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livia Nov 16. 2024

교토에서 만났던 남자 1

이런 게 운명일까?

바야흐로 2017년 어느 가을, 나는 열흘 간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었다. 

입사 후 1년 차 때 추석 명절과 임시공휴일 덕분에 나에게 10일을 쉴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지금 같으면 10일 동안 유럽이나 미국을 갔겠지만, 그때 나에게 여행에 몇 백만 원을 쓴다는 게 큰 사치처럼 느껴졌다.

갑자기 생긴 휴가에 나는 고민을 하다 자주 갔던 일본을 여행지로 선택했다. 입사 후 한 번도 해외여행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익숙한 곳에서 쉬다 오자고 마음을 먹고 오사카로 떠났다. 

오사카 근교 소도시도 여행하고 좋아하는 교토도 구석구석 살피며 혼자 여행을 일주일 정도를 혼자 시간을 보냈다. 혼자 여행은 일정이나 숙소 때문에 남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온전히 내 감정을 충분히 살피고 나를 위해 시간을 쓸 수 있어 대학생 때부터 혼자 여행을 즐겼었다. 하지만 여행 후반부로 갈수록 멋있는 풍경을 보면 누군가와 이 풍경에 대해 같이 공유하고 싶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같이 먹고 싶었다. 또한 주문하거나 길을 물어볼 때 빼고는 말을 하지 않으니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였다. 


 그러던 중 그 남자를 만났다. 보통 한국인 여행자에게 유명한 교토의 철학의 길, 은각사, 기온, 교토역, 아라시야마 등 주요 관광지는 이미 몇 번 가보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장소를 가기로 했다. 그 곳이 바로 윤동주 시인의 시비가 있는 도시샤 대학이었다. 

도시샤 대학 내에 세워져 있던 윤동주 시인의 시비

 도시샤 대학은 교토에 있는 사립대학으로 윤동주 시인과 정지용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당시 나는 영화 '동주'를 인상 깊게 봤었기 때문에 윤동주 시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대학에 도착 후 윤동주 시인의 시비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시비 주변에 작은 태극기와 꽃다발이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이국 땅에 우리나라 시대의 칼바람에 휩쓸린 시인의 흔적에 마음이 무거워지던 때 눈물이 그렁그렁한 한 남자가 말을 걸었다. 

"저기 사진 좀 찍어 주실래요?"

 나는 속으로 '내가 한국인인 줄 어떻게 알았지?' 하다가 얼떨결에 "아, 네네" 하고 시비와 함께 서서 옅은 미소를 짓는 그 남자를 찍어주었다. 시비에 적힌 시도 읽어보고 천천히 관람하려 했지만 그분이 눈물을 훔치고 있었기 때문에 뻘쭘한 생각이 들어 그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때 갑자기 그가 "윤동주 시인 좋아하세요?" 하며 말을 걸었다. 

 나는 영화 '동주'를 인상 깊게 봤다고, 그래서 한 번 찾아와 봤다고 했다. 그랬더니 갑자기 그가 기뻐하며 "나도 그 영화 몇 번을 봤어요!!" 하며 따라오기 시작했다. 혹시 괜찮으면 같이 걸어도 되냐, 어디로 가냐, 나는 자전거 타고 혼자 여행 중이다, 나도 직장인인데 연휴가 길어 일본에 왔다, 나는 대학을 연대를 나왔는데 연대에도 윤동주 시인의 기록이 있다... 등등. 사실 나는 낯을 많이 가린다. 또한 소위 TMI에 해당하는 말을 쏟아내는 그가 부담스러웠다. 그 역시 오랜 기간 혼자 여행을 해서 누군가와 말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철역까지 데려다준다는 그 남자와 빨리 헤어지고 싶어 빠른 걸음으로 전철역으로 향했다. 

 전철역에 도착 후 나는"우리 방향이 다른 것 같은데 여기서 헤어질까요?"하고 물어보았다. 그때 그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

"언제 귀국이시죠? 오사카로 돌아가면 하루 같이 다니실래요?" 

나는 하루 뒤에 오사카로 돌아가 남은 기간을 오사카에서 머물 예정이었다. 그 남자는 연휴가 끝나는 날 귀국이었고 나도 비슷했다. 그 당시 어려서(?) 약간은 순진(?)하고 거짓말을 못했던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던 탓에 얼떨결에 오사카에서 하루 같이 여행하기로 약속을 잡고 우리는 헤어졌다. 헤어진 후 전철에서 나는 '괜히 연락처는 알려줬어!', '이상한 사람 아니야?', '그냥 연락 무시할까'등등 별 생각을 다 하다가 숙소 돌아와서 잊어버리고 여행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약속 전 날이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수능을 앞둔 수험생들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