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지금 서른 살, 두 아이를 둔 쌍둥이 아빠다.
이전 스토리에서 20살에 대기업에 취업해 군대를 다녀온 뒤 복직한 이야기까지 했다.
짧은 나의 직장 생활의 첫 페이지에 라이킷이 16개나 눌리다니,
앞으로의 이야기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게 된다면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사실 브런치에 글을 쓰게 된 계기는 20살부터 10년간 정신없이 달려온 내가
육아휴직을 쓰고 쉼표를 잘 찍어보기 위해서다.
물론 아이들의 육아일기로서 기록을 남기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육아휴직을 하며 지난 날들을 돌아보다 보니, 마치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압축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 아내와 이런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출산을 하고, 이제는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지금까지의 시간이
불과 3년이라는 짧은 기간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이 내 인생 전체에서 가장 밀도 높은 순간들이었다.
겨울 옷을 꺼내며 여름옷을 압축팩에 꽉 넣어 밀봉하듯이,
우리의 인생도 그렇게 압축된 것 같다.
얇은 옷가지들이 빈틈없이 압축되어 무거운 하나의 덩어리가 되듯이,
지금 이 순간들이 아마 내가 살아온 인생에서
가장 밀도 있는 순간이지 않을까?
거슬러 올라가 군대에서 전역한 지 일주일 뒤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빡빡머리인 상태로 출근해 여러 직원들 앞에서 인사를 해야 했다.
직원 수는 어림잡아 100명에서 120명 정도. 복직하게 되어 반갑고 앞으로 잘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며 공지사항을 전달했다.
문제는 마무리 멘트였다. "다들 아시겠습니까?!" 아직 군대에서의 때를 벗지 못했던 그때였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고 나는 얼굴이 빨개졌다. 그렇게 나는 또 새로운 곳으로 발령받아 약 2년간 근무를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대졸 공채 사원들과 동일한 직급이 되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됐다. 생각보다 그 경쟁은 순조로웠다.
이미 지난 4~5년간의 근무 경험 덕분에 회사 내에서 많은 직원들과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고,
업무에 대한 노하우와 지식도 어느 정도 쌓여 있었다.
새 정장과 구두를 신고 입사한 신입사원들은 열정적이었지만, 나는 엉덩이가 헤져 덧댄 자국이 생긴 정장과 토 묻은 구두를 알아 볼 줄 아는 경력사원이었다. 그런 나와 신입사원들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경험의 차이가 있었다.
대졸 공채와 동일한 직급이 된 첫 해, 나는 인사 고과 평가에서 A를 받았다.
그 순간은 내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수능 준비를 하던 시절, 대기업 취업으로 노선을 틀었던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재미있는 회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처음으로 여자 인턴을 받게 되었다.
내일의 육아가 있기에.. 오늘도 잠을 청하러 가봅니다.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