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8 서른두 살 첫 독립
내가 격리되어 있는 동안 도곡동으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이사할 때쯤이면 회사로 돌아가있겠지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3개월 간 격리를 하게 되며 얼떨결에 나는 격리가 끝나자마자 도곡동으로 출근하게 됐다.
도곡동은 한적하고 좋긴 했는데 서울의 최남단인 만큼 은근 어딜 가려고 해도 거리가 멀었다. 성북구에 살고 있던 나에게는 거의 서울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으로 출퇴근을 해야 했다. 20분가량 길어진 출근 시간이 은근히 괴로웠다. 독립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혼자 살아본 게 밀라노 교환학생 때뿐인 나는 멀어진 출퇴근 시간을 핑계로 독립의 기회를 꿈꿨다.
당시 내가 집을 구하는 기준이 몇 개가 있었는데,
첫 번째는 뷰가 있을 것. 본가가 1층이라서 조금이라도 고층에 살아보고 싶었다.
두 번째는 출퇴근 시 지하철을 한번 이상 갈아타지 않을 것. 사실 4호선만 안 타면 좋겠다 싶긴 했다. 4호선은 아침에 진짜 지옥철 그 자체였음.
세 번째는 투룸 이상일 것. 본가에도 붙박이 장에 엑스트라 옷장까지 옷에 묻혀 살다시피 했기 때문에 순수하게 드레스룸으로 쓸 수 있는 방이 꼭 필요했다.
두 번째 요소를 중심으로 회사가 위치한 3호선과 분당선 라인의 집을 10개 정도 봤는데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사실 처음으로 본 성수동 집이다. 5년 전 성수동은 쎈느, 어니언 카페가 생긴 지 얼마 안 되어서 조금씩 뜨고 있었지만 대부분이 공장지대로 저녁부터는 굉장히 조용하고 어두웠다. '이 동네 나름 흥미롭네' 싶었고, 집도 신축이라 좋은 컨디션에 나름의 공장뷰?도 있는 고층, 거실+투룸 구조로 완벽한 조건이었지만 나의 버젯보다 비싸서 포기하고 다른 몇 군데를 더 봤다.
하지만 처음 본 이 집을 보고 이미 눈은 높아졌고, '위치와 컨디션을 모두 고려하면 조금 비싸더라도 살아볼 만 하지'라며 어느새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기존 나의 소비 행태와 비슷함.
그렇게 나는 첫 독립을 성수동에서 월세로 시작했고 어느새 5년째 살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근 몇 년 간 성수동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이 일어나서 공장들은 거의 사라졌고, 매주 새로운 팝업과 카페, 레스토랑들이 생기고 없어지고 있다.
성수동에 산다는 건 장단점이 굉장히 명확하다. 멀리 가지 않아도 새롭고 재밌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의 이면에 살기에는 사실 너무 정신이 사납다. 주말에 운전해서 성수동을 빠져나가기 거의 미션 임파서블이라 내년엔 꼭 이사할 거라며 다짐하고 있는데 어떻게 되려나.
https://www.youtube.com/watch?v=5vc1CHyQ-Do&t=44s
그나저나 그때 독립이 아니라 성수동에 뭔가를 샀어야 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