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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지조 Nov 23. 2024

모순의 미학

양귀자 소설 '모순' 비평

25살 주인공이자 화자인 안진진이 요즘 가장 많이 우울해하는 것은 자기 인생에 양감이 없다는 것이다.


인생을 방기하고 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면서 언제까지 무 위한 삶을 견뎌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의문한다.


본인 삶의 부피가 너무 얇다고 생각하며 이야기한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삶의 방향를 과감히 돌릴 때가 왔다고 생각하여 결혼을 염두에 두고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나고 있다.


즉흥적이고 불안정한 F형 남자 사진작가 김장우와 계획적인 안정적인 남자 T형 남자 나영규.


나영규에게 없는 것, 그것이 확실히 김장우에게는 있었다.


나영규와 만나면 현실이 있고, 김장우와 같이 있으면 몽상이 있었다.




강북 역촌동에 사는 진진의 엄마는 F형 알코올중독 남자를 선택하여 평생을 지리멸렬한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여유와 권태와 우울의 감정이 끼어들 공간이 없다.

엄마가 읽는 책은 모두 세상살이에 도움이 되는 실용서적이다.


강남 청담동에 사는 엄마의 쌍둥이 동생 주인공 안진진의 이모는 T형 안정적인 건축가 남자를 선택해 삶의 파고 없이 두 자식을 안정적으로 키워낸다.

자식들을 해외에 보낸 이모의 마음은 헛헛하고 우울하다.

이모가 읽는 책은 소설이며, 클래식을 듣고 꽃을 좋아한다.

실용적인 부분은 남편의 경제력으로 메꾸지만 자신의 구멍난 마음은 메꾸지 못한다.


엄마는 알코올중독자 남편이 치매에 걸려 5년 만에 돌아와도 받아들이고, 아들이 수감생활을 해도 어떻게든 살아가려 애쓴다.

강북의 자식은 타인을 찌르고, 강남의 이모는 자신을 찌른다.


이모는 조카 안진진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기며 진짜 무덤 속으로 들어간다.


진진아..


‘죽는 일보다 사는 일이 훨씬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거든. 나는 용기가 없어서, 너무나 바보 같아서,,


‘나,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에서처럼 평온하게 말고.’


이모는 자신의 죽음으로 유리 어항 속 자식들의 삶이 완벽하게 지리멸렬해지는 것을 막아냈다.


그 자식들은 평생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반추하며 살아갈 것이다.




개인 아픔의 무게는 타인이 감히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없는 수치다.


모래알이든 바윗돌이든 가라앉기는 마찬가지다.


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는 엄마는 여전히 행복했다. 더욱더 바빠졌고 나날이 생기를 더해갔다.

불행하고도 행복한 삶..


엄마는 바다에 살았고, 이모는 어항에 살았다.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조카 진진에게 가르쳐 주었다.


결국 진진은 자신에게 없던 것을 선택했다.


행복의 이면에 불행이 있고, 불행의 이면에 행복이 있다.


풍요의 뒷면을 들추면 반드시 빈곤이 있고, 빈곤의 뒷면에는 우리가 찾지 못한 풍요가 숨어있다.


인간사는 모순의 미학이다.


George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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