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 비이커 사세요
지금은 서울이 아시아 패션의 허브이자 플래그십 역할을 하는 도시가 되었고, 비이커도 한국에 가면 꼭 가봐야 하는 매장이 되었지만(해외 발간 한국 여행 책자에 많이 소개되었다고 한다.) 초반에는 해외 브랜드들 아무도 비이커를 알지 못하던 때가 당연히 있었다.
좋은 브랜드를 데리고 오기 위해서 한동안 바이어들은 모두 영업직이었다. 영업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비이커의 현재와 비전을 소재하는 pitch deck이 필요했다. 나름 경영학과 출신이라 피피티를 많이 만들어 본 내가 소개자료 업데이트 담당을 맡았다. 지금까지도 ‘피피티는 예뻐야 한다’는 약간의 강박이 있는 나는 기존 소개자료를 그야말로 다 뜯어고쳤다. 깔끔하고 예쁘게 정리되어 있어야 읽어보기라도 할 테니까.
그리고 바잉하고 싶은 브랜드에 장황한 소개와 함께 메일을 보냈다. 반 정도는 답장이 오지 않았고, 나머지 반의 반 정도는 “바잉은 장담할 수 없지만 우선 쇼룸에 한번 와 봐”라는 답변을 보냈다.
전쟁은 그때부터였다.
쇼룸에 가서 비이커가 어떤 스토어이고, 어떤 브랜드를 바잉하고 있는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지를 현장에서 설명하고 설득하는 시간을 가졌다. 쇼룸 어포인먼트를 잡아주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그러면 쇼룸을 수소문해서 찾아가기도 했다. 긴장된 마음을 감추려 오히려 당당한 애티튜드+머릿속엔 어떻게 비이커를 소개할까 생각하며 들어간 쇼룸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멀티숍 바이어의 설움 같은 거랄까.
초반의 이런 시행착오들을 거쳐 비이커가 인지도를 갖고 해외 브랜드들이 먼저 입점하고 싶은 스토어가 되기까지는 제법 시간이 걸렸지만 발전적이었다.
그때는 어떻게든 더 좋은, 비이커와 잘 맞는 브랜드를 어떻게든 바잉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갖은 방식으로 구애?를 했지만 사실 브랜드의 입장에서도 이 스토어가 잘 맞는지, 브랜드를 잘 프레젠테이션해줄 수 있는지 당연히 파악해야 했다. 그런 면에서 비이커가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었던 요소는 2개의 플래그십 스토어(청담, 한남, 지금은 성수까지 3개)가 갖고 있는 팝업 공간이었던 것 같다. 비이커는 이 팝업 공간을 브랜드의 결에 맞게 완전히 customize 하여 매달 새로운 브랜드와 컬렉션을 선보이곤 했고, 브랜드들은 이 모습에 크게 매료되었다. 그 과정엔 유능한 VMD팀, 마케팅팀, 영업팀이 있었다.
구구절절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건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 매력적으로 보여주고, 담백하게 어필하는지(영업하는지)가 어느 때나 정말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사업을 하고 있는 나도 이 과정을 다시 거치고 있다.
P.S 지금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많아서(그렇게 많지는 않음) 빨리 얘기하고 싶은데 아직 회사 생활이 5년 여 남은 점.. 지겨우면 알려주세요 빨리 짧게 줄여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