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나의 아저씨는 키다리 아저씨 이야기가 아니다. 신파도 아니며, 신데렐라 이야기도 아니다.
그렇다고 로맨스도 아니다.
하지만 매회마다 울림이 있고 찡한 대사와 연기 음악이 있다.
3. 지독하게 외로운 사람이 하나 있다. 그녀의 이름은 이지안. 그녀의 얼굴에 웃음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불행의 종합 세트를 가진 음울한 인간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부모는 많은 빚을 남기고 죽었고, 장애가 있는 할머니는 의지가 되기는커녕 돌봐야 할 의무이다. 상속 포기라는 제도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 그녀는 죽은 부모의 빚을 그대로 떠안았다. 다니던 학교는 중퇴했고, 매일 같이 찾아오는 사채업자. 15세 때 부모님의 빚을 갚으라고 찾아와 자신과 할머니를 때리는 사채업자에게 칼을 휘둘러 살인을 저지르고, 정당방위가 인정되었지만 사람들은 그녀를 그저 ‘사람 죽인 년’으로 혐오할 뿐 의지할 사람은 없다.
지안이 스무 살이 되자 죽은 사채업자의 아들이 찾아와 아비를 대신해 어른이 된 지안을 때리고 매일 또 돈을 뜯어간다. 그녀는 건축회사의 비정규직 말단 계약직으로 일하며 밤에는 식당에서 알바를 하며 집에 돌아와 회사와 식당에서 가져온 커피믹스와 남은 음식으로 허기를 때우며 아픈 할머니를 돌본다. 한 번도 편하게 잠들어 본 적이 없는 이지안의 얼굴에는 감정이 없다.
4. 외로운 사람이 하나 더 있다. 그의 이름은 박동훈. 아내가 있지만 그녀는 그에게 사랑의 감정을 버린 지 오래다. 사내정치로 어수선한 중견 건축회사에서 부장으로 근무하지만 싹수없고 비열한 대학 후배가 상사로 있고, 그의 아내는 그 상사와 바람을 피우고 있다. 그 상사는 회사에서 대표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박동훈의 임원 진급을 막으려는 목적으로 돈이 필요한 이지안에게 박동훈에게 접근해 그를 도청하는 거래를 한다. 이지안을 이용해 여직원과의 부적절한 관계 즉 사내 스캔들로 박동훈을 잘라낼 계획이다. 박동훈의 24시간은 이지안에게 이어폰 너머로 모두 노출된다.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지안은 의도치 않게 동훈을 도와주게 되고, 고마움을 느낀 박동훈은 돈이 필요한 이지안의 천만 원을 요구 대신 한 달간 이지안에게 밥과 술 사주기로 한다. 물론 이것은 로맨스 스캔들로 박동훈을 날리려는 상사와 이지안의 계획이다. 지안의 도청은 계속되고 매일 만나는 사이가 되어 서로의 일상을 알아간다.
어느 날 우연히 달을 보고 싶다는 장애를 가진 할머니를 위해 마트에서 카트를 훔쳐 달아나다 넘어지는 지안을 동훈은 동네에서 발견하고, 지안의 할머니에게 인사하고 할머니를 엎어 달동네 지안에 집에 모셔다 드린다.
지안은 그런 동훈이 고맙다. 동훈도 지안의 사정을 알게 되고 한 번도 편하게 잠들어 본 적 없는 지안에게 점점 마음이 쓰인다.
폭력, 채무, 따돌림, 가난, 외로움. 그 신산한 지안의 삶은 동훈의 일상과 얽히면서 조금씩 회복된다.
5. 이 드라마에서 인상적인 지점은 이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훈이 본인의 지위, 본인의 돈, 본인의 노력 어느 것 하나 동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할머니를 자신의 돈으로 요양원에 입원시키지도, 주말마다 찾아와 할머니를 돌보지도 않는다. 동훈은 이미 존재하고 있던 제도를 지안에게 소개함으로 이 문제를 해결한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돈이 없어서 할머니가 요양원에서 쫓겨났고, 그래서 자기가 돌봐야 한다는 지안에게 동훈은 어이없다는 듯이 말한다.
“손녀는 부양 의무자 아냐. 자식 없고 장애 있으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데 왜 돈을 못 내서 쫓겨나. 아, 혹시 할머니랑 주소지 같이 돼있냐? 주소지 분리해. 같이 사는 데다가 네가 소득이 잡히니까 혜택을 못 받는 거 아냐. 주소지 분리하고, 장기요양보험 신청해.”
이야기를 들으며 휘둥그래 커지는 지안의 눈. 그 모습이 안타까운 동훈은 나지막이 말한다.
”그런 거 가르쳐 준 사람도 없었냐...”
지안에게는 막대한 빚도, 부모의 부재도, 장애를 가진 할머니도, 살인의 과거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멀쩡히 존재하는 제도의 도움마저도 받을 수 없는, 그것도 몰라서 받지 못하는, 철저히 제도권 밖 사람이었다는 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지안에게 동훈은 손을 내밀고 제도 안으로 끌어들이고, 동훈이 소개한 장기요양보험 제도의 보호 아래에서 지안이의 할머니는 비로소 안식을 찾는다.
철저하게 빚과 채무 가난 따돌림에 시달리며 살인전과까지 있는 우울한 20살짜리 여자에게 세상 사람들은 무시와 편견으로 그녀를 멀리할 때 동훈은 장애가 있는 할머니를 생각하며 모시는 그녀의 착한 마음을 알고 “착하다”라고 따뜻하게 말해준다. “고맙다” “착하다”라는 말을 진심으로 거의 들어본 적 없는 그녀에게 동훈의 담담하고 낮은 따뜻한 말과 배려는 지안의 마음 한구석에 더 따듯하게 남는다. 지안 본인도 불쌍하고 외로운 인간이지만 아내의 외도, 회사내부 정치놀음의 희생양.. 동훈이 처지에 지안도 동훈이 불쌍하고 미안하고 마음에 쓰이고 그가 마음에 서서히 들어온다.
6. 내가 가장 좋아하고 찡한 나의 아저씨의 씬이 있다.
지안의 빚과 사채업자의 존재를 알게 된 동훈은 사채업자를 찾아가 빚의 액수를 묻고 괴롭히지 말라고 치고받고 싸우는 과정에서 사채업자를 통해 과거 지안의 살인전과를 알게 된다. 현 사채업자의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 지안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모든 상황을 도청하고 있던 지안은 어쩔 줄 몰라하며 두려움이 스며든다.
지금까지 주변에 존재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의 살인전과 이야기를 알게 되면 그녀 곁을 떠나거나 편견으로 그녀를 멀리하고 배척했다. 내 마음속에 따뜻하게 들어온 나의 아저씨도 다를 봐 없을 거라고…
사채업자에게 지안의 살인에 대해 들은 동훈은 그 사실을 알고 잠시 놀라지만 그에게 말한다.
“나 같아도 죽여.. 내 식구 패는 새끼들은 다 죽여!”
이 모든 것을 듣고 있던 지안은 운다.. 목놓아 펑펑 울어버린다...
모든 사람이 등을 돌릴고 비난할 때 처음으로 자신의 과거 행위를 이해해 주고 나라도 죽였을 거라고 말해주는 나의 아저씨…
법적, 서류상으로 정당방위에 의한 살인전과에 대해 죗값을 치렀지만, 사람을 죽였다는 자책감, 괴로움,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본인 자신도 사채업자 아들의 폭력과 협박을 살인에 대한 남은 죄와 채무로 생각하고 살아갔지만,
지안은 전화기 너머로 온몸으로 운다..
서러움과 안도감이었을까?
아니면 세상 처음으로 어른에게 진정으로 자신의 삶과 죄를위로받고 용서받았다고 생각되어 펑펑 울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