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 여성복 바잉하는 남자
여성복 바이어로 다시 컴백하기 전, 남성복 바이어 자리 제안이 들어왔다. 여성복 바이어 중 나는 유일한 남자였고, 내 여자 동기가 비이커의 남성복 바이어로 일하고 있었다. 둘이 자리를 바꿔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동시에 받았다. "남자는 그래도 남성복을 해봐야 한다"는게 당시 팀장님의 의견이었다.
다시금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이 뭘지 생각했다.
사실 남자로서 여성복을 바잉 한다는 건 분명 일정 부분의 진입장벽이 존재했다.
내가 입을 수 없는 옷을 바잉 하는 게 맞나? 하지만 내가 재미있어하는 것은 분명 여성복에 가까웠다. 남성복에 비해 훨씬 다양한 카테고리와 액세서리, 주얼리까지 바잉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이 내가 계속 여성복을 하고 싶은 이유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피팅할 수는 없지만 피팅을 완벽하게 해 줄 팀원이 있어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여성복 바이어를 계속 하고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패션은 “판타지”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의식주의 “의”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판타지를 채워줄 수 있는 것이 패션의 한 역할이자 바이어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남자가 보는 여자 옷, 여자가 보는 남자 옷도 중요한 게 아닐까? 아니 사실 성별을 크게 중요하지 않다. 여성복 바이어 4명(여3, 남1) 중 내가 의외로? 가장 페미닌하고 장식적인 스타일의 브랜드와 아이템을 좋아하고 고르는 편이었다. 누군가에게 판타지로서의 패션을 소비할 좀 더 많은 선택지를 주고 싶었기 때문에.
물론! 바잉은 절대 개인의 취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취향의 비율에 관한 얘기는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