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롱쉬의 선정이는 오늘도 아침부터 분주하다. 식구들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느라 전복을 다듬고 썰어, 참기름에 살살 볶는다. 미리 불려 물기를 빼둔 쌀을 더해 함께 볶다가 물을 부어 전복 솥밥을 짓는다. 전복밥에는 쪽파와 들기름, 깨를 넣어 보기만 해도 고소한 양념장을 종지에 담아 식탁에 곁들인다.
아침이라 입맛이 없을 수 있으니, 입맛을 돋워줄 상큼한 오이 탕탕이와 싱싱하고 살이 통통한 갈치도 꺼내 구워준다. 국이 없어 허전한 마음이 들어, 아이들과 남편이 좋아하는 엄마표 구운김도 들기름을 발라 몇 장 구워둘 예정이다. 주방 가득 퍼지는 고소한 향기에 없던 입맛이 살아나는 듯하다.
그 냄새와 더 고소한 ‘지글지글’ 소리에 이끌려 식구들이 하나둘 주방으로 모여든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선정이는 덩달아 신이 난다. 종종종 주방을 오가며 수저와 젓가락을 놓고, 밥이 뜸 들기를 기다린다. 동시에 갈치를 노릇하게 굽고, 유난히 바삭하게 구워진 김을 먹기 좋게 잘라 식탁에 차려놓는다.
“왜 엄마 밥은 없어요?”
아이들이 어김없이 묻는다.
“응, 엄마도 먹을 거야. 어서 따뜻할 때 먹어.”
그렇게 말하며 아이들과 남편이 들고 나갈 음료를 준비한다.
찬물을 좋아하는 큰아들에게는 얼음을 몇 개 띄운 생수를 보냉병에 담아 가방 옆에 놓고, 감기 기운이 있는 둘째에겐 40도의 미온수를 보온병에 담아 책가방 옆에 놓아준다. 남편에게는 카풀하는 동료의 커피까지 챙겨,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캐리어에 담아 미리 올려둔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선정이는 잠깐 식탁에 앉아 식구들의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본다. 더 필요한 건 없는지, 부족한 건 없는지. 식구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바라보다 같이 몇 숟가락 밥을 뜬다. 처음엔 입맛이 없었는데, 먹다 보니 입맛이 돌고, 함께 먹는 아침상이 좋아서 한 숟가락 더 뜨게 된다. 사실 안 먹어도 배부르다.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다.
식사를 먼저 마친 식구들이 하나둘 양치를 하고 나갈 채비를 할 무렵, 선정이는 현관 앞으로 나간다.
식구들의 엘리베이터를 미리 잡아 바쁜 아침 시간을 조금이라도 단축시켜주고 싶은 마음에서다. 이건 타이밍이 생명이다. 너무 일찍 눌러도 안 되고, 너무 늦게 눌러도 안 된다. 나름의 노하우라기보다 그날의 운이다. 운이 좋아 엘리베이터가 일찍 도착하면 일찍 내려갈 수 있어 좋고, 늦으면 늦은 대로 오래 배웅할 수 있어서 좋다.
“아싸! 엘베 바로 왔다!”
아이들과 남편이 기분 좋게 외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탄다. 그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선정이는 행복하다.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 출근하는 식구들과 눈을 맞추고 안아주는 짧은 순간. 운이 좋으면 뽀뽀도 살짝 건넬 수 있는 행운의 시간이다. 그러니 빨리 와도 좋고, 늦어도 좋다. 오늘도 가족들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는 모습을 보았다는 사실, 그것 하나로 마음이 벅차오른다. 그 장면 하나로 하루가 다 채워지는 것만 같다. 오늘 하루도 엄마의 집밥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었길 바랄 뿐이다.
씩씩하게 웃으며 집을 나서는 가족들의 뒷모습을 보며, 기분 좋은 하루의 출발을 느낀다. 그래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래야 자신이 할 일을 다했다는 생각이 들어, 비로소 식탁으로 돌아와 천천히, 느긋하게 아침을 먹을 수 있다.
얼마 전 방송에서 본 노부부의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평생 남편을 위해 삼시세끼를 준비해온 할머니가 남편의 죽음 이후 영양실조에 걸렸다는 사연이었다. 할머니는 오십 년 넘게 식사를 차려왔지만, 사실 그 밥상은 남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도 고른 영양이 되어준 셈이었다. 그러나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밥을 해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그날 이후로 밥을 짓지 않고, 불규칙하고 간단한 식사로 버티다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셨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보고 선정이는 많은 생각이 교차했다. 가족을 위해 밥을 짓고, 그들의 하루를 위해 최선을 다해왔지만, 어쩌면 그들이 거기에 있었기에 자신이 밥을 지을 힘을 얻은 것은 아닐까. 힘들여 밥을 짓는 일이 단지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먹고 웃는 시간 속에서 자신의 마음과 몸에도 영양을 채워준 일이 아니었을까.
밥을 짓는 일은 혼자 하는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온 식구가 함께 차린 식탁이었다. 그들은 엄마가 차려준 밥을 먹기만 한 것이 아니라, 함께 맛있게 먹어주고,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등교 전과 출근 전의 짧은 눈맞춤과 포옹으로 선정이를 다시 빛나게 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서로가 함께 근사한 식탁을 차려온 것이다.
비록 누군가가 선정이를 위해 근사한 상을 차려준 적은 없지만, 가족이란 결국 서로의 역할에 충실한 것. 그것이 서로에게 든든한 영양소가 되어주는 일이 아닐까.
진짜 맛있는 밥은 쌀과 물로만 차려지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고마움을 알고, 서로의 든든함에 기대고,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주는 일. 그것이 가족이고, 선정이는 그중 ‘그냥 밥’을 담당하는 것뿐이다.
덕분에 혼자라면 절대 해먹지 않았을, 아직 따뜻한 전복밥과 갈치 한 토막을 자신을 위해 가장 예쁜 그릇에 담는다. 그리고 천천히, 조용히, 여유로운 아침을 즐긴다.
[함께하는 작가님]
지혜여니 / 따름 / 다정한 태쁘 / 김수다 / 바람꽃 / 아델린 / 한빛나 / 새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