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일 글쓰기 37일 차
남편을 일컫는 단어는 다양하다. 행정적으로는 배우자, 고상하게는 반려자, 귀엽게는 짝꿍. 나는 그를 뭐라 부르고 싶을까.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으로 배우자는 정 없어 보이니 일단 제쳐두고, 반려자는 너무 진지하니 잠깐 밀어놓고, 오늘은 짝꿍, 짝꿍이 좋겠다. 다행히 웬수라고 부르는 지경에 이르지 않은 걸 감사해하면서.
내 짝꿍은 나와 참 많이 다르다. 너무 달라서 우리는 영화 '아바타' 속 나비족과 인간이 조우한 장면처럼 서로가 신기하기 짝이 없었다. 처음부터 다름을 인정하고 시작한 관계였지만 본인 기준으로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성향을 있는 그대로 지켜봐 주기엔 많은 시간이 걸렸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어느새 결혼 생활 십여 년 남짓에 접어들며 어느 정도 서로를 내려놓고 용인하는 자세를 갖추게 되었으니, 우리는 이런 태도를 존중이라 부르기로 했다. ('포기'란 단어는 서글프니까 지양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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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지만(?) 남편은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걸 안다. 심지어 구독하고 빠짐없이 라이킷을 누른다. 지나간 연애를 글감으로 삼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괜찮아, 마지막 남자니까) 그는 내가 허구한 날 자기를 붙잡고 징징대다가 글로 징징대는 걸 새삼 다행이라 여기는 눈치다. 제 아무리 가족이라 한들 도돌이표 같은 투정을 질리지 않고 받아주기란 힘든 법이니.
브런치 작가가 됐을 때, 그는 가죽 공방에서 내 이름이 새겨진 카드지갑을 만들어 선물로 안겨줬다. 응원과 애정이 단순한 그의 진심이었을 텐데 단순하지 않은 나로서는 글을 쓸 때 매 문장마다 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아, 이러니 이은경 선생님이 글 쓰는 걸 남편에게 알리지 않는 게 좋다고 했구나!
어느 때부터인지 남편에게 나의 글이 어떻냐는 질문을 삼가게 됐다. 대부분의 경우, 남편은 내 글이 너무 길다고 하니까. 이런 쇼츠에 두뇌가 절여지다 못해 장아찌가 돼버린 사람 같으니라고. 장점이라면 가독성에 대한 평가만은 남편 말을 따르면 손해 볼 게 없다는 것이다. 쇼츠를 즐겨 보는 사람이 재미있다고 하면 진짜 재미있는 글이 아닐까.
하지만 이마저도 본인 위주 에피소드에만 극호의 반응을 취하는 걸 목격했기에 신뢰도가 추락했다. 남 일엔 1도 관심 없는 성향이 내 글을 읽을 때 역시 여과 없이 투영되는 것이다. 정말 줏대 있는 사람.
굳이 애써 글쓰기 자신감을 하락시킬 이유는 없으므로 설령 자아도취에 빠져도 좋을 글을 썼다 한들 남편에게는 먼저 의견을 묻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만약 참을 수 없이 칭찬이 고파져서 그에게 묻고 싶은 생각이 고개를 든다면 내 허벅지를 야무지게 꼬집는 편이 나을테다.
그는 차라리 말을 안 했으면 안 했지, 알랑방귀라고는 뀌어본 적 없는 대쪽 같은 사람이니까. 본인 의견에 '끙'하고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 '기껏 답해줬더니 그럴 거면 왜 물어봤냐'라고 도리어 역성을 내니까. 내가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하면 돼)인 거 진정 몰랐습니까? 당신?
남편은 아이가 숙제를 하는 곁에서조차 소파에 드러누워 쇼츠를 보는 사람이다. 그러고 보니 그가 집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다. 책보다는 유튜브 속 쇼츠로 고단했던 하루의 도파민을 채우는 사람이라 그렇다. 하긴 회사에서 검토해야 할 서류만으로, 자격증 시험 대비로 무겁게 끼고 다니는 교재만으로, 하루에 감당해야 할 활자의 양을 과분하게 충족시켰다니까 할 말이 없어진다. 그의 노고와 스트레스 해소 방식을 존중해야 진짜 존중임을 모르지 않는다.
우리 부부의 불문율은 절대 서로의 취향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지만 나는 간혹 탐욕에 가까운 꿈을 꾼다. 그와 카페에서 원하는 책 한 권씩 손에 들고 진한 커피 향을 맡으며 독서하는 데이트를. 스마트폰 따위 가방 깊숙이 봉인해 버리고.
기왕 글 쓰는 거 알아버린 그에게 희망사항이 있다면 글이 나란 사람을 이해하는 창구가 되어주길 바란다. 이 정도는 '탐욕에 가까운' 아니고, 소망이라 해두자. 말로 풀어놓으려면 문과 출신의 내가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여서 미괄식으로 마무리하는 구구절절함을 그는 절대 견딜 수 없어하니까. 부디 내가 쓴 글이라도 정독해 주길. 아무리 길게 느껴진다 해도 말이다.
우직한 외모와 달리 섬세한 그이라면 아마 이 글을 읽고 자신을 대상으로 풀어놓은 소회를 마주하는데 불편함을 느낄지 모르겠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데, 저마다 책 한 권씩 내기를 욕망하는 요즘엔 기록하는 자가 승자인 듯하다.
그러니까 남편, 자기도 억울하면 글 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