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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빈 Nov 20. 2024

그럼에도 이것 하나만은

마지막 욕망 (크리스티앙 보뱅,2022)

저마다의 내면은 구렁텅이라 일생에 걸쳐 자신의 구덩이만 파내려 가기에도 너무 깊다.

그러니 나의 구덩 속으로 땀을 흘리며 기어 와주는 타인은 세상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나와 같은 마음으로 느끼는 사람을 만나고 세상에 피투 된 채 살아있음에 고독해왔던 순간들을 위로받으며 안심하며 기대 울어 볼 수 있는 게 사랑 아닐까?


아무것에도 느끼지도 못하는, 어쩌면 너무 깊게만 느껴서 피상적인 것에는 반응조차 할 수 없어서 그녀는 세상을 무채색으로만 살아왔다. 아무것도 바라지도 소유하지도 않았다.

그것이 그녀가 가진 유일한 성격의 장점이자 그녀가 살 수 있는 이유였다.


주인공은 남들보다 유난히 깊게 느껴서, 잠수로는 내려갈 수 없이 낮게 살아서 빛도 소리도 적은 곳에 혼자 있기를 다짐해 왔다.

그런 곳에서도 혼자가 아님을 알게 되고 그를 듣고 그가 말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게 됨에 무색무취였던 세상도 의미를 가지고 그와 함께 있을 때에는 시간이 흐른다.


그가 말하는 잊지 못한 옛 여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가 그녀를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낭송하는 소리에 주인공은 위로받고 빛을 보며 죽음을 준비한다.


주인공이 자살을 했을 때에, 손목에서 피어난 블루베리들은 숲의 향기를 내고, 검붉은 향취 속에 그의 냄새를 맡으며 그가 옛 여인을 찾아 떠났음에 안도하고 축복한다.


그를 알기 전에, 그 어두운 곳에서도 살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으려는 그녀의 천성이지만


그럼에도 끝내 이것 하나만은 바라게 되는, 자신의 죽음으로 그가 자신을 다시 한번 바라봐주기를 바라는 마지막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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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소설이지만 작가의 얘기처럼 느껴질 만큼 깊고 고독한 마음을 감정적으로 짙게 고백한다. 마치 뜨겁게 끓는 스프의 겉이 평온하듯 담담한 주인공이지만 그녀에게 일어나는 감정적 요동은 이미 끓는점을 지난 지 오래다.

정리된 채 뱉는 감정의 묘사가 아닌 느껴지는 그대로를 감각적으로 풀어내는 문장들은 서사를 좇아갈 수가 없다. 그녀의 사랑은 이미 시간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그녀의 사랑에는 인과가 없다. 그를 사랑하게 된 이유만큼은 자명하나,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를 그대로 둔다. 마치 그가 옛 여인에게 선물 받은 오렌지 나무를 소중히 대하듯 그녀 또한 그를 조심히 다뤄주며 떠나가는 그의 마음까지 사랑한다.


이해하기 힘든 감정은 명확한 서사가 부여되어야 비로소 이해될 때가 있는데, 어떤 사랑은 그 자체로 존중해야 한다. 그녀가 느낀 감정의 농도는 매 문장 느낄 수 있다. 100여 페이지이지만 매 장이 시집 같았다. 너무 질어서 앞으로 헤엄쳐 나갈 수 없는 피늪을 걷는 듯한 독서는 처음엔 나를 튕겨냈으나 끝내는 그녀를 기리게 만들었다.


머릿속을 스치는 이미지적 공감각 표현들이 침착맨의 비유법이 생각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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