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은 사전의 '방황'
앞으로의 연재작의 방향을 고민하면 두 번째 글에 대한 고민만 일주일을 지속했던 것 같습니다. 첫 글을 순식간에 해치운 것과 다르게 마음에 드는 글이 쉽게 쓰여지지 않더라구요. 다양한 시도들 중 또 하나의 시도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바로 나은 사전을 꾸준히 써보는 것인데요, 지난주에는 '쓰다'를 정의해 보며 글 쓰는 행위를 시작한 만큼, 이번 주에도 최근의 저에게 의미 있는 단어를 선정하고 싶었습니다.
이번 주의 단어는 '방황'입니다. 얼마 전 친구의 과제를 도우며 제가 방황한 이야기들에 대해 두서없이 이야기해 본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방황이라고 대단히 거창한 일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창 방황하고 흔들리는 나이인 지금, 더 많이 흔들림으로써 나아가자는 저에게는 나름 의미 있는 고민이 될 것 같았습니다. 나아가는 글쓰기의 두 번째 이야기, 나은 사전의 '방황'.
방황의 사전적 정의는 '이리저리 헤매어 돌아다님'. 저는 많이도 헤맨 사람이었습니다. 스스로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하고 싶은 건 무엇인지, 꿈은 뭔지 무엇 하나 아는 게 없었습니다. 다들 어떻게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나아가는지 그 강력한 동기부여가 궁금했고, 그것이 없는 스스로가 부끄러웠던 적이 많습니다. 처음 고민을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뚜렷한 목표와 꿈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할 때가 더 많아요. 하루아침에 꿈을 정하고 그것이 동기부여가 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저는 방황을 시작했습니다. 방황은 그저 헤매고 돌아다니는 행위이므로, 대단한 무언가가 시작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좋아하는 것을 조금 더 좋아하기 위해 애쓰고,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는 것을 멈추지 않기. 진정으로 저의 가슴을 뛰게 하고 꾸준히 무언가 해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의 첫 번째 방황이었네요.
좋아하는 것을 찾고, 하고 싶은 것에 힘쓰는 일은 제법 즐거웠습니다. 제 인생에서 제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했구요. 알고 보니 저는 하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해보고 싶은 운동이 많았고,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다 잘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그 마음가짐으로 뒤도 안 돌아보고 시작한 일들이 몇 가지 있는데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브런치 작가를 신청한 것도 그중 하나가 되겠네요. 좋아하는 것들이 쌓이며 취향이 만들어지자, 어린 시절의 부끄러운 마음들을 조금씩 녹일 수 있었습니다. 거창한 목표의식과 동기부여 없이도 삶의 원동력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거든요. 언젠가 뚜렷한 목표와 동기부여를 찾는 날이 오면 그땐 이 생각이 우스워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스물세 살의 철없는 생각으로는 취향을 쌓아가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고 싶은 것을 모두 해내기 위해 살아간다던 원동력이 제게 의미가 없어졌을 때 즈음 새로운 방황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울한 생각에 끝없이 침전하던 나날들이었습니다. 기껏 만들어두었던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이 더 이상 저에게 의미가 없어졌고, 살면서 처음 겪는 우울감에 어찌할 줄 몰라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도 더러 있었습니다. 스스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이 용납되지 않을 때도 많았구요. 그때의 방황은 하나도 정리되지 않은 마음들을 풀고 들여다보기 위한 치열한 사유의 시간이었습니다. 단단히 꼬여 풀리지 않는 털실처럼 마음에 모순이 가득했습니다. 다들 그런 모순들을 안고 어떻게 살아가는 건지, 해답이 없는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 질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일만 있을거라고 믿었던 삶에서, 처음으로 길을 잃고 방향성을 잃어버린 것이 두 번째 방황입니다.
가라앉는 것은 제법 순식간이었지만, 다시 삶의 정상 궤도로 올라오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은 기댈 구석을 많이 만들어두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게 사람이 되었든, 취미나 게임, 학업이 되었든 나의 삶을 지탱하는 많은 요소들을 분산시켜 마음의 짐을 조금씩 분배하는 것이 중요하더라구요. 어떤 구석이 무너져도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저를 소중하게 대하는 이들에게 기대는 연습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나를 아껴주는 이들은 못난 이들이 아니니까, 이들이 나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벼이 여기지 말자는 것이 동기가 되었습니다. 나를 아끼는 이들에게 힘들었던 시간을 고백하고, 그 과정에서의 생각들을 공유하며 조금씩 나아갔습니다. 또한 혼자 침전하며 했던 수많은 생각들을 수용하고, 이를 안고 살아가는 방법을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마음을 아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만, 그 혼란스러운 마음과 생각 하나하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방황의 과정은 한없이 침전하는 암흑과도 같은 시간이지만, 그 끝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희미하고 옅은 빛이 우리를 나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20년 남짓한 짧은 삶에서, 나름대로 가장 치열하게 고민했던 두 가지 방황을 꼽아보았습니다. 들여다보니 지난주의 '쓰기'를 정의하는 것보다 명확한 답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저에게 방황은 '치기 어린 생각 많이 하기'. 언젠가 친한 친구가 블로그 댓글로 남겨준 말인데, 마음에 쏙 들어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구절입니다. 치기 어린 생각은 나아가는 과정보다는 어린 시절의 철없는 생각에 가까운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방황 역시 길을 잃고 헤매다는 뜻에서는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많이 드러나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기 어린 생각을 많이 하겠다고 다짐하는 것은, 그 철없지만 치열한 고민이 모여 변화를 만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방황이 늘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지는 않지만, 방황한 과정은 고스란히 남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이야기예요.
글을 쓰는 것은 방황의 과정을 모두와 공유하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도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길을 잃었을 때 나아가는 법을 익히게 될테니까요, 오늘의 방황을 함께 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