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만남
도서관 봉사 중에 수녀님이 오셨다. 책을 좋아하는 분이신지 대출 중인 책 두 권이 있으신데도 여덟 권의 책을 더 빌려가셨다. 대출증을 받고 바코드를 한 권 한 권 찍는 짧은 시간 동안 괜히 그분께 말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인상 좋은 수녀님과 인사를 나누고 싶어서기도 했지만, 그냥 입고 계신 수녀복을 보니 괜히 그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일종의 반가움 같은 그런 마음.
“수녀님, 저희 동네 성당에 계세요?”
“아뇨, 저는 옆 동네 성당에 있어요.”
“저도 성당에 나가야 하는데 쉬고 있어서… 수녀님 뵈니까 괜히 뜨끔해서 인사드렸어요.”
“쉬실 땐 또 좀 쉬셔야죠.”
“그런데 너무 오래 쉬어서…..
이제는 좀 나가야지 싶긴 해요. “
“쉬면 쉴수록 다시 나오기가 더 힘들어지죠?
여기 본당 수녀님들 다 좋으세요. 편하게 나가보세요. “
웃으며 몇 마디 더 나누고 일어나 배웅해 드리는데 세례명을 물어보셨다.
“마리아, 마리아 자매님이시구나.
제가 드릴건 없고, 기도해 드릴게요. “
기도해 주신다는 말을 남기고 도서관을 나서시다가 다시 문을 빼꼼 열고 이름을 알려달라 하셨다. 이름과 세례명을 몇 번 되뇌시며 돌아서서 나가시는데 문 밖으로 멀어지는 그 나즈막한 기도소리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 준다는 말이 이렇게나 따뜻한 말이었구나. 성당과 멀어진 딸을 위해, 우리 부모님도 이렇게 수시로 나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겠구나. 가슴 한편이 뜨거워지며 코끝이 찡해왔다. 아무도 없는 작은 도서관 서가에 숨듯이 서서는 괜히 누가 볼까 황급히 촉촉해진 눈가를 꾹꾹 눌렀다.
기도.
기도를 해본지가 언제였던가.
부모님은 나를 열심히 기도하며 키우셨는데, 나는 무얼 믿고 딸들을 기도 하나 없이 여태 키워왔을까. 아니다. 사실 아이들을 키우며 기도해 본 적 없었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분명 애타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눈물 나게 절절하게 기도를 했다가도 삶이 다시 평온해지면 언제 그런 마음을 품었냐는 듯 다시 감사도 겸손도 잊고 살았다. 그리고 다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모아 쥐게 되는 때가 오면 이렇게 뻔뻔해도 되는 걸까 죄책감이 들면서도 마음은 다시 간절해지곤 했다.
처음 보는 나에게 선뜻 기도해 주시겠다고 이름을 물어봐주신 수녀님의 따뜻함. 그 조용한 한마디에 울컥하고 눈시울이 붉어질 만큼 내 안에 어떤 간절함이나 목마름이 숨겨져 있는 걸까. 나는 왜 수녀님께 말을 걸어보고 싶었을까. 나는 왜 기도해주신다는 이야기에 울컥했을까. 나는 무엇 때문에 기도와 멀어졌을까. 지금 내가 기도한다면 누구를 위해 어떤 기도를 할까.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면 그 기도는 어떤 기도이길 나는 바랄까….
오늘따라 유독 조용한 도서관 대출책상 앞에 앉아 생각이 흘러가는 방향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반납함에 들어있던 책을 정리하는 손가락이 시리다. 누군가와 손을 맞잡기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