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굵직한 시기마다 남는 인연이 있다. 중학교 시절,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 그것은 마치 그 시절에 대한 기념 선물을 받는 것만 같았다. 어여쁘게 물든 보자기 위에 그 시절을 꼭꼭 주워 담아 꼼꼼히 싸매고, 어울리는 향기를 두어 번 칙칙- 두른 뒤 내 품으로 덥석 받아내는, 기념 선물 같은 인연들.
유머와 재치로 나의 딱딱함을 무장해제 시키는 사람, 나이는 같지만 늘 배움에 한 걸음 앞서 있어 스승이라 여기게 되는 사람, ‘나’라는 사람을 그 자체로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사람. 모두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들이다. 인디언은 친구를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표현한다.
닮은 구석은 닮아서 좋고, 다른 구석은 이해할 수 있어서 좋다. 남이었다면 이해하기 어려워서 놓아버리고 마는 것들도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면 어렵더라도 이해하고 싶어진다. 나와는 다른 친구의 모습은 결국 친구 그 자체가 되고, 사랑을 밑바탕에 둔 다름은 결국 사랑이 된다. 다르다는 것이 그럴 수도 있음이 되어 포용할 수 있는 품이 넓어진다. 내 것이 아님에도 내가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들의 흔적일 것이다.
묵은 인연이라도 친밀한 정도가 팽팽히 당겨지는 때가 있고 느슨하게 풀어지는 때가 있다. 힘주어 당기거나 일부러 느슨해지려 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친밀함의 파동이 있다. 올해는 승유와 긴 파장을 만들었다. 하하호호 깔깔깔깔 하는 우리의 웃음소리가 마치 파장을 감싸는 음률 같았다. 덕분에 웃는 순간이 많았다. 함께 많이도 웃고 많이도 행복했다. 웃는 순간만큼은 어떤 근심 걱정도 다 뭉개버릴 수 있다는 것을, 때론 그냥 호탕하게 웃으며 뭉개버릴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승유와의 긴 파장을 만들어 내면서 마음 한편으로는 다른 친구들과의 파장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파장이 짧아진 것 같아 마음에 걸린다. 하지만 이것은 변화무쌍한 파동이라는 것을 기억한다. 올해 승유와의 긴 파장이 찾아온 것에 감사하며, 친밀함의 파동에 몸을 맡긴다.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들을 생각한다. 내 등에 짊어진 그들의 슬픔 또한 생각한다. 올해도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느라 고마웠다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