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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사로운 Dec 03. 2024

운전, 그게 뭐라고.

운전면허학원에 등록할 결심이 이리 어려울 일?

엄마, 미술선생님이 엄마차 타고 왔냐고 물어보시길래
우리 엄마 면허증도 없는데요? 그랬어.


그렇다. 난 그 흔하디 흔한 면허증이 없다. 장롱면허 가진 사람은 꽤 봤어도 면허증 없는 사람은 드물긴 하지. 면허증 없다고 하면 하하하 웃음 뒤로 다들 이제껏 뭐 했냐며 이해 안 된다는 그 눈빛. 근데 운전 못하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


운전을 하고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이른 아침 등교하고 야간자율학습 후 늦게 하교하던 고등학교 시절, 같은 방향의 친구 부모님 차를 자주 탔었다. 우리 집엔 운전하는 사람도, 운전할 차도 없었다. 매번 미안하게 감사하게 차를 얻어 타면서 승용차 뒷좌석의 안락함과 버스를 기다리고 타고 내리는 수고로움 없이 집으로 가는  편안함을 알게 되었다. 스무 살이 되면 면허 따고 차사서 두 살 아래 동생이 고3이 되면 내가 태우고 와야지 다짐했었다.

대학시절 지방에 사는 친구 집에 과제 겸 놀러 갔을 때다. 평소에 같이 지하철 타고 버스 타고 놀러 다니던 친구였는데, 본가에서 그 친구의 차를 타고 맛집을 가던 그날. 친구가 아닌 어른 같고, 귀여운 경차도 세단으로 보이더라.(그렇다. 대학에 가서도 면허는 따지 못했고 동생은 버스 타고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 지하철에서 아이가 잠들었다. 작고 마른 아이지만 나들이로 녹초가 된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곤히 잠든 아이. 뒤로 멘 작은 배낭의 어깨끈을 다시 매무새 하고 짧은 호흡으로 새 힘을 불어넣으며 미역처럼 늘어져 단잠에 빠져있는 아이를 다시 안아 집으로 향한다. 아, 운전만 할 줄 알았으면 이런 생고생 안 하는 건데. 

아이학교에서 과학문화이용권 카드(구 지원)를 나눠주었다. 적지 않은 금액이니 잘 이용해야지 하고 지정된 과학관, 박물관 중 가장 가까운 곳으로 다녀왔다. 천 원 단위의 입장료가 무색하게 왕복 택시비가 후덜덜. 운전할 수 있었으면 야무지게 이용권 다 썼을 텐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니 한번 더 가기가 무섭다.

별 일도 없는데 답답함이 몰려와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날, 상상해 본다. 볼빨간사춘기의 <여행> 노래를 들으며 커다란 SUV를 한 손으로 핸들링하는 나를, 여유롭게 콧노래를 부르며 속도감을 즐기는 나를, 끼익~주차를 하고 짙푸른 바다를 바라보해방감을 만끽하는 나를.


운전을 하면 편리한 게 한 두 가지이랴. 독립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도 많으리라. 여든을 바라보는 어머님 차 얻어 타고 아이들 병원 다니는 것도 죄송스럽고, 엄마도 운전 좀 라는 아이들의 타박도 이제 그만 듣고 싶다. 그래서 휴직한 올해는 꼭 운전면허증을 따서 운전을 해보리라 크게 마음을 먹었으나 12월인 지금, 운전학원 근처에 조차 가지 않았다. 평소 좀 느긋하고 게으른 구석이 있지만 하고자 하는 것,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숨겨져 있던 실행력이 불끈 올라오는 편인데 운전만큼은 자꾸 주저하게 된다. 운전을 해보겠다는 마음에서 한 걸음도 더 진전이 없는 걸 보니 내 마음의 상태가 운전을 안 하고 싶은 거구나.  하고 싶지가 않을까.


컴퓨터, 복사기, 핸드폰 등 기기 다루는 것이 미숙하고 큰 관심도 없다. 내가 만지면 오작동을 자주 일으켜서 겁도 난다. 유치원근무 초임시절, 유치원 자료실 대형 복사기 앞에서 안절부절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분명 가르쳐주신 대로 했는데 내가 사용만 하려고 하면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묵묵부답이거나 용지가 걸리더라. 섣불리 만지지는 못하고 복사기 왼쪽, 오른쪽만 번갈아 살펴보던 나.  옆반 선생님이 지나치지 않고 오셔서 툭툭 복사기 옆구리를 치거나, 전원을 껐다 켜니 윙~~ 다시 제할일을 한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손을 거친 코팅기가 말썽을 일으켰다. 그날부터 내 손은 마이너스 손이라 불렸다.

지난여름휴가 때였다. 숲에 들렀는데 너무 덥고 힘들어서 나와 둘째만 먼저 차에 가있겠다 하고 차키를 받아 들고 왔다. 시동은  남편이 핸드폰으로 켜두어서 타기만 하면 됐는데 내가 뭘 한 건지 차 시동이 꺼졌다.(지금도 모르겠다.) 차 안에서 시원하게 기다리려고 했는데 망했다. 시동한번 안 걸어본 나란 여자. 차 키를 꽂는 순간 차가 부앙~하고 앞으로 돌진할 것만 같은 아찔한 상상에 남편이 올 때까지 뙤약볕아래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가끔 차 안에 나와 아이들만 있을 때가 있다. 남편이 뭘 놓고 와서 찾으러 갔다던지, 편의점을 들른다든지 할 때. 그날은 둘째와  나만 있었는데 에어컨 바람이 너무 세서 추우니 꺼달란다. 차 타고 다닐 때  추워, 더워 말만 해봤지 내가 뭘 눌러본 적이 있었던가. 조금만 기다리자 하다가 추워도 너무 추워서 용기 내서 눌러보았다. 응? 라디오가 나온다.

이런 나, 덩치 큰 차를 만질 수 있는, 움직일 수 있는 용기를 어디서부터 얻어야 하는가.


또 하나의 걱정은 운전이라는 것이 내가 잘한다고(잘할 자신도 없지만) 아무 일 없는 게 아니고 사고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 있다는 점이다. 첫째랑 예술의 전당 전시회를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큰 아이랑 둘이 움직이니 택시는 참는다.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지하철역으로 가는데 차 사고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앞차는 보도블록으로 머리를 박고 있고, 충돌한 뒤차에는 카시트도 보인다. 순간 덜컥했다가 빈 카시트와 뒷좌석에 아무도 없음을 알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전화를 하고 차를 살펴보는 부산한 움직임과 곧이어 달려온 경찰차, 걱정스럽게 가던 길을 멈추고 쳐다보는 행인들. 도로 위에 서 있는 차주의 얼굴에 내 얼굴이 겹쳐 보인다. 어떻게 어떻게 하며 어쩔 줄 모르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내가 상상되어 고개를 돌려 지하철역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신기하게도 운전이란 걸 해봐야지 마음먹은 이후로 크고 작은 차 사고가 눈에 많이 보인다.) 남편은 사람만 안다치면 된다, 동네만 살살 다니면 괜찮다,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니다 라며 한껏 움츠러져 있는 나를 다독여주지만 불안과 걱정으로 겹겹이 쌓인 내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미술학원 선생님과의 대화를 전하며 둘째가 또 말한다.

 엄마, 그래서 면허는 언제 따는 거야? 계속 말만 하고. 이러다  또 못 따는 거 아냐?


이젠 대꾸할 말도 없다. 그동안 내가 아이들에게 해준 말들과는 다른 나의 행보에 움찔하며 눈만 흘길 뿐이다.

아이들이 그네, 인라인스케이트, 자전거 등을 배울 때, 주저하며 겁을 잔뜩 먹었을 때  해 준 말들을 떠올려본다.

처음에는 다 무섭고 어려운 거야.
연습하다 보면 잘할 수 있어.
처음엔 잘 못하고 넘어지는 게 당연하지.
어떻게 처음부터 잘해.
실수할 수 있어. 실수해도 괜찮아.
그러면서 배우는 거니까.


이 말들을 나에게다정하게 건네본다.

그리고 몇 마디 더 덧붙여보자.


카레이서 될 거 아니잖아. 병원, 마트, 아이들 학원, 분위기 좋은 카페 그 정도만 갈 수 있으면 돼.
차로 다니면 얼마나 편하고 좋겠어.
운전을 하며 느끼는,
지금은 상상하지 못할 자유로움이 있을 거야.
아니다. 운전은 당장 안 해도 괜찮아.
그냥 면허증만 따는 거야.
컴퓨터 자격증 따는 것처럼.
어때, 이러면 해볼 만하지 않겠어?
운전, 그게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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