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리뷰에는 영화 '하얼빈'에 대한 강력한 스포가 존재합니다. 영화 감상에 방해가 될 것 같으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주시고, 영화를 감상한 후 읽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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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번 글에서 영화 '하얼빈'이 우리의 입장에서만 바라볼 것이라는 것을 예상했습니다. https://brunch.co.kr/@6dc796cb17164ec/9 에서 이야기했듯, 영화 '하얼빈'이 민족주의 사관에 의한 영화의 전개에 대한 우려를 표했습니다. 결과는... 역시나였습니다. 예상을 하고 또 하고, 몇 번을 예상했지만, 예상과는 다르길 바랐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또 민족주의입니다.
민족주의 사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역사, 그리고 또 그것을 주입하려고 하는 영화의 전개방향에 심각한 우려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영화의 감독과 제작사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겠지만, 대통령 탄핵이라는 현 상황과 맞물려 잘못된 방향으로 감정이 표출될 수 있는 것을 걱정하는 것입니다. 실제로도 네이버 영화 관람평을 살펴보면, 광화문으로의 초대라던가, 혹은 국난이 일었으니 이상한 힘을 발휘하라, 또는 용산돼지를 처단하라 등과 같은 극단적 관람평에 높은 좋아요 숫자가 찍혀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로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영화는 다른 드라마적 요소를 배제한 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됩니다. 그러다 보니 각 인물이 가지고 있는 성격에 대한 묘사가 지극히 부족합니다. 따라서 인물들 모두가 매력적이지 못하게 되고 평면적 인물상으로 전락했습니다. 필자의 기존 글에서도 다루었듯이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에 대한 지극한 평면적 인물상을 걱정했습니다. 다만 이는 반쪽자리 우려였는데, 이 영화의 흑막이자 최종보스로 나올 것으로 예상되었던 이토 히로부미는 그저 조연 1의 역할을 했을 뿐입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등장인물들에 대한 당위성과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러다 보니 인물들 모두가 지극히 평면적으로 나타날 뿐입니다. 이동욱 배우가 열연한 이창섭, 정우성 배우가 열연한 마적단 두령 박점출, 조우진 배우가 열연한 김상현, 전여빈 배우가 열연한 공부인 역할 모두 왜 그들이 독립을 위해 나서는지, 왜 그들은 일본에게 분노하고 왜 독립운동에 회의감을 느끼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합니다. 마적단에게서 폭탄을 애써 빌려놓고서 사용하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날리는데 왜 긴 시간을 들여 폭탄을 빌리는 과정을 묘사했는지, 김상현이 왜 일본군에게 밀정이 되었는지, 공부인은 왜 남편이 죽고 남편의 형이 폐인이 되어가면서도 독립운동에 매달리는지 이해하기 힘듭니다.
안중근의 캐릭터성은 더욱 처참합니다. 필자의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안중근은 그저 고귀하고 고결한 인물로만 그려집니다. 이것은 밀정에 의해 본거지가 노출당해 모리 소좌가 이끄는 일본군에 의해 습격당한 후, 사로잡힌 이창섭의 발언으로 쐐기를 박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리 소좌는 그저 안중근에게 목숨을 건진 것에 사로잡혀 발광하는 찌질이로 전락합니다. 그러다 보니 안중근이 모리 소좌를 살려주며 했던 "우리가 원하는 것은 대한의 독립일뿐, 일본인 모두의 목숨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그의 사상이 허무맹랑한 이상주의에 사로잡힌 반푼이가 떠들어대는 헛소리가 돼버립니다. 동기가 적절하지 못하니 왜 안중근이 이토를 죽여야만 했는지에 대한 당위성이 사라집니다. 그저 악랄한 일본의 흑막을 죽여 없애 야만 했던 테러리스트로 전락하고야 맙니다. 거기에 그가 거사를 준비하면서 자른 단지 역시도 분노에 사로잡혀 복수를 다짐하는 그러니 영화 막판에 안중근이 '오늘이 안되면 다음에, 1년, 10년, 100년이 지나서도 준비해서 나아가면 된다'라는 그의 말이 공염불이 되어 버립니다.
조연 1에 불과했던 이토 히로부미 대신, 본 영화의 진정한 흑막이던 모리 소좌의 인물은 지극히 민족주의적 감정이 투영된 인물입니다. 그저 반일감정을 살살 자극하는, 지금까지의 전형적인 나쁜 일본 군인으로만 묘사됩니다. 그가 안중근에 집착하는 이유는 없습니다. 그저 안중근이라는 인물에게 열폭할 뿐입니다. 모리 소좌는 영화 내내 지독하리만치 안중근에게 집착합니다. 그러나 모리 소좌가 왜 안중근에게 집착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부족합니다. 그저 영화 속 인물들에 대사에 의해 안중근으로부터 목숨을 구제받은 것을 용납하지 못하고 폭주한다는 설정뿐입니다. 블라디보스크로 가는 열차 안에서 사로잡힌 김상현을 대하는 모리 소좌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전형적인 악랄한 일본 군인일 뿐입니다. 그리고 김상현에게 자신이 먹던 스테이크를 던져주는 모습은 반일감정을 자극하기까지 합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그가 영화 말미에 김상현과 만나는 장면에서 그 절정에 달합니다. 갑작스럽게 모리 소좌의 입에서 김구가 튀어나옵니다. 민족주의 사관에서 영웅시되고 있는 그 김구가 말입니다. 모리 소좌는 우덕순이 출소 후 모리 소좌 자신에게 복수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존인물이던 우덕순이 하얼빈 의거 이후 1915년에 출옥한 것을 감안하면 아직 김구는 독립운동에서 그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던 시기입니다. 또 김구 역시도 1910년 안악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고 1915년이 돼서야 가석방된다는 것을 역사적 사실에 비춰볼 때, 맞지 않습니다. 결국 김구가 언급된 것은 감독이 역사적 사실에 무지했거나 혹은 무의식 중에 민족주의 사관이 드러난 것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차라리 김구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면 영화가 보다 깔끔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설프게 김구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영화의 완성도가 하락합니다.
안중근이 사형을 선고받고서 쓰기 시작하고 채 마무리를 짓지 못했던 『동양평화론』은 한중일 삼국의 주권을 존중하고, 협력을 전제로 한 저서입니다. 안중근이 왜 하얼빈 의거를 행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저서가 바로 『동양평화론』인 것입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안중근은 오직 대한의 독립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영화 속 이토는 흔히 진보세력에 의해 맹폭격을 당하고 있는 일본에 의한 근대화론을 이야기합니다. 필자가 예상했던 그대로 영화가 진행됩니다. 안중근이 왜 하얼빈 의거를 통해 진정한 아시아주의를 울부짖었음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일본이 왜 한국을 점령하고 아시아주의를 제창하려 하는지에 대해서 역시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토가 왜 한국의 통감에 부임하게 되었는지, 그가 한국 통감 정치의 실패로 어떤 위기에 몰려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역시 언급하지 않습니다. 의도적으로 회피한 것인지 아니면 감독의 역사적 통찰이 부족한 것인지는 알 수 없겠으나, 이토는 그저 일본의 한국 통치로 한국이 발전했다는 일차원적인 주장만을 읊조리는 앵무새로 전락했습니다. 차라리 영화가 민족주의적 내용을 배제했다는 말이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객관적으로 영화를 바라보았을 때 영화의 완성도는 높은 편입니다. 뚝심 있게 밀어붙이는 전개는 화려한 액션씬과 영상이 없음에도 몰입감 넘칩니다. 그러나 우려되는 것은 이 영화로 인한 여파입니다. 하필이면 영화의 개봉시점이 탄핵 정국에 있습니다. 탄핵 찬성파와 탄핵 반대로 인한 갈등이 심각합니다. 관람평에서도 어설픈 민족주의에 감화되어 영화의 완성도 그 자체보다는 일부 정치 세력을 친일로 몰아가는 몇몇 관람평이 많은 추천을 얻었을 정도입니다.
민족주의가 무서운 이유는 다른 것에 있지 않습니다. 민족주의는 결국 국수주의로 치닫고 있으며 국수주의에서 한발 더 나아가는 경우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주범인 나치즘과 파시즘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틀러가 국민적 영웅으로 성장하고 집권하며 전쟁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극한으로 치닫은 민족주의가 그 바탕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어설픈 민족주의는 감정을 자극하게 되고, 자극된 감정은 분노로 치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의 정치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설픈 민족주의로 인해 상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극한으로 치닫는 갈등의 절정을 만듭니다. 바로 탄핵의 찬성과 반대로 나뉘는 현 상황처럼 말입니다.
영화 자체는 매우 훌륭합니다.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았으나 안중근의 인간적 고뇌와 그가 느꼈을 두려움의 실체를 묘사한 것은 같은 안중근을 영화화했던 전형적 민족주의 국뽕과 역사적 왜곡을 남발한 영화『영웅』과는 차별화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영화에 무의식적으로 덕지덕지 붙어있는 민족주의적 사관은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필자 본인이 민족주의 사관에 대해 매우 경계하는 이라 비판을 남겼지만, 영화 러닝타임 2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갈 정도로 잘 만든 영화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렇기에 민족주의 색채를 벗어나지 못한 영화에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 줄 평 -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고뇌를 덤덤히 표현하였으나, 무의식적으로 담긴 민족주의 색채의 한계
평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