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9 페퍼유의 탄생
어렸을 때부터 나는 집보다는 밖에 있는 시간이 긴 라이프를 즐기는 성향이 강했다. 시간이 나면 뭐라도 하나 나가서 더 먹고, 보고, 친구들을 만나는 걸 집에 있는 것보다 즐거워했다.
하지만 코로나를 기점으로 독립을 시작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라이프스타일이 바뀌었다. 집을 예쁘게 꾸미는 것, 집에서 맛있는 것을 해 먹는 것, 누워서 넷플릭스와 유튜브를 보는 것 등 33살까지 나에게 크게 즐겁지 않았던 부분들이 꽤 재밌다는 걸 깨달았다.
사실 유튜브를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부터 주변 사람들이 “유튜브 하면 잘할 것 같다 한번 해봐라”라고 얘기하긴 했었지만 막연히 어떤 콘텐츠를 헤야 하는지에 대한 감이 없었다. 한번 시작이나 해볼까? 하고 찍었던 브이로그식의 콘텐츠들은 사실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고, 있을 필요도 없는(?) 영상이라고 생각했다. 이왕 시작하는 거 컨셉추얼 하고 멋있게 시작하고 싶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who5SKpyHBs&t=26s
2021년 1월 1일 대망의 페퍼유 채널 오픈!!
지금 보면 오글거리고 엉성하기 짝이 없지만 나름 굉장한 시간과 공을 들인 영상이거든여.. 지금에야 편집 속도가 좀 붙었지만(그래도 느림) 당시에는 편집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어서 갖고 있던 아이패드 미니로 뚝딱거리며 만들고 공개한 페퍼유의 첫 영상이다.
“왜 페퍼유에요?” 라는 질문의 답은 두 가지인데,
QnA에서도 얘기했던 첫 번째는 기본적으로 내가 후추를 엄청 좋아한다. 모든 음식에 통후추를 갈아 넣어 먹을 정도. 그리고 둘째 고양이 이름이 후추인데 왠지 페퍼라는 이름을 내가 쓰면 귀여울 것 같다는 막연하게 귀여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QnA에서도 얘기한 적은 없던 채널 이름 후보가 하나 더 있었는데 <유모씨> 이다.
유+티모시를 줄인 건데(말하면서도 부끄러움) 뭔가 재치 있으면서도 기발한 이름이라고 생각했단 말이지.. 하지만 친구들이 상당히 말렸다. 친구들 말을 듣길 잘한 것 같다. 유모씨 했으면 뭔가 전자제품 리뷰 전문 유튜버 내지는 사회 인싸이트 공유 유튜버 약간 이런 느낌이었을 것 같음. (비하 아니고 이런 지식과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안 어울린다는 말!!)
무튼 그렇게 소소하게 일상과 소비,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공유하면서 내가 제일 많이 느낀 건,
'어딘가는 나의 취향을 좋아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내 취향이 대중적이지 않고, 매니악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의 취향을 공감해 주고 작은 디테일까지도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영상을 올릴 때마다 조금씩 더 깨달았고 이 깨달음이 너무 재밌고 짜릿?했다. 천리안 채팅 처음 했을 때 느꼈던 기분 뭐 그런 거랑 비슷하려나.
요즘은 워낙 기획 콘텐츠들의 시대라서 브이로거들이 경쟁력을 갖기 쉽지 않은 때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는 나의 일상, 여행, 일들을 틈틈이 아카이빙 해놨다는 것에 뿌듯함과 나름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통 바빠서 채널 신경을 못쓰고 있지만 하는 일이 조금 안정화되면 다시 열심히 할 거야 페퍼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