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5 출장의 독
멀티숍 여성복 바이어는 유독 출장이 많았다.
1년에 시즌이 Pre-spring, Spring/Summer, Pre-fall, Fall/Winter 4개였고, 이에 맞춰 뉴욕 2번, 밀라노+파리 4번, 그리고 중간중간 있는 일본 출장까지 1년 중 대략 두 달 정도는 해외에 있었다.
바이어로서 출장의 목적은 다음 시즌에 나올 옷들을 미리 보는 건 너무나 설레고 재밌는 일이었다.
하지만 예쁜 걸 볼 수 있는 시간은 짧고 혹독했다.
파리 출장은 유독 힘든데 일주일 남짓의 패션위크 기간, 하루에 7개에서 10개의 브랜드를 봐야 하는 멀티숍 바이어였기에 한 시간 단위로 미팅이 있었다. 버젯이 큰 브랜드는 두 시간 정도를 시큐어 해놓긴 하지만 크지 않은 브랜드 같은 경우에는 이동시간까지 고려하면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미팅과 셀렉을 끝내야 했다. 러시아워에 차라도 막히면 그야말로 함흥차사. 9시에 시작한 일과가 저녁 7-8시는 되어야 끝났다. 그리고 패션위크 출장은 주말이 따로 없어 토요일 일요일까지 같은 스케줄로 근무를 하고 나면 체력이 바닥이 되곤 했다.
몇 개의 패션위크 브이로그 놓고 갑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2Had_L8NtF8
https://www.youtube.com/watch?v=3q75Z7jWLTA
이 와중에 패션위크 애프터파티 하나라도 더 가보려 했던 나..
그래서 그런지 파리 패션위크만 다녀오면 지독한 감기 혹은 몸살 한 번은 앓고 가는 게 루틴이었다.
출장->오더제출->오더컨펌
진짜 지옥은 복귀 후 시작된다. 출장 시에 본 50여 개의 브랜드 오더를 일주일 내로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급한 브랜드들은 출장지에서 오더를 제출하고 오긴 하지만, ‘취향의 비율‘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국에 와서 매장 점장님들과의 리뷰, 모든 팀원과의 회의를 통해서 어떤 브랜드의 어떤 아이템을 얼마나 어떻게 살지 확정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 일주일은 열두 시 전 퇴근이 불가하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 오더를 제출하면 브랜드로부터 컨퍼메이션(오더 확정)을 받고 비로소 오더가 마무리가 된다.
이렇게 혹독한 사이클을 일 년에 4번씩 하면서도 다음 시즌에 어떤 게 나오고 어떤 게 잘 팔릴지 고민하는 게 재밌었던 것을 보면 바이어 일은 Toxic 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