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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출판기념회

공저 육아에세이 《그럼에도, 사랑이었다》

by 뵤뵤


철커덕-

문을 열고 들어서니 거실, 안방, 아이방 할 거 없이 온통 난장판이다. 정신없이 분주했던 아침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탓이다. 한 시간 전까지 나를 들뜨게 했던 성취감이 워낙 강렬했던 탓일까. 진한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나는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흥분을 연료 삼아 한껏 미뤄둔 집안일을 하기로 했다.


미용실에서 드라이한 머리, 한 시간 가까이 정성 들인 화장조차 못 지운 상태로 바닥에 널브러진 빨랫감과 수건을 주섬주섬 건져 올렸다. 남편이 안겨다 준 몸집이 커다란 축하 꽃다발을 어디에 두면 좋을까 고민하다 히죽이 웃음이 났다. 출간기념회에서 고심하며 썼던 나의 문장을 낭독하고 아나운서의 질문에 인터뷰했던 그 모든 일이 꿈만 같았다. <구운몽> 속 꿈에서 깨어난 양소유, 마법에서 풀려난 신데렐라. 난 이제 그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을 거 같다.


11월 29일 토요일, 나는 생애 첫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제주의 양육자들이 모여 스스로를 돌보고 삶의 이야기를 기록하며 성장하는 문화예술 커뮤니티, 활활살롱. 나는 그 속에서 또 한 명의 창작자로 성장하고 싶었다. 문학박사 김재영 소설가의 글쓰기 특강을 듣고, 같은 책을 읽고 서로 다른 생각과 경험을 나누고, 오름에서 명상을 했던 일련의 경험들을 성장의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었으니 행운이었다. 여태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새로운 면모를 깨닫게 되었으니 말이다.


4기 활동의 마무리와 더불어 공저 육아에세이를 출간한 기념식을 치른다고 해서 그저 소소한 다과회를 떠올렸다. 그런데 내용을 들어보니 예상보다 점점 판이 커지고 있었다. 행사를 총괄 진행한 활활살롱의 대표(푸른청사과의 브런치스토리)는 기념식의 사회를 볼 현직 아나운서를 섭외했고, 훌라 댄스팀을 초빙했으며, 낭독회와 Q&A를 준비했다.


게다가 KBS 제주방송에서 촬영까지 온다고 하니 우리끼리 하하 호호 만족하고 그칠 작은 행사가 아니게 됐다. 6주간 아이와 함께 그렸던 그림책 수업의 완성품도 무려 두 달간 전시할 참이니, 출판기념회가 열릴 전시 공간을 꾸미는 일 역시 녹록지 않아 보였다.


난생처음 전시 준비에 뛰어들기로 했다. 과감히 하루 휴가를 쓰고 종일 동참해 본 것이다.


'이번 경험은 과연 나를 어디로 데려다줄까.'


해보지 않은 일에 뛰어드는 일은 분명 두려운 일이다. 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앞 일에 기대를 품는 건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하지 않고 하는 후회보다, 해보고 하는 후회가 더 낫더라'라는 나름의 신조가 이번에도 유효했다. 처음이라 서툴었지만 나는 스스로가 보기에도 꽤나 열심이었다. 회사를 빠지고 몰두하는 딴짓이라 더 열정적이었을지 모르겠다. 그저 아쉬움 없이 잘해보고 싶었을 뿐.


7시간이 넘도록 전시장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 전시할 그림과 작품 캡션이 자꾸만 떨어지는 게 내내 신경 쓰이더니 그날 밤 속에서도 나는 그걸 계속 붙이고 있었다.






새벽 여섯 시쯤이었나. 어찌나 설렜는지 아침잠이 많은데도 절로 눈이 떠졌다. 전시 준비로 고단했던 전날의 여파로 몸은 무거웠지만 정신은 맑고 또렷했다. 카페인의 도움이 필요 없는 각성 상태로 준비를 마치고 출판기념회장인 스테이위드커피 카페로 달려갔다. 방송국 카메라와 미리 온 손님들로 어수선한 장내에 들어서니 전시장 가운데 걸어뒀던 나와 아이의 그림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전날의 불안함이 기우가 아니었나 보다.


"여보, 여보! 우리 그림 떨어졌어. 어서 빨리 달아주세요."


남편은 도착하자마자 코트를 벗어 소매를 걷어붙이고 전동 드릴질을 시작했다. 나는 집에서 챙겨 온 소품들로 책을 진열할 테이블을 장식하고, 바닥에서 뜯어진 전시회 서문을 새로 붙였다. 잠깐 놓칠 뻔했던 침착함을 붙잡아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립스틱을 고쳐 바르고 나오니 벌써 열한 시였다.





개회식을 시작할 시간을 넘겼지만 우리는 제때 행사를 시작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오작동과 먹통의 향연이 펼쳐진 것이다. 아나운서의 진행 마이크가 켜지질 않고, 노트북의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았다. 노련한 아나운서분의 임기응변이 아니었더라면, 카메라 감독님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우리 책의 출판사인 투래빗 대표님이 아니었더라면 행사는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 될 뻔했다. 기념식의 모든 식순과 대본을 기획했던 활활살롱의 대표는 청개구리처럼 계획과 어긋나는 사고들 때문에 고운 드레스의 등 부분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었다.


참석 못한 회원의 영상 편지에서 소리가 나오질 않아서 아나운서가 입모양대로 더빙을 했던 일, 마이크를 잡고 말하는 엄마의 팔과 치맛자락에 매달리는 아이들, 리본 커팅식에서 아동용 가위의 날이 들지 않아 여러 겹의 리본을 잘근잘근 썰다시피 잘랐던 일, 동화구연 할 때 틀어 놓은 그림책 영상이 중간에 멈춰 버려서 자유롭게 우리의 속도대로 연기했던 일.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그럼에도, 사랑이었다》 출판기념회는 성황리에 끝을 맺었다. 성황리라 자신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자리에 참석했던 이들의 박수와 환호가 따스한 응원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출간 소감과 각자의 문장을 낭독하는 자리에서 누군가는 다 커버린 아이를 먹이고 재우던 시절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쳤고, 누군가는 곁에 앉은 아이를 꼭 끌어안으며 환하게 미소 지었다. 어설퍼서 오히려 감동적이었다는 누군가의 후기는 준비한 것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첫 출간

첫 출판기념회

첫 낭독회와 북토크

첫 합동 동화구연


이 날의 특별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통유리창으로 쏟아지던 햇빛보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우리의 처음, 두서없이 우당탕탕 어설펐지만 그래서 더 우리다웠던. 육아가 예술이 될 수 있도록 고군분투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혼자 힘이었다면 이루기 힘들었을 꿈을 다 함께 이뤄낸 것에 감사하다.






"여보, 나 아직도 막 가슴이 뛰어.

조금 전 기념회 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거 있지?"


"꿈깨, 레드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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