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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배로운 나날

100일 글쓰기 35일 차

by 뵤뵤


"눈 아프세요? 아프시면 얘기하세요."

"네?...... 네......"


녹내장을 진단받고 며칠 뒤, 필라테스 강사에게 안압이 올라갈 만한 동작은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목과 어깨, 허리의 통증 때문에 시작한 운동이었다. 척추를 올바로 세우고 상체의 뭉친 근육을 이완시키기 위해서 물구나무에 가까운 동작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었다. 다리를 머리 위로 높이 치켜세우고 버티는 동작을 할 때마다 세심한 필라테스 선생님은 내 눈의 불편감을 묻고 또 물었다. 그의 성의가 무색하게 분명히 답할 수 없는 점이 내내 안타까웠지만.


고작 아프다, 안 아프다 같은 단순한 표현일 뿐인데 대답하기 망설여지는 이유는 뭘까. 내가 느끼는 안구의 통증은 살갗을 바늘로 찔렀을 때 느껴지는 반사신경 같은 통증과 종류가 달랐기 때문이다. 눈의 통증은 모래시계처럼 찾아온다. 모래시계가 뒤집히는 순간엔 곧바로 알 수 없다. 안압이 올라가는지, 시신경이 시들어가는지. 모래시계의 모래가 떨어지는 속도로 서서히 눈망울이 무거워진다. 눈꺼풀이 뻑뻑하고 눈두덩이에 열이 오른다. 하루의 피로도에 따라 어떤 날은 아무렇지 않았고, 어떤 날은 충혈된 눈으로 수업을 마쳤다.


필라테스를 하는 동안 틀어진 몸의 정렬에 집중하기보다 눈에 신경을 쓰느라 긴장을 놓지 못했다. 퇴근 후 어렵사리 시간을 맞춰서 듣게 된 1:1 필라테스 수업은 애초에 달성하기로 했던 목적을 만족시키지 못하고 그렇게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녹내장 진단을 받은 지 몇 해가 조금 지났다. 마흔이 되자마자 들이닥친 불청객 같은 이 친구를 평생의 동반자로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몸의 신호를 순순히 받아들이기에 마음은 여전히 삼십 대 후반 언저리에 머물러 있었다. 만성질환은 노년이 되면 불운하게 겪게 될 일이라고 믿었는데 그 터무니없는 믿음이 깨지자 불안해졌다.


즐겨 먹던 맵고 짜고 단 음식들, 주 5일 8시간 이상 듀얼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일하는 눈을 스트레스 해소랍시고 늦은 밤까지 스마트폰으로 혹사시켰던 순간들. 건강을 돌보지 못한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가자 발등에 불 떨어진 것처럼 죄책감과 후회가 밀려들었다. 육십 대를 만기로 알고 이삼십 대에 빌린 돈을 마흔이 되자마자 조기 상환해야 하는 기분이랄까.


엉엉 운 적도 있었다. 녹내장 진행 상태가 극초기라는 안내를 자세히 받지 못했을 때, 불안감이 절정에 달했을 때 말이다. 제일 치명적인 눈물 버튼은 아이였다.

'아이의 청장년 시기를 두 눈으로 선명하게 담지 못하면 어떡하지.'

문득 이런 걱정이 떠오를 때면 예고 없이 눈물이 주르륵 흐르곤 했다.

또 하나 서글펐던 이유는 지금껏 원 없이 누려본 적 없던 자유에 덜컥 제동이 걸린 듯한 답답함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좋아하는 일에 후회가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주변의 기대와 기준에 적당히 맞추며 살기 급급했던 거 같다.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란 녀석은 눈에도 치명적이긴 마찬가지였다.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덜 받기 위해 불필요한 예민함을 걷어내야 한다. 걱정과 불안을 내려놓자는 구호가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다독이는 게 절실했다.



나에게 이로운 일을 하자.
지금 당장.
더는 미루지 말고.




'녹내장 환자의 금기사항'에 몰두하느라 정신을 낭비하는 걸 관두기로 했다. 해도 될지, 말지 재고 따지는 일 자체가 더 스트레스였으므로. 대신 몸에 좋은 습관을 내 것으로 만드는 일에 집중했다. 식습관과 운동으로 몸을 돌보고, 독서와 글쓰기로 정신을 가꾸는 일. 더불어 좋아하는 일을 찾아 최선을 다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녹록지 않은 매일 쓰기에 매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금 가장 좋아하는 일이 글쓰기이기 때문에. 엑셀 파일과 회계 프로그램 말고, 좋아하는 글을 읽고 쓰다 시력이 나빠지는 건 왠지 덜 억울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생을 관리해야 하는 만성질환을 일찍 얻은 후로 삶을 대하는 태도가 바꼈다. 생의 유한함과 지금의 소중함을 쉴 새없이 되새기며 순간을 소홀히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다. 건강할 때 지키지 못하고 아프니까 정신 차리냐고 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다만 무언가를 잃어봐야 귀중함을 안다는 진리가 나만 비켜나란 법은 없으니 이 얼마나 공평한 세상인지.


골짜기가 없으면 산이 아니라는 말이 위로가 된다. 나는 비로소 야트막한 언덕을 탈피하는 중이다.







<진단을 받았던, 그날의 기록>

휴가를 내고 병원 투어를 했다.
긴장감을 안고 받아 든 검진 결과지와 처방전들. 마치 20대와 30대 때 진 빚을 마흔이 되자마자 갚아야 하는 기분이다.

사실은 오늘 일정을 기복 없이 소화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울컥 쏟아지는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아이의 청소년기, 성인 시절을 오롯이 선명하게 눈에 담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들었던 것이다.

2주가 지난 지금은 시신경들을 오래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천하자는 것과 그만 걱정을 내려놓자는 생각뿐이다.

아직까진 하루에도 몇 번씩 울적한 마음이 들지만 매일 산책하고 뛰며 감정을 컨트롤하려 애쓰고 있다. 무릎과 발목 보호를 위해 기능 좋고 예쁜 러닝화도 나에게 선물했다. 오래간만에 집 근처 뒷산을 오르고 봄 정취 물씬 나는 곳에 머무르다 보니 안온함을 되찾은 듯하다.

그저 매일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살아가는 게 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 연민이나 동정은 지극히 경계하자고 다짐한다.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아끼는 사람들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충분히 표현하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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