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을 결정하고 아들에 대한 관습적인 사회적 기대의 시선(Kitsch)에 대한 화답을 거부해 단시일 내에 부인, 아들, 어머니, 아버지를 성공적으로 떼어낸 주인공 토마시와 에로틱한 우정을 이어가는 사비나는 삶의 가벼움을 희구하는 토마시에게 말한다.
“당신은 모든 점에서 키치(Kitsch)와는 정반대라서 당신을 사랑하는 거야. 키치의 왕국에서 당신은 괴물이야”
열다섯 살부터 웨이트리스를 일하며 버는 돈을 몽땅 어머니에게 바치고, 주정뱅이들에게 맥주잔을 나르고 일요일에는 형제들의 더러운 속옷을 빨아야 했던 어린 소녀는, 대학교에서 책을 펴고 하품을 하는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생명력을 자신의 내면에 비축하고 있었다. 테레자는 그들보다 많이 읽었고 인생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지만, 아이러니하게 정작 자신은 그 사실을 몰랐다.
테레자에게 책이란 은밀한 동지애를 확인하는 암호였다. 그녀를 둘러한 저속한 세계에 대항하는 그녀의 유일한 무기는 도서관에서 빌려오는 책뿐이었다. 특히 소설들. 톨스토이의 안나카레니나..
책을 통해 그녀는 남과 자기를 구분 지었다. 책은 테레자를 다른 여자들과 구분해 주기도 하지만 고리타분한(Kitsch)한 존재로 만들기도 했다.
무거움과 키치로 대변되는 테레자가 키치의 왕국에서 괴물인 토마시와 7년의 결혼의 키치적 틀 안으로 들어온 것은 키치의 모순이다.
키치의 원천은 존재에 대한 확보부동한 동의다.
토마시와 프란츠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비문하나..
잊히기 전에 우리는 키치(Kitsch)로 변할 것이다.
키치(Kitsch)란 존재와 망각 사이에 있는 환승역이다.
존재와 망각 사이에는 환승의 Ramp는 존재하지 않는다.
키치(Kitsch)는 모순의 단어다.
2) 시선과 희구(관습적 시선을 Kitsch로 치환)
테레자는 토마시의 시선(Kitsch)을 희구한다.
토마시의 아들도 토마시의 시선(Kitsch)을 희구한다.
프란츠는 사비나의 시선(Kitsch)을 희구했다.
관습적인(Kitsch) 여성미를 거부하고 섹스를 여성적 자아의 신비가 숨어있는 금고로 여기는 토마시는 사비나의 시선(Kitsch)을 희구하지 않는다.
사비나는 무엇을 희구했을까?
프란츠에게 배신과 사라짐으로 그에게 자유와 새로운 삶(Kitsch)을 부여한 사비나를 짓눌렀던 것은 짐(무거움)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었다.
지금까지 배반의 순간들이 그녀를 들뜨게 했고, 새로운 길은 열어 주고, 그 끝에는 여전히 또 다른 배반의 모험이 펼쳐지는 즐거움을 그녀의 가슴에 가득 채웠다.
부모, 남편, 사랑, 조국까지 배반한 그녀는 더 이상 배반할 것이 없어졌을 때 그녀를 둘러싼 공허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