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글이 써졌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다는 말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요즘이다. 옳고 그름이 확실했는데, 너무 많은 경험에 옳고 그름의 중심선이 흐릿해지기만 한다. 부모님을 보는 시선이 달라진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산처럼 커 보이고, 나를 혼내고 자연재해를 마주친 것처럼 힘을 쓸 수 없는 모습처럼 부모님은 너무 커다란 존재였는데, 부모님은 산 같은, 자연재해 같은 것이 아닌 그저 나 같은 사람이라는 것. 아빠도 엄마도 아들을 처음 키워봤다는 게 이해가 되기 시작하더라. 사랑받고 싶어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내 안에 있는 설렘들이 공허라는 단어로 이름을 바꾸기 시작했고, 혼자인 게 무서웠던 내가 이제는 혼자일 때 만이 숨을 쉬기 시작한다. 많은 추억과 과거를 작별하고,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시작을 할 수밖에 없는 지금의 나는 또다시 오늘과 작별을 한다. 가끔은 누군가 보다 너무 뒤처지는 거 같을 때 속상하기도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제각각 시작선과 도착선이 다르다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시작선에서 보이지 않는 도착선을 뛰고 있음을 느낄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나를 찾아왔다.
‘그냥 도착하면 되는 걸까.’
그 긴 시간에 보이지 않는 도착선에 도착하기 위해 뛰기만 한다면 무엇이 남는 걸까. 나는 그냥 시간을 보내 의미없이 늙고 싶지 않은 거 같다. 도착선을 향해 뛰고 있는 내가 그냥 도착을 위해 앞만 보는 게 아니라, 뛰고 있는 풍경을 감상하기도 하고 계절에 맞게 날씨와 온도를 느끼며 뛰다가 마주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속도를 맞춰 함께 대화를 하기도 하면서, 넘어지면 잠시 멈춰보기도 하면서 그렇게, 나는 무르익고 싶다. 내가 경험하는 모든 감정과 시간으로 나를 무르익혀 반복되는 문제에는 침착하게 해결하고, 긴장의 눈빛이 아닌 따뜻한 눈빛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다. 공허와 긴장으로 바뀌고 있는 내 삶에 무르익을 내 삶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무르익는 내 삶을 기대하기 위해 내가 앞으로 할 노력은 단지,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보는 것이다. 긴장의 연속에서 미소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공허의 연속에서 다시 설렘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길을 걷다가 귀여운 아기를 보면 먼저 웃으며 인사를 해보기도 하고, 비가 오면 커피를 내려 창문을 보면서 조용해진 세상을 즐기며 행복을 느껴보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보는 것이다. 그렇다고 긴장과 공허를 참는다는 것은 아니다. 충분히 긴장하고, 공허를 느낀 후 마음껏 웃겠다는 다짐이다. 웃기 위해선 괜찮지 않음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많이 슬퍼할 거다. 많이 속상해할 거고, 많이 힘들어할 거다. 적어도 나 스스로에게는 솔직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마지막에는 웃을 거다.
나를 힘들게 하는 감정을 인정한다는 것은 잠시 내 마음에 그 감정을 초대를 하는 것이다. 초대를 받은 감정들은 일정한 시간에 빠져나간다. 그 후에는 신선한 바람이 불어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 그런 바람이 무르익게 도와준다. 신선한 공기가 통해 그 계절의 온도를 나에게 선물해 나라는 사람을 무르익게 한다. 이렇게 나는 천천히 농도짙게 무르익는 삶을 살아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