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봉오리가 살며시 하지만 분명히 피고 있다. 앙다물고 있던 꽃잎이 바람에 일렁이며 슬며시 힘이 빠진다. 이제는 어느 정도 꽃술이 보이고 꽃잎의 모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 나는 이렇게 생긴 꽃이구나. 안으로 파고들수록 더더욱이 볼 수 없었던 나의 모습은, 사실 비집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비집고 나와야지만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난 세월을 돌이켜봤을 때 스스로 가장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하는 모습이 무엇이냐고 친구가 물었다. 반가운 질문이었다. 지금 내가 가진 모습 중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고 싶었다. 단단한 듯 부드러운 꽃잎 중에서도 무늬가 예쁜 것을 골라 대답했다. “정답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맞고 틀린 것은 나에게 중요한 문제였다. 옳고 그름, 선과 악 그리고 나와 남.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많았고 자주 물음표에 휩싸였으며 때때론 괴롭기도 했다. 이해되지 않는 남이 쌓일수록 이해하지 못하는 나도 쌓였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 나는 왜 이렇게 타인을 수용하는 마음이 부족할까? 마치 시소가 균형을 잡으려는 듯 아슬아슬한 수평 놀이를 이어갔지만 결국 땅에 닿는 건 나였다. 아, 나는 타인에 대한 포용력이 부족한 사람이구나.
나의 결점을 알아챘을 때의 마음은 꼭 씹으면 씹을수록 떫어지는 단감을 닮았다. 첫입은 달았는데 뭉갤수록 입 안이 너무 떫어져서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떫은 단감.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만나는 사람마다 방법을 묻고 배우고 부러워하며 최선을 다해 고민했다.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던 중 의견이 나뉘었고 한 친구로부터 흑백논리적 사고가 심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내 나름대로 애쓰던 시기에 나의 노력과 정반대되는 말을 들으니 상처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고스란히 상처가 되었다. 네가 나에 대해서 뭘 아냐는 억울한 마음이 속에서 메아리 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그때 그 상처를 받았어야 했다. 한마디로 나이스 타이밍이었던 것이다.
‘흑백논리적 사건’ 이후로 난 떫은 단감을 입안에 가득 머금고 흑도 백도 가까이 두지 않으려 애썼다. 내 생각이 어딘가로 치우친 건 아닌지 끊임없이 경계하고 의심하고 조심했다.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것도 중요한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있겠지.”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마음에 새기며 조금씩 입안의 단감을 삼켜 넘긴다. 떨떠름한 혀 끝 아래로 은은하게 단맛이 맴돈다.
그렇게 상처는 아물고 자국을 남겼다. 꽃잎의 무늬가 되었다. 정답은 없다는 꽃말을 가진.한 살 한 살 늘어갈 때마다 나이가 든다기보다 여물어 가는 느낌이다. 그래서 세월이 쌓인다는 것은 나에겐 퍽 설레는 일이다. 활짝 핀 나는 어떤 모습일까? 느리고도 흐릿하지만 조금씩 선명해지는 개화를 향하여 어김없이 설레는 가을바람이 불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