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천만 명이 달린다는 말이 나올 만큼, 지금은 러닝이 거대한 흐름이 되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거리를 메우는 러너들, 도심을 가득 채우는 마라톤 대회. 달리기는 이제 단순한 운동을 넘어 하나의 문화와 시대적 상징이 되었다.
지난 5월, 나 역시 가족과 함께 영종도에서 열리는 마라톤에 참가했다. 연습 한 번 못 하고 나선 5km 코스였지만, “완주”라는 목표 하나만으로 달리기에 임했다. 행사장에 도착하니 사람들의 열기로 괜히 마음이 뜨거워졌다. 나는 비록 5km 러너였지만, 숨이 차면서도 가슴이 벅찼던 그 순간, 달리기가 단순한 운동 그 이상이라는 걸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때에 다시 펼쳐보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달리기의 의미를 새롭게 보여준다. 하루키는 서른셋에 마라톤의 발상지 그리스에서 풀코스를 완주하며 본격적인 러닝 인생을 시작했다. 소설가로서 긴 여정을 걸어가려면 무엇보다 체력과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는 자각에서 비롯된 선택이었다. 그 후 20년 넘게 그는 매일 달리며, 소설을 쓰는 힘과 리듬을 길러왔다.
그에게 달리기는 단순한 훈련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라 어제의 자신을 넘어서는 일,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충족감을 얻는 과정. 달리며 얻은 고독과 침묵은 그의 정신을 정화했고, 장편 소설을 완주할 수 있는 지구력과 집중력을 길러주었다. “주어진 개개인의 한계 속에서 조금이라도 효과적으로 자기를 연소시켜 가는 일,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며 삶의 메타포”라는 그의 고백은 지금도 깊은 울림을 준다.
하루키는 달리기를 통해 배운 원칙을 글쓰기에 그대로 적용했다. 리듬을 잃지 않고, 조금 부족하다 싶을 때 멈추며, 다음 날 이어가는 힘. 집중력과 지속력은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매일의 훈련으로 길러지는 것이라는 그의 통찰은, 소설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삶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효율이 떨어지고 고생스러워 보이는 행위 속에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달리기의 본질이자, 소설 쓰기의 본질이며, 어쩌면 인생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9월 무지개 매거진에서 우리는 하루키의 회고록을 함께 읽는다. 달리기를 말하면서 결국 삶을 말하는 한 작가의 기록 속에서, 각자의 ‘달리기’를 돌아보는 시간. 기록과 순위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을 납득하는 과정일 것이다.
함께 읽고, 함께 쓰고, 함께 달리며 서로의 여정을 응원하는 한 달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도 결국 달리기처럼,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기에 완주할 수 있는 여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