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떤 비밀

100일 글쓰기 32일 차

by 뵤뵤


'비밀'에 대한 철학을 공유해 볼까 합니다.


어떤 비밀은 내내 비밀이어야 본연의 가치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예기치 않은 해프닝이 우발적으로 품은 비밀이든, 자의적으로 함구하기로 작정한 비밀이든,


가벼운 입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존귀함이 생기지요.


존귀함은 신중함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절대 꺼내놓지 않기로 작정한 굳건함이 비밀스러움을 배가시켜요.


설령 비밀의 수명이 유한하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또 다른 비밀은 감추면 감출수록 병이 나요.


자신에게든, 타인에게든 은폐한다고 해서 이로울 게 없지요.


혼자만 품고 있으면 돌덩이가 되어 가슴을 짓누르는 그런 비밀 말입니다.


말 못 할 슬픔, 말 못 할 고통. 그리하여 서러움.


이 같은 감정을 꼭 하나의 단어로만 정의하라면 저는 "비애"라고 부르고 싶군요.


침식되는 시간 동안 말을 못 해서 퇴적만 거듭하다 돌덩이가 바위가 되어 버리는 거예요.


바위에 무게를 더하는 건 자기 연민도 한 몫하는 거 같아요.


목에 걸린 생선 가시를 평생 빼내지 못할 것 같은 자신이 애달파서요.


속으로 곪는다고들 하잖아요. 품고만 있다간 곪을 대로 곪는 비밀 말입니다.


이처럼 각자가 지닌 삶의 무게에 따라 비밀의 정의는 다양할 거예요.


다만 여기까지는 2025년, 지금을 살아가는 저의 비밀 철학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제가 가진 비밀들은 어떤 비밀에 속할까요.


털어놔서 가벼워질지, 후폭풍 탓에 더 무거워 질지,

직접 무게를 달아봐야 가릴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합니다.


말을 할까, 말까 고민될 때는 하지 말라고 하지요.


이도저도 자신이 없다면 얌전히 입을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겠습니다만,

그럴 인내심마저 없다면 말이 아니라 글로 써보는 겁니다.


불순물을 채 거르지 못한 투박한 감정이 불쑥 비어져 나와 당황할지라도요.


말은 한 번 입 밖으로 나오면 기억이 저지른 장난질로 본래의 형태가 변질되어 버려요.


듣는 사람의 자의적 해석이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왜곡하는 불상사가 일어납니다.


글 역시 읽는 사람 마음에 따라 다르게 읽힐 때가 있습니다만, 표현과 해석의 주도권이 오롯이 쓰는 자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그래서 제가 매일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가벼운 비밀 하나를 써 보려고 합니다.


백지에 늘어놓은 활자의 수만큼 가벼워질까 싶어서요.


저 사실은요.


그냥 쓰겠다고 호언장담했지만

쌀이 밥 되고, 우유가 치즈 되는 얘기도 쓸 거라고 배짱을 부렸지만,


두려움이 아예 없지는 않아요.


어느 날 문득 구독자 수가 줄어들면 '매일 일기장에 쓸법한 얘기를 써서 그런가' 자문하며

당시에는 제법 비장했던 저의 초심을 단번에 우습게 만들어요.


직장과 육아 둘 다 퇴근한 늦은 밤, 비축해 놓은 초고마저 없을 때 더더욱 그런 생각이 저를 괴롭게 만듭니다.


하루의 기운을 몽땅 써버려서 글 쓰는 뇌가 그로기 상태에 빠지는 거죠.


하지만 여러 글쓰기 선배들은 얘기합니다. 보잘것없는 괴로움마저 글로 쓰라 했지요.


수시로 한 몸같이 달고 살아 하잘 것 없어 보이는 나의 고민이 누군가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힘이 될지 모른다면서요.


그런데 여기까지 문장의 마침표를 찍었을 때, 제일 많이 힘을 얻은 사람은 아무래도 저인 거 같습니다.


제 글을 가장 많이, 가장 낱낱이 읽는 독자는 결국 저니까요.


비밀에 대한 개인적인 철학으로 시작해서 오늘도 매일 쓰기에 대한 다짐 같은 글로 결론을 내려요.


돌덩이처럼 저를 짓누르는 비밀은 아직 꺼낼지 말지 결정하지 못했답니다.


어떤 비밀을 어떤 모양으로 보여줘야 할까.


충실한 독자인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을 글을 쓰기 위해 마음속 깊숙이 가라앉은 비밀들을 저울질합니다.


다음은 그 어떤 비밀의 시간을 견뎌온 저를 다독일 만한 언어를 골라 볼 차례입니다.


엉킨 실타래인 채로 방치되었던 기억을 단장할 기대감에 더는 고독할 겨를이 없습니다.


쓸 수 있어서 감사한 밤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