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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이서고 Nov 06. 2024

1년 후 퇴사를 준비하는 40대
직장인의 이야기.

나는 40대 초반을 조금 지난 직장인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를 아직 밝힐 수는 없지만 이 회사는 우리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사라지지는 않을 회사다. 


어쩌면 나라가 망한다 해도 회사 자체는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는 그런 회사이며 규모가 작다면 작은 회사 일수도 있지만 탄탄한 입지를 가지고 있고 소송을 많이 하는 구조로 대기업뿐 아니라 정부부처와의 소송도 불사하지 않는 조금은 특이한 회사다.


나는 그런 회사에 아직 다니고 있으며 어느덧 40대의 직장인이 되었다.


사실 어느덧 이 아니다.


그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같은 회사지만 직원 대우를 받지 못했던 지사직원에서 본사직원이 되기까지 그리고 본사에서 최상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가 다시 주저앉기까지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은 유배인 신세가 되어 나의 고향과도 같은 지사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절대 이 현실에 대한 부정이나 높은 자리에서 내려앉은 자존심 때문에 퇴사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생활은 오히려 이곳이 낫다.


요즘 들어서는 이런 망상을 하곤 했다. 


죽임을 당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조선시대의 유배인들 역시 궁 안의 엄한 규율 속에서 왕 눈치와 신하들의 지긋지긋한 정치와 권력다툼에서 벗어난 유배지 생활이 오히려 더 나은 사람도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 시절에 태어났으면 나 역시 그중 하나일 것 같다는 망상.  


하지만 월급과 복지 그리고 여러 혜택들이 많이 줄어든 것이 아쉬울 수는 있어도 이전처럼 피곤하고 짜증 섞인 예민함에 날이 서있지는 않다. 


이전에는 미안하게도 아내가 나의 눈치를 많이 봤다.


밤에도 주말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회장의 지시사항뿐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걸려오는 전화와 해결해야 하는 일들 속에서 아내와 주말을 잘 보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사람이 너무 치치다 보니까 주말에도 밖에 나가지도 않고 그냥 잠을 자거나 벌써부터 평일이 오는 것에 대한 예민함이 가득했다. 


결국 마음에 병이 생겼는지 많은 직장인들이 앓는다는 위장, 대장 질환은 물론 공항증상 같은 것들이 생겼고 상담도 받게 되었지만 크게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어찌 되었건 나는 회장의 오른팔이자 일등공신의 자리에서 내려왔고 다른 곳에 와있지만 지금은 그래도 사람답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아내와 산책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주말이면 여행도 가고 밖에서 마음 편히 시간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월급이 현저하게 줄어든 것은 조금 아쉬워하는 모양이긴 하지만 아내가 더 만족한다고 한다.


그리고 주말에 아무에게도 전화가 오지 않는 현실이 좋다.


그러다 가끔 전화가 울리면 깜짝 놀라거나 긴장하게 되는데 대부분 스팸전화라서 거침없이 재껴버린다. 


그때 윗사람들의 전화를 다 재껴버릴 수 있었다면... 이 무슨 쓸데없는 생각인지... 어떤 사달이 일어날지 상상하기도 싫다.


아무튼 이제야 사람답게 살게 된 것 같다.


그럼에도 퇴사를 하려는 이유는, 내가 많이 지친 것 같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뭔가 여기까지인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사실 퇴사를 생각하면 불안하고 두렵고 걱정이 한가득이다.


대부분 그런 상태에서 퇴사를 하면 안 된다고 할 것이다.


적어도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하고 나가야지 조금 지쳤다고 그렇게 그냥 무작정 나가면 안 된다고 훈계할 것이다.


나 역시 과거의 나라면 그런 후배에게 따끔한 충고와 함께 무시무시한 겁을 줬을 것이다.


“여기가 전쟁터면 나가면 지옥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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