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 넌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뭐야?
입사 후 3년 정도는 정말 정신없이 지나갔다. 비이커라는 편집매장이 생기고 자리 잡는 데까지 시간이 걸렸고 회사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서 중 하나였기에 해야 하는 과제와 업무는 계속 늘어났다. 비이커 내에는 집중적으로 브랜드를 육성하는 “모노브랜드”팀이 있는데, 초반에 Rag&bone과 Canada goose가 그 대상이었다. 이런 집중 육성 모노브랜드가 늘어갈수록 당연히 브랜드를 담당할, 어시스트할 사람이 필요했고, 희한하게 이런 기회가 나에게 주로 주어졌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다른 직원들은 하고 싶지 않아 해서 크게 마다하지 않는 나에게로 온 기회들이었다.
나는 여성복 바이어로 들어오긴 했지만, 새로운 브랜드를 담당해 보고 경험하는 것도 신입사원으로서 나쁘지 않은 기회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그랬다. 멀티브랜드 스토어 엠디는 한 시즌에 다양한 브랜드를 넓고 얕게 보는 사람이었다면, 모노브랜드 엠디는 하나의 브랜드를 한 시즌동안 어떻게 보여줄지를 정말 심도 있게 보아야 하는 위치였다. 사실 성향상?은 다양한 브랜드를 발굴하고 보는 게 더 잘 맞는 사람이었고, 그에 비해 모노브랜드 엠디 일이 재밌지는 않았지만, 평화주의자였던 나는 다른 위치에 내가 필요하다는데 굳이 반기를 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경험주의자의 정신을 살려 최대한 내가 잘할 수 있는 일, 그리고 내가 배울 수 있는 게 뭘지 생각했다. 캐나다구스는 단독 매장 운영과 홀세일까지 확장하는 비즈니즈였기에 기존에 하던 일과는 다른 할 일이 태산이었지만 그만큼 배우는 것도 많았다. 어시스턴트 엠디를 하면서 토론토 출장을 갈 일이 있었는데, 세계 각국에서 온 바이어들을 대상으로 브랜드의 비전을 얘기하는 콘퍼런스 장면은 너무나도 웅장하고 멋있어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비이커에는 나의 신입사원 때의 모습부터 계속 나를 좋게 봐주신 디렉터님이 계셨다.
한 번은 디렉터님이 나에게 진지하게 질문을 하셨다. “넌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뭐야?”
순간 바로 답변을 할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인턴 때부터 신입사원까지 “꼭 비이커의 멀티 바이어가 하고 싶고, 그 자리가 아니면 안 된다”던 다소 건방지고 패기가 있던 나였다. 하지만 어느새 나는 멀티 바잉이 아닌 모노 브랜드 바잉을 1년 넘게 하고 있었다. ‘하고 싶은 것’보다는 ‘그냥 회사에서 하라고 하는 것’을 하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회사는 회사이기 때문에 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위치에 가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도 필요하다. 분명 나는 멀티브랜드 바잉을 더 하고 싶고, 재밌어하는 사원이었지만 바쁜 업무에 치여서 이런 생각과 고민을 뒷전으로 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기회는 다시 왔다. 담당하고 있던 모노브랜드가 커지면서 담당할 사람을 새로 뽑았고, 나는 원래 있던 여성복 바이어의 자리로 돌아갔다. 일은 다시 배로 많아졌지만 1년여 만에 다시 하게 된 멀티 바이어 일은 너무도 재밌었고, 이게 내가 있어야 할 자리구나 싶었다. 예상하지는 못했다. 내가 앞으로 7년을 더 이 자리에서 일하게 될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