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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눈송이 Oct 31. 2024

거대한 혜성의 벼락같은 다이빙

  진득하게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그것이 게임이든 스포츠든 사람이든 상관없이 무언가에 폭 빠져 사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내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우리 가족에겐 중독 유전자가 없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대한민국을 들썩였던 트로트 열풍에도 우리 가족은 끄떡없었고 우리나라를 다 터뜨려 버릴 기세였던 애니팡도 우리 집에서는 오래가지 못했다. 흥미가 사라져 버리는 것, 마음이 떠나버리는 것에는 어쩔 도리가 없다. 적당히 좋아하고 마는 것이 나를 잔잔하게 만드는 동시에 고요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한편으론 게임에 중독된 사람이나 OO덕후라 불리는 사람이 부럽기도 했다. 풍-덩 빠져서 헤엄칠 수 있는 저만의 바다가 있는 셈이니까. 나는 철썩이는 파도의 하얀 거품보단 달빛에 반짝이는 잔물결이 어울리는 것만 같았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롭고 단조로운 날이었다. 꼿꼿할 것 같던 더위도 산 너머로 한걸음 물러서고 매미도 나뭇잎에 파묻혀 가쁜 숨을 가라앉힌다. 햇빛에 달아올랐던 얼굴을 달빛에 식히며 차분히 반짝이는 여름날의 저녁이었다. 별들도 하나둘 몸을 밝히기 시작하던 그때, 갑자기 물속으로 푸웅-덩 별 하나가 떨어졌다. 거대한 혜성의 벼락같은 다이빙이었다. 보기만 해도 몸이 절로 찌릿해지던 그 자리에는 동심원이 끝없이 생겨났다.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커지는 원의 모습은 마치 찰랑이는 나이테를 닮았다. 둥그런 물결을 따라 내 마음은 자꾸만 둥실둥실 철썩철썩 거렸다. 이게 뭐지? 내가 왜 이러지? 이렇게까지 일렁인다고? 놀라움과 의아함, 당혹스러움 그리고 기분 좋은 설렘이 뒤섞여 하얀 거품을 만들어 내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드디어 나만의 바다에 풍-덩 빠져버렸다는 것을!


  구명조끼도 없이 덜컥 바다에 빠져버린 나는 이리 치이고 저리 휩쓸리며 연신 하얀 거품을 토해냈다. 바다에 이는 하얀 물결을 보며, 바다는 내가 살던 세상과는 분명 다른 곳임을 깨달았다. 경계선이 무엇인지조차 모를 것 같은 광활함과 파도 파도 끝이 없지만 어디든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웅숭깊은 세상이었다. 나는 더이상 바다에 빠지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임을 기꺼이 짐작했다. 바다가 깊고 광활한 이유는 저기 저 깊숙한 곳에서 퐁퐁퐁퐁, 때론 콸콸콸콸 솟아나오는 마르지 않는 샘이 있기 때문이다. 두 손을 모아 조심스럽게 떠올린 샘물은 지금껏 내가 본 것 중에서 가장 티 없이 맑고 깨끗했다. 어떠한 불순물도 섞이지 않은 채 오롯이 샘물 그 자체로 빛나던 투명함이었다. 나의 바다에 이토록 투명한 마음이 있었다니, 온 바다가 투명해지는 착각에 빠질 만큼 기분 좋은 발견이었다.


  나의 바다가 생기니 다른 바다도 보이기 시작했다. 둥실둥실 떠다니다 마주치기도 하고 때론 다가가기도 다가오기도 하며 나와 우리는 따듯한 물결을 낳았다. 물속에 있을수록 내 주위가 따듯해지던 것은 나의 체온 때문이 아니라 혼자가 아니어서 그런 것임을 그제야 알았다. 서로의 샘물을 내보이고 서로의 바다를 엿보며 나의 몸짓은 조금씩 바다에 어울리는 헤엄이 되었다. 손장구 발장구가 만들어 내는 물결이 그에게 찰랑이며 가닿길 바라면서도 그래봤자 그에겐 발등을 적시는 파도로 부서질 것임을 알기에 나의 동심원은 커졌다 작아지길 반복한다. 그러다 결국엔 그냥, 다른 이유없이 그냥, 헤엄치며 나아간다. 나의 물장구는 가닿기 위한 몸부림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에 자지러지는 표현일 뿐이다. 좋아하는 마음과 욕심을 구분할 줄 알고, 좋아한다면 단순한 궁금증이나 호기심은 기꺼이 접어둘 줄 알아야 한다는 걸 헤엄을 치며 배운다. 거대한 혜성의 벼락같은 다이빙, 물속으로 뛰어든 것은 혜성이 아니라 나였다. 오늘도 나는 찰랑찰랑 어-푸 어-푸 철썩철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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