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이 써졌어
힘들었다 꽤 많이.
티 내고 싶지는 않았다.
이렇게 넘어지고 싶지 않았고, 어차피 넘어지면 아프다는 걸 알기에.
넘어지지 않도록 내 삶의 균형에 집중했다.
하지만,
티 내고 싶지 않아도 슬픔은 틈 사이에 빠져나오는 물과도 같았고, 상처는 화상자국과도 같이 지워지지 않았다. 지독하게 더웠고, 길었던 여름이 밉기도 했다. 계절이 지났다는 투정이라도 부리고 싶었는데, 이렇게까지 긴 여름일 줄이야. 하늘은 분명 이미 가을하늘인데, 너무 더운 여름의 냄새가 무덤덤한 척 괜찮아 보이는 척하는 나를 설명해 주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분명 짧아졌어도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온다는 것을 믿었기에, 푸른 나뭇잎들이 제각각 색깔을 갖는 날이 분명 나에게 올 것임을 알았기에. 힘들어도 괜찮았다. 셀 수 없을 만큼 걸었던 정동길을 또다시 하염없이 걸었던 날이 있다. 이제는 괜찮아졌으면 하는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걸었던 날이 있다.
그날에 걷고 있는 내 앞에 은행나무의 냄새가 나를 멈추게 했다.
떨어지는 은행과 나뭇잎. 가을이 왔음을 설명해 준다. 이제 괜찮아도 된다는 위로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계절이 지났으니, 네가 가지고 있는 슬픔은 이제 지나간 여름에 두고 오라고. 가끔 그 순간을 기억해 슬퍼하고 있을 너에게 가디건과 셔츠 같은 외투로 따듯한 위로를 선물하겠다고. 너무 길었던 여름이 지나도 가을이 온 것처럼, 긴 터널처럼 생긴 그 슬픔을 통과할 때 시간이
계절이 너를 도와주겠다고. 시간은 분명 지나고 경험은 결국 양분이 되어 또 다른 생명을 피울 테니.
24년 가을의 시작은 터널을 통과하고 만난 구름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