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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결심

나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타인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by 따름

살롱쉬의 유주는 유난히 긴장되는 아침을 보내고 있습니다. 네 살 된 둘째가 어린이집에 첫 등원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첫날이라 적응 기간으로,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단 두 시간 동안 아파트 1층에 위치한 어린이집에 가기로 한 날입니다. 사실 이 어린이집은 동네에서 소문난 인기 있는 어린이집이라 경쟁이 꽤 치열했습니다.


‘아, 안되면 어쩌지. 안되면 다섯 살에는 더 들어가기 힘들다던데.’ 네 살에 입소한 아이 중 그만두는 아이가 생겨야만 자리가 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만약을 대비해 유주는 다른 괜찮은 어린이집도 알아보아야 했습니다. 아이를 올해는 꼭 어린이집에 보내야 자신이 숨을 쉴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이는 너무 사랑스럽고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했지만, 어린이집은 그것과는 별개의 문제였습니다. 유주에게 어린이집은 아이의 사회생활 시작이자, 자신에게는 오랜만에 찾아온 숨구멍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러다 원하던 집 바로 앞 1층 어린이집 입소가 확정되던 날, 유주의 마음은 큰 걱정거리 하나를 던 듯 가벼워졌습니다. 두 달 뒤 그날이 어서 오길 은근히 기다렸습니다. 길게만 느껴지던 겨울,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날들이 어느새 달아나버리고 달력을 한 장 넘기며 다가올 봄을 고대했습니다. 봄이 되면 유주에게 새로운 일들이 생길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 고대하던 날 아침, 유주는 예상과 달리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습니다. 기대와 걱정, 미안함이 한데 뒤섞여 자신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가슴은 두근거리고 불안한 마음에 종종거리며 주방과 거실을 오갔습니다. ‘아이가 낯선 교실과 선생님, 친구들과 잘 지낼 수 있을까. 왜 이렇게 이날이 오기를 바랐을까.’ 아이가 어린이집에 얼른 가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새 ‘나쁜 엄마가 된 건 아닐까’ 하는 미안함과 죄책감으로 변해, 유주의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습니다.


‘아이를 맡겨두고 단 1분도 허투루 쓰지 말아야지.’ 유주는 그렇게 다짐했습니다. 그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일이야말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것에 대한 미안함을 덜고, 자신을 납득시킬 방법이라 여겼습니다.


아이에게 첫날은 모든 게 신기해 보였습니다. 아이는 엄마와 인사를 나눌 새도 없이, 담임선생님의 다소 과한 반가움에 정신이 팔려 교실로 쏙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렇게 얼떨결에 작별 인사를 하고, 얼떨결에 놀이를 하며 보낸 며칠이 지나자 본격적인 등원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아이는 엄마와 떨어지기를 강하게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들이를 좋아하던 아이가 옷도 입지 않겠다며 버티고, 머리도 묶지 않겠다며, 신발조차 신지 않겠다고 버텼습니다. ‘오늘은 그냥 집에 있을래요.’ 아이의 그 한마디는 불안과 낯섦이 섞인 진심이었습니다.


어린이집 현관 앞에서 엄마의 바짓가랑이를 꼭 붙잡고 눈물을 똑똑 떨구는 아이를 보며, 유주도 결국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아이를 떼어놓는 그 순간, 출근하는 것도 아닌 엄마가 스스로 큰 죄를 짓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떼어놓고 돌아와 유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싱크대 가장자리까지 아슬아슬하게 쌓인 그릇들을 해치우는 일이었습니다. 세탁기 버튼을 눌러주고, 거울에 튄 물자국과 냄새나는 욕실을 청소했습니다. 그럼에도 한 번 시작한 설거이를 한 번에 끝낼 수 있다는 작은 희열, 젖은 발로 거실을 뛰어나오지 않아도 된다는 자유. 그 사소한 것들이 유주의 마음을 묘하게 설레게 했습니다.


집안을 깨끗이 치우는 일도 물론 보람이 있었지만, 유주는 어딘가 허전했습니다. 그래서 그날부터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자격증을 하나 따보자.’ 여러 자격증을 검색하던 중 ‘공인중개사’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왠지 유주네 재테크에도 도움이 되고, 나중에는 공인중개사라는 직업을 가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유주의 공부.


처음엔 어디서부터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며칠 전 광고에서 본 인터넷 강의가 떠올랐습니다. 자격증 시험 준비 카페에도 가입해 여러 정보를 얻고, 기출문제를 다운로드하여 출력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는 여러 가지 유혹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아파트 단지 안 독서실로 책을 싸들고 들어갔습니다. 넓은 교실엔 유주와 한 명뿐. 책장을 넘기는 소리마저 미안해질 만큼 조용한 곳에서 유주는 몇 달간 철이든 수험생이 되어 공부를 했습니다.


그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놓고 놀고만 있는 게 미안해 시작한 공부는 어느새 유주 자신을 위한 투자이자 도전의 시간이 되어 있었습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내년에 또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내년에 또 하면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올 한 해 안에 끝내겠다는 결심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우물을 팠습니다.


처음 유주에게 공부는 그저 죄책감을 씻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그것은 자격증을 따고 못 따고를 떠나 자신을 좀 더 멋지게 바라보게 하는 ‘안경’이 되었습니다. 똑같은 고무줄 치마를 입고 욕실청소를 하던 자신이, 이제는 같은 옷을 입고 있어도 책을 펴고 펜을 쥔 자신의 모습이 더 예뻐 보였습니다. 무언가에 몰입하고 빠져드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가장 잘 아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그래서 유주는 스스로를 칭찬하고, 점점 자신이 자랑스러워졌습니다.


그 후로 어린이집 앞에서 우는 아이를 봐도 더 이상 죄책감이 들지 않았습니다. ‘엄마도 엄마의 인생이 있어야 행복하구나.’ 유주는 그 사실을 공부를 통해 깨달았습니다.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하자 가족에게도 더 친절해졌습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관대하고, 세상에 대한 마음이 너그러워집니다. 자신을 사랑하게 되면 세상도 긍정적으로 보인다는 사실을, 유주는 이제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한가 봅니다.

유주는 오늘도 가방에 책을 한 보따리 싸들고 공부를 하기 위해 조용한 독서실 문을 열었습니다.





[함께하는 작가님]

지혜여니 / 따름 / 다정한 태쁘 / 김수다 / 바람꽃 / 아델린 / 한빛나 / 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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