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졸업을 위해 토익 점수가 필요하다는 말에 결국 졸업 유보를 했다. 문법은 죽어도 하기싫고 토익학원은 다녀봤는데 내스타일이 아니었다. 영어를 하나도 모르던 나는 '멘땅에 헤딩'이라는 심정으로 회화라도 익히면 토익점수도 어떻게든 만들어지겠지 생각하고 학교선배가 흘리듯 말했던 '영어카페'로 찾아갔다. 영어를 못해도 괜찮다길래 무턱대고 등록해버렸다.
영어카페는 외국인 친구들의 숙식을 제공해주는 댓가로 그 친구들이 돈을 받지않고 찾아오는 한국인들과 대화를 하는 카페였다. 주말에는 거기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클럽, 술집, 관광지 등을 돌아다니며 신나게 놀았다. 그러다 한 한국인 친구의 한마디가 내 워홀을 결정하게 했다. "나 캐나다 워홀 가는데 너도 한번 도전해봐.". 그 때 내 마음은 영어회화를 배웠는데 한국에서만 써먹는게 억울해서 해외에서 한번 살아보자 였다.
그래서 집에 가자마자 캐나다 워홀을 미친듯이 찾아보고 신청해버렸다. 어차피 합격한다해도 합격 후 1년 이내에만 캐나다에 입국하면 되기 때문에 그 1년동안 초기비용을 벌어서 갈 생각이었다. 캐나다 워킹홀리데이는 지원자 풀에 등록해놓으면 무작위로 연간 2000명이 선발되는 터라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첫 선발에 나는 뽑히지 않았다.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워킹홀리데이 신청하기를 네 번. 일 년에 두번있는 워홀 선발은 이미 두 해를 지나가고 있었다.
2017년, 캐나다 워홀 선발에 번번히 탈락하자, 정직원으로 일하고 있었던 카페를 그만두기로 했다. 언제까지 카페에서 일을하며 워홀만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전공을 살려 무기계약 연구직으로 취업하게 되었다. 자연과학을 전공했던 나는 대학 시절 내내 '뭐 해먹고 살지?'라는 고민을 했지만, 학교에서 배운 것이 이렇게 나에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일을 시작하고 나니 캐나다 워홀 생각도 잊을 만큼 흥미롭고 재밌었다. 이론으로만 배웠던 것들을 실제로 실험하고, 필드에서 조사한 데이터를 연구실에서 분석하는 일이 내 일상과 삶의 일부가 되었다.
처음에는 무기계약직으로 산다는 게 꽤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노력하지 않아도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과 고정적인 업무 패턴은 안정감과 편안함을 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안정감은 점차 단조로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발전이나 변화가 없는 듯한 느낌이 점점 들었고, 이러다 시간만 흘러가 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안정된 직장이 한편으로는 안전한 울타리였지만, 동시에 나를 가로막는 커다란 굴레로도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2018년, 안정적인 삶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워홀은 포기할 수 없었다. 이번에도 안되면 호주 워홀을 가겠다고 결심했고, 마침 호주에서 워홀을 하던 친구를 만나러 멜번으로 사전답사 겸 여행을 가기로 했다. 그리고 출국당일, 비행기 티켓을 확인하려고 메일함을 열었는데,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인비테이션이 도착해있었다.
가족들에게 캐나다에 간다고 말했던 날, 잘 다니고 있는 회사를 왜 그만두냐, 캐나다가서 뭐할래?, 나중에 돌아오면 뭐 해먹고 사려고 그러니? 와 같은 말들을 들었다. 하지만 '죽이되든 밥이되든 지금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라는 마음으로 캐나다로 갈 준비를 했다.
취업한지 1년이 갓 넘은 시점에 모든 걸 그만두고 떠나기엔 아쉬운 마음이 컸다. 그래서 퇴직금을 조금이라도 더 챙겨서 떠나야겠다는 결심으로 1년을 더 일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동안 필드에서 현장근무도 많이하고, 필요할 땐 야근도 가끔 하며 적지 않은 시간을 일에 쏟아부었다. 지치고 힘들었지만, 캐나다 생활에 필요한 자금을 준비하는 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했다. 이렇게 한 푼이라도 더 벌어 떠나려 했던 그때의 마음은 지금 돌아봐도 간절했다.
20대 후반. 가진 것이라곤 4년제 대학 학위, 수년간의 알바 경력, 그리고 공공기관 경력 뿐. 대학 동기들은 대부분 석박사 학위를 하러 해외로 떠나거나 한국에서 커리어를 착실히 쌓아가고 있었다. 나 역시 익숙한 길을 걸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완전히 새로운 시작을 찾아 캐나다로 떠나기로 결심했다. 내게는 리셋이 필요했다.
2019년 10월,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날 나는 밴쿠버에 도착했다. 왜 밴쿠버였냐고? 이유는 간단했다. 추운건 딱 질색이었기 때문이다. 운 좋게도, 캐나다 워홀을 제안 했던 친구이자 지금도 가장 친한 친구 덕분에 친구의 집에서 한 달동안 머물며 쉐어하우스를 구할 수 있었다. 그 친구의 집에서 한블럭 떨어진 아파트에 쉐어룸을 찾았고, 한국에서온 남자 룸메이트와 함께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