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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쓰기가 매일 발행은 아닌 이유

퐁당퐁당 100일 글쓰기 42일 차

by 뵤뵤


어제부터 100일 글쓰기를 "퐁당퐁당" 100일 글쓰기로 바꿨다. 애초에 마음먹은 의도는 올해가 백 일 남은 시점부터 새해 첫날까지 딱 백 편의 글로 달리고 싶은 의욕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의도는 몇 번의 공백으로 인해 징검다리씩 글쓰기로 전환되었다. 감히 백일을 연이어 써보겠다고 작정한 과거의 내가 지금은 낯설다 못해 남인 것만 같다.


몇 개월동안 쓰기를 쉬었던 만큼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써보고 싶었다. SNS에 짧게 올리려던 단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장문이 되는 양상이 거듭되면서, '투머치토커'의 숙명은 글에서마저 비켜가지 않음을 절감했다.


'실타래처럼 엉켜서 데구루루 굴러다니는 생각을 한 올 한 올 잘 풀어보자. 그리고 색깔별로 가지런히 모아보자. 브런치에 긴 글을 쓰자!'라고 결심한 지 고작 이 개월.


포부의 시작은 장대하나 결단코 그 끝이 비루하지 않기 위해 두 달 남짓 열심히 오늘 발행할 '글'에 대해 몰두했다. 돌이켜보면 이 도전은 나라는 인간에 대한 실험이었다. 체력과 정신적 한계를 어디까지 뛰어넘을 수 있는지 스스로를 몰아붙여 보는 실험.


부작용이 없진 않았다. 밤 여덟 시가 되도록 초고가 완성되지 않은 날에는 나도 모르게 미간에 십 일자 주름이 깊게 파여 거실 분위기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숙제와 샤워를 마치고 제 할 일을 다 한 아이가 엄마와 나누는 대화의 즐거움을 야금야금 앗아가 버렸다.


그러고보니 도전 의식에 사로잡혀 간과한 게 하나 있었다. 나는 무엇에 빠지면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는 유형이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웬만한 각오 없이 시작하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밤을 꼴딱 새워서라도 결말까지 몰아 보느라 몇 날 며칠을 어그러진 수면 패턴으로 고생한다. 드라마 정주행은 건강 관리 역주행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글 역시 쓰기 시작하는 순간 모니터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몰입해서 헤어 나오질 못한다. 그만큼 가족들에게 소원해지는 건 어쩌면 예견된 일이었다.


'나'를 알기 위해 '그냥' 쓴다는 다짐이 점점 색이 바래짐을 느낀다. 그냥 쓴다는 건 말이 쉽지, 그냥 발행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본업과 육아가 바쁘면 나에 대한 성찰은 고사하고 하루의 일과를 소화하느라 급급한데 '매일'을 지키느라 허허로운 글을 쓰게 될까 두렵다.


애초에 좋아서 시작한 일이었다. 해야 해서 하는 일은 등 떠밀리듯 꾸역꾸역 하더라도 좋아서 선택한 일은 즐겁게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하면 할수록 즐거워지지 않는다. 욕심이 더해져서 무거워진다. 현실에서 자유롭지 못할 거라면 글 속에서라도 자유로워야 할 게 아닌가. 그마저도 못하면 내 자유는 어디서 찾아야 하나.


나의 바람은 며칠이 지난 후에 열어 보아도 고치고 싶지 않은 글을 쓰는 거다. 개인적으로 타인의 인정은 유효 기간이 짧았고 자기만족은 오랜 긍지로 남았다. 나에게 부끄럽지 않은 글, 스스로에게 솔직한 글을 써서 만족하고 싶다.


이 개월간 매일 쓰기에 몰두해 보니 알겠다. 나는 갓 양념한 겉절이 같은 글이 아니라 생각이 무르익고, 문장이 무르익은 묵은지 같은 글을 내보이길 더 좋아한다는 걸. 근력 운동을 하고 나면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근성장이 이루어지듯 글력 또한 충전의 시간이 필요한 거였다.






"글쓰기가 나의 삶을 훼손해서는 안됩니다."


'코끼리'를 쓴 소설가 김재영 작가님의 말씀이다. 매일 퍼내면 마르지 않을 우물이 없다. 일상을 위태롭게 만들면서까지 글을 쓰지 말라고 하신다. 그럼 글 쓰는 일이 싫어진다고 한다.


"왜 매일 쓰셔야 돼요? 꼭 그래야 하나요?"


북토크에서 만난 이슬아 작가님은 진정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바랐는데 만류가 뒤따를 줄은 몰랐다. 그녀가 내비친 안타까운 말투와 눈빛은 견고하게 쌓아 올린 다짐의 벽을 무르게 만들었다.


'일간 이슬아'를 발간하는 그녀는 돈을 받고 이행하는 타인과의 약속이었기에 매일 쓰는 게 가능했다고 한다. 글로소득도 없고 세상에서 제일 깨기 쉽다는 자신과의 약속인데 이토록 절절매는 내가 스스로도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도대체 왜, 매일 쓰기로 마음먹었나. 매일 써서 필력이 성장하고 싶다는 의욕으로 시작했으나 그 이면에는 "매일 쓰다니 대단하다"는 인정을 받고 싶었던 게 아닌가. 반면 그만큼 글쓰기에 전념하고 싶었던 열정이 녹록치 않은 현실을 이겨낼 만큼 강인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이제 인정해야 할 때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렸단 것을. '매일'에 매몰되어 글쓰기가 주는 이로움이 퇴색되어서는 안된다. 본말이 전도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것이 매일 쓰되, 발행은 매일 하지 못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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