 언니도 학교 돌아올 수 있고, 저희랑 껄끄러웠던 것도 해결될 수 있어요. 언니, 졸업해야죠. 그리고 나중에 저희랑 또 마주칠 텐데 이대로 끝내긴 아쉽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알겠다는 말만 던지고 얼른 전화를 끊는 것. 그럼에도 메스꺼움은 가시지 않아 주먹으로 가슴을 툭툭 쳐댄다.
결국, 메스꺼움이 심해져 일을 할 수 없었고 혼자 휴게실 소파에 누워 쉬고 말았다. 문을 굳게 닫았는데도 바깥의 소리들이 휴게실 안에서도 들린다. 그렇게 하루가 끝났다.
오늘은 정말 더럽게도 재수 없는 날이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