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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퍼유의 밀린 일기

ep.15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면접을 보러 간 사람이 있다??

by 페퍼유

드디어 다가온 삼성물산 패션부문(당시 제일모직) 최종 면접.

제일 가고싶었던 회사였기에 열심히 준비했지만 긴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제일 걱정이었던 건 “면접날 뭐 입지?”였다. 면접 봤던 다른 회사들은 대부분 <정장> 아니면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규정이 있었는데, 삼성물산의 드레스코드는(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나지만) <자신을 제일 잘 표현할 수 있는 복장>이었다. 차라리 비즈니스 캐주얼이 훨씬 쉬웠다. 며칠 동안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옷이 무얼까 고민했다.


그렇게 고른 나의 면접 복장은, 론칭 전날 밤새서 산 H&M X 마르지엘라 콜라보 블레이져, A.P.C 청바지, 그리고 하나쯤은 있어야 할 것 같은 자사브랜드 빈폴 셔츠를 입었다. 문제라면 문제는 너무 매일같이 입은 청바지라 무릎과 허벅지가 찢어져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 A.P.C 생지데님을 입어서 자기 몸에 맞게 자연스럽게 커스텀하는 것이 트렌드였다. 일주일에 거의 다섯 번을 입은 이 청바지는 나의 역사를 함께한 옷이었다.

면접 대기실에 도착해서 보니 나만큼 몇 날 며칠을 고민한 것 같은 준비생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비즈니스 캐주얼이라는 안전한 선택을 했다. 순간 나도 그냥 ‘멀끔하게’ 입고 올걸 그랬나 하는 고민이 들었다.


내 순서가 왔다. 준비한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한 만큼 실수하지 않고 잘 발표했다. 다행히 면접관분들의 표정이 좋아 보였으나 나는 내내 내가 왜 이 옷을 입었는지 물어봐주지 않으시면 어쩌지, 그냥 정말 “면접에 찢어진 청바지 입고 온 걔”로 남으면 어쩌지 노심초사였다. 끝까지 물어봐주시지 않으면 그냥 내가 먼저 말씀드려야지! 생각하던 찰나에 너무나 다행히도 한 팀장님께서 질문을 해주셨다. “오늘 선택한 면접 복장에 이유가 있나요?” 궁금증+’ 이유가 당연히 있겠지’ 하는 질문에 나는 스스럼없이 이유를 말씀드렸다.


우선 제가 입고 온 이 마르지엘라와 H&M의 콜라보 블레이져처럼, 생각하지 못했던 콜라보레이션 기획으로 소비자들에게 재미와 기쁨을 주는 기획을 하는 MD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이 아이템을 선택했습니다.


또한 이 데님팬츠는 제가 대학 신입생 시절 구매하여 매일 같이 입었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너무나도 빳빳한 생지 데님이었지만 입으면 입을수록 부드러워졌고, 제 체형에 맞게 워싱이 되고 찢어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생지와 같은 상태이지만, 이 회사에 입사하면 제일모직에 딱 맞게 커스텀 될 인재가 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서 이 데님 팬츠를 선택했습니다.


면접관님들의 흐뭇한 혹은 '요놈 봐라' 싶은 미소가 입가에 번졌다. 됐다 싶었다.


그렇게 나는 유일하게 나의 진심을 알아봐 준 제일모직에 공채 신입사원으로 합격했다.


이 에피소드는 재직 시에 찍은 에잇세컨즈 유튜브 채널 “8초 TV”에서도 얘기한 적이 있어 궁금하신 분들은 요거 한번 봐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GknQj3P75Tc

어리고? 흑발이었던 3년 전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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