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사기를 당하는가 (6)
그가 정해 준 기한인 목요일 밤까지 나는 정성을 다해 숙제를 작성했다. 서초구 임야를 중심으로 다른 후보지 몇 개를 더 넣었고, 요청받은 자기소개서도 이력서처럼 자세히 작성했다. 능력이 없다면 성실함이라도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자료 하나하나를 깔끔하게 다듬었다.
금요일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도 없었다. 주말 아침부터 다시 자유로를 달려 파주 교회로 향했다. 나의 이런 열정을 보는 게 오래간만여서인지, 아내도 아무 말 없이 젖먹이를 데리고 차에 올랐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억누르며, 속도를 위반하지 않도록 애써 운전대를 붙잡았다.
교회 앞 공터에 세워진 차들은 지난번의 삼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순간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시험이건 사업이건 절반은 허수라더니, 숙제 하나 때문에 이런 기회를 놓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억지로 웃음을 감추며 교회 안으로 들어서는데, 누군가 나를 알아보고는 뒤에서 부른다.
"저기 잠시만요. 목사님께서 전해달라고 하신 말씀이 있어서요."
귀를 의심했다. 그가 나에게 전할 말이 있다니. 내 또래 작은 체구의 여자가 전한 말은 뜻밖이었다. 내가 제출한 숙제가 이번에 최고로 뽑혔고. 목사님이 크게 흡족해하셨다는 것이다. 나에게 커다란 잠재력이 있어 보인다는 말까지 덧붙였다고 했다. 나는 함박웃음을 간신히 억누르며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 절반은 된 것이다. 그가 나의 존재를 알았다.
또다시 연단에 선 그는 줄어든 청중을 바라보며 여유롭게 웃었다. 이럴 줄 알고 어려운 숙제를 내었단다. "사람이 너무 많으면 중요한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그리고는 열정을 가진 사람들을 보니 병든 몸에 다시 힘이 솟는 것 같다며, 자신이 점심을 대접하겠다고 했다.
어렸을 적 내 기억에 교회에서 주는 점심은 보통 잔치국수나 육개장 정도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번 목사는 달랐다. 그가 알려 준 주소를 찍고 찾아간 곳은 한우만 취급하는 커다란 정육식당이었다. 그리고 당시만 해도 드물었던 커다란 BMW SUV 차량에서 내리는 그의 모습은, 꿈꾸던 나의 미래 모습 그대로였다.
"많이들 드세요. 부자가 별건가요?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게 부자지."
털털하게 던진 한마디가 귀에 박혔다. 쓰고 싶을 때 쓸 수 있는 사람.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이었다.
입 안에서 녹아내리는 쇠고기를 맛보고 있는데, 테이블 가운데 말없이 앉아 있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여러분 해온 것들을 보니 재미있는 땅들이 많았어요. 특히 땅 하나는 나도 당장 덤비고 싶을 정도로 훌륭했어요."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숨도 쉴 수 없었다.
"한번 제대로 해 봐야겠습니다. 이제 진짜로 땅 좀 가져와보이소. 내가 일 좀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