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앉아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야외 테라스 한편에 홀로 앉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요. 조금 더 날이 짧아지면, 이 계절의 이 시간이 지금처럼 고맙지도 낭만적이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반짝이는 햇살이 너무 찬란하게 눈이 부셔서 실내에 머무는 건 날씨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만 같습니다. 방심하는 순간 훅 불어오는 바람에 ‘들어갈까?’ 잠시 마음이 흔들리지만, 이 얼마 만에 하는 광합성인지요. 살짝 차가운 듯한 공기가 오히려 상쾌하게 느껴지는, 일 년 중 며칠 안 되는 보석 같은 날입니다. 테이블 위의 커피 향보다 골목에서 바람에 실려 오는 낯선 향기에 집중합니다. 향기를 싣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언뜻언뜻 들려오는 맥락 모를 대화에도 귀를 쫑긋 세워봅니다. 잠깐의 의도된 엿들음으로 그들의 관계를 유추해 보고, 그들의 목적지는 어디일지, 손에 쥔 건 무엇인지, 핸드폰을 쥔 채 걷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는지, 손을 잡았는지 팔짱을 꼈는지, 상대의 보폭에 속도를 맞춰주는지 아닌지—너무 많은 세세한 것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것들로 나만의 도화지 위에 한 폭의 그림을 그려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궁금한 건, 그들의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는 겁니다. 예전에 TV에서 ‘연예인의 가방 속엔 무엇이 있을까’ 함께 들여다보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방을 들여다보는 일은 그 사람의 은밀한 속내를 엿보는 일과도 같아서, 보는 사람도 내보이는 사람도 어쩐지 살짝 민망해지는 것 같습니다. 만약 누가 제 가방을 본다면 더더욱 부끄러워 귀까지 빨개질 것 같아요.
가방 한쪽 구석에 구겨져 처박혀 있는, 날짜가 한참 지난 영수증들. 왜 버리지 못하고 그대로 넣어 두고 다니는 걸까요. 예전엔 가계부를 쓰느라 모아두던 습관이 아직 남은 걸까요.
또 다른 구석에는 작은 손지갑이 있습니다. 돈은 하나도 없고, 신분증과 상품권, 그리고 아이가 어릴 때 적어준 그림 한 장, ‘사랑해요, 엄마’라고 적힌 쪽지 한 장이 들어 있습니다. 이젠 쓸 일도 거의 없지만, 없으면 허전한 지갑이지요. 어쩌다가 가방이 무거워 꺼내두고 외출한 날에는 꼭 필요해지는, 참 기묘한 존재. 한때는 장지갑이 유행이라 현금이며 카드며 잔뜩 쑤셔 넣고 다니던 적도 있었지만, 곧 있음 애물단지가 될 것만 같습니다. 그리고 가방의 한쪽 작은 주머니엔 남편의 신용카드가 하나 들어 있습니다. 가방 빠르게 꺼낼 수 있는 위치거든요. 문득 한도가 얼마일지 궁금해지네요. 주로 텃밭(야채가게)에 가서 야채 사고, 과일 사고, 커피랑 빵을 사 먹는 게 인생 최고의 낙인 저를 알기에 ‘맛있는 거 다 사 먹어’라는 고마운 남편. '가방도 사고 옷도 사고 사고 싶은 거 다 사'라는 남편. 그래도 세 번쯤 남편 카드로 커피를 샀다면, 그다음 한 번은 제 카드로 사는, 스스로 꽤 공정하다고 믿는 여자랍니다. 하지만 언젠가 정말 맘에 드는 가방이 나타나면 남편 찬스를 써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혹여 읽지 못할지라도 항상 가방에 넣어 다니는 책 한 권과 그의 짝꿍인 형광펜과 인덱스가 들어 있는 필통도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잠깐의 짬이 생겼을 때 핸드폰을 먼저 보지 않으리라는 나름의 다짐에 가까운 노력의 흔적입니다.
남들의 가방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그 속을 들여다본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무엇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깔끔한 성격인지, 털털한 성격인지.
그래서인지 제게 가방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미련이자 진심이자 안심입니다. 제 가방 안에는 나의 습관과도 같은 삶의 조각들이 들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 속내를 다 내보이는 건 부끄럽다 여기 지기도 하는가 봅니다. 그럼 앞으로 저는 가방에 무엇을 넣고 다니게 될까요. 무엇을 빼고, 무엇으로 그 자리를 다시 채우며 살게 될까요.
[함께하는 작가님]
지혜여니 / 따름 / 다정한 태쁘 / 김수다 / 바람꽃 / 아델린 / 한빛나 / 새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