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고등학생 승학은 우연히 외계종족 윤슬을 만나게 된다.
기산심해(氣山心海)
기운은 산과 같고 마음은 넓은 바다와 같음.
챕터1. 첫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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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서 부는 바람이 살갗을 꿰뚫으려는 듯 거세게 휘몰아쳤다. 오래 맞으면 맞을수록 작은 모래알들이 스치는 날카로운 감각이 들었다. 힘겹게 눈을 뜨고 추위에 익숙해지니, 이제야 시야가 트이기 시작한다. 조금 거리가 있는 곳에 어선과 소형 보트들이 일렬로 정렬돼 있다. 슬며시 밑을 바라봤다, 짙은 녹조빛과 불규칙한 물결이 거세게 일어난다. 그 물살에 수면 아래 해초들이 휩쓸려 거세게 흔들리고 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요소들이 항구도시배경과 잘 어우러졌다. ’아, 정말 멋진 곳이야‘ 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발밑 시선을 완전히 아래로 꺾자 이번엔 본인 발등이 보인다. 이 모습은 꽤 배경과 조화롭지 않다.
바람이 거세고 자주 불기 때문인지 이 주변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가까이서 봤을 때 비로소 느끼는 이 광활함을 평생 사진을 통해서만 보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은 수행착오를 지나 비로소 아름다운 곳을 눈에 담았으니 다수 앞에서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이다.
대교 다리에 위태롭게 서 있는 발, 한쪽씩 신발을 벗어 아래로 던진다.
....풍덩!
2, 아니 3초.. 바다 표면에 생긴 거품으로 보아 바다 표면은 보기보다 멀리 있다. 나머지 신발을 잡은 한쪽 손도 놓아버리자 드디어 한 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아까까지 거세게 불던 바람이 점점 얕아진다. 사람이 오기 전에 얼른 해야 한다. 바람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온 사람이 고작 본인 때문에 이 좋은 풍경을 평생 사진으로만 보게 할 수 없다. 한쪽 손을 스르륵 풀었다. 몸의 전체 균형이 오른쪽으로 쓸린다. ’ 어서 나머지도 하자, 이 모습은 풍경과 잘 어우러지지 않으니까 ‘라고 되새기며 눈을 감는다.
“얘!”
아차, 누가 왔나 보다 황급히 뒤를 돌아봤다. 빠르게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살핀다. 왼쪽을 돌아보니 텅텅 빈 도로가, 오른쪽을 돌아보니 휑한 인도가, 혹시나 싶어 앞을 바라보니 아까와 그대로인 풍경이 있다. 이 다리에는 본인뿐이다. 그럼 아까 들은 건 뭐지? 설마.. 무의식적으로 아래를 다시 쳐다봤다. 넓은 바다. 아까 신발을 떨군 곳에 거품이 꺼지질 않는다. 부글부글..톡..? 뭔가가 튀어나왔다. 눈살을 찌푸려 그곳을 응시한다. 저건..
“얘! 이 신발 네 것이니?”
사, 사람..사람이다! 바다 한가운데 사람이...! 119를 불러야 하나? 그럼 저 사람은 본인을 뭘로 생각하겠는가? 아니 그것보다 저기에 샘뚱맞게 사람이 웬 말이야 그것도 살아있는 채로;;
“신발 네 것이냐고! 그쪽으로 던져줄까?”
희미하지만 목소리를 들어보니 또래 여자애 같다. 선두로 나섰지만 운 나쁘게 살아남은 케이스인가? 그렇다 해도 저렇게 멀쩡한 상태로 헤엄을 치고 있는 게 말이 안 되는데.. 혹은 물귀신..
“내 목소리 안 들리니?! 왜 대답이 없어!!”
“아, 아 저기!..(삐끗) 어..!”
다음순간, 그대로 떨어져 버렸다. 아까 한 마음의 준비가 무색하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떨어지기 전까진 아무 느낌도 들지 않았지만 떨어지고 나서야 자츰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발 쪽부터 떨어졌기 때문에 모든 내장이 위로 쓸리는 느낌이 들면서 바다와 점점 가까워지는 느낌이 찰나의 공포를 느꼈다. 난생처음 겪는 심오한 공포에 본인 모르게 작게 소리쳤다.
“...아악!”
풍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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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승학 / 남 / 2008.12.05. / 만 15세 / 1학년 4반 13번 / 입학일: 2024년 3월 5일 졸업 예정일: 2027년 2월 10일/ 출결사항: 무단결석 27일, 조퇴 15회, 기타 결석 7회 / 수상경력: 2024년 전국 시조경연대회 최우수상, 2024년 한자능력 검정대회 최우수상 /교내 활동: 고전시조 글짓기 동아리 참여 / 특기 사항: 한문과 한자에 높은 관심을 보이며, 2024년 전국 시조경연대회, 한자능력검정 대회에서 독보적인 실력을 발휘해 최우수상을 수상하여 학교의 자랑스러운 영광을 더하였습니다.
“더 추가할 내용은 없지?”
“없어요”
“그래도 한번 더 확인해 봐”
백색소음이 가득한 어둡고 침침한 교무실. 두 걸음 남짓 할 작은 공간에서 승학의 지난 반년 간의 일들이 기록되고 있다. 다시 제대로 확인하려 해도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는다. 분명 승학 본인 장래에 도움이 될 내용일 텐데 그냥 다 귀찮다. 순간, 건너편에서 언성을 높이는 소리가 들린다. 꽤나 열정 있는 듀오 같다.
“쌤 저 지금이라도 열심히 하면 인서울은 할 수 있죠? 아, 진짜 제발”
“수업 때 학원 숙제말고 내가 집어준 곳이나 제대로 외워 자식아, 헤미는 이미 자퇴까지 했더라. 넌 진짜 정신 똑바로 차려야 된다?”
담임이 손가락을 탁,탁 튕기곤 컴퓨터로 슥- 열정듀오를 가렸다.
“아직 1학기인데 대회 우승을 두 번이나 했네. 좋은 거야 좋은 거지. 근데 하나를 잘하면 하나를 바닥으로 꽂아버리는구나. 너 출결이랑 성적관리 제대로 안 할래?”
“죄송합니다..”
“성적은 뭐 아직 1학년이니까 자기 좋아하는 과목만 잘 볼 수는 있지. 아무렴, 근데 왜 이렇게 학교를 빠져대? 대학에서 출결 안 볼 것 같니? 취업할 때 회사에서는? 다- 출결 봐 네가 얼마나 불성실한지. 그렇게 학교 오기가 싫니?”
“...”
담임이 답답한지 손바닥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집중이 분산되거나 하면 쓸데없이 상담이 길어지니까 말이다. 승학은 담임이 원하는 교과서적인 답변을 찾기 위해 머릿속을 열심히 굴렸다.
“아까부터 왜 이리 어물거려, 내가 너 학교 적응 잘하라고 반 친구 두 명이나 붙여줬잖아. 대체 뭐가 문제냐? 이번 주에는 세상에 일주일에 한 번 왔다 한번”
“....친구들은 잘해줘요. 제가 아침에 늦장을 부려서 그래요.”
“1학기 생기부 마감처리 기간이라 여유 있다 이거지? 방학 며칠 전엔 아예 쨀 기세다 아주. 내가 또 가정방문 하는 꼴 보고 싶니?”
“아뇨.. 정신 차리겠습니다.”
다음 번호들이 제 시간 안에 진로상담 및 1학기 생기부를 정리해야 할 것이고, 눈앞에 담임은 며칠간 야근으로 신경이 곤두서있을 것이다. 정말 말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이전에 기회가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다른 반 애들이 뭐, 너 괴롭히니?”
의외였다. 먼저 얘기를 꺼낼 줄 몰랐는지, 승학은 머릿속에 생각을 정리하지 못한 채 이성과 다르게 솔직한 답을 내뱉는다.
“...그 조금 반 분위기를 흐리게 하는데..”
고등학교는 짧게는 일주일, 길면 한 달 안에 무리가 형성이 된다. 처음엔 무리에 속하지 못해 반에서 ’ 책 읽는 조용한 애‘ 로 혼자 다니었다. 반 아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승학 본인도 그게 편했다. 그러나 담임은 그런 모습이 좋지 않은 인상으로 보였는지 잘 나가는 무리 중 한둘을 붙여주었다. 처음엔 겉치레를 섞어가며 서로 간의 미묘한 불만감으로 학기를 보냈지만, 두 친구는 담임이 맡긴 짐덩이가 점점 마음에 들지 않았고, 첫 중간고사가 끝나자마자 본색을 드러냈다.
“우리 반 애들 중에선 그런 애들 없고?”
“...없어요”
담임은 더 이상 상황을 묻지 않고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영역만을 말하는 듯했다. 담임이 먼저 논제를 제시했다는 사실에 자신의 편이 하나라도 늘었다 생각한 자신이 바보 같았다. 승학은 고개를 숙이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너 괴롭히는 애들은 몇 반인데, 이름 알지?”
“아, 아뇨...누군지는 잘..”
“일단 알겠어. 반장한테 쉬는 시간에 다른 반 애들 못 오게 하라 할게. 나중에 이름 알면 알려주고"
“.....”
“또 할 말 있어? 방과 후에 좀 남아있든가”
“아니에요.”
자의, 타의로 인해 닫고 있던 입을 왜 이제야, 아니 너무 늦게 열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매일 폭력에 순응하면 사람은 어느새 그 폭력에 길들여져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죽이게 된다. 그러다 갑자기 생긴 용기로 자신의 상황을 구제하려 하면 자신이 생각한 것과 다른 결과가 나올까 다시 두려움에 떨게 된다. 그리고 그 두려움의 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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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었니, 살았니?”
“푸풒푸푸푸부부부우부우우 ...켁, 켁 커흑, 컥, 콜록콜록”
승학은 순간 정신이 바짝 들어 고래처럼 물을 뿜으며 숨을 내뱉었다. 폐와 귀가 제 기능을 잃은 것 같았다. 분명 물을 뱉어냈는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그냥 이대로 의식을 잃었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배가 아팠다. 강한 노을빛 조명 때문에 눈이 떠지지도 않았다.
깨웠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을 못 차리는 모습이 보기 안쓰러웠는지 여자애는 복부에 손을 갖다 댔다.
“ 핫둘!핫둘! ”
“아악! 아악!”
여자애는 두 손을 모으더니 이내 힘껏 복부를 눌렀다. 무슨 여자애 손 악력이 이렇게나 쎈지...아까 떨어질 때보다 지금이 더 공포였다.
“허억..케흑, 콜록콜록, 여길 누르면 어떡해!”
“숨을 잘 못 쉬길래..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하지 않아?”
“거긴 심장이 아니라..아니, 아니다 살려줘서 고마워”
시야가 자츰 확보되자 천천히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승학 본인이 빠졌던 곳, 빠지기 전 다리, 물에 젖어 널브러진 신발..가방.. 눈앞에 생명의 은인..이 아니라 미역인가 저건
“하하, 거기가 아니었어? 미안! 앞이 안 보여서 착각했나 봐, 머릴 좀 넘겨야겠다.”
여자애는 뭔가로 치렁치렁하게 가려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미역이 아니라..저건 머리카락이다, 색이 밝고 특이한. 사람 머리가 저렇게 길게 자랄 수가 있다니.
여자애가 머릴 반으로 가르며 옆으로 넘기자, 갑자기 느슨하게 몸을 덮고 있던 피로감이 순식간에 확 달아났다. 그리고 그만 소릴 지르고 말았다.
“다,다,다시! 다시 덮어!”
“왜? 뭣 때문에?”
“왜, 왜라니..! 그런 어마어마한 걸 볼 수 없어!”
“....뭐, 알겠어 그럼”
이 애 대체 왜 옷을 안 입은 거야..! 여자애는 다시 머리 커튼을 쳤다. 승학은 머릿속을 누가 치고 간 듯이 띵 했고, 어느새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왜, 왜, 옷을 안 입었어..?”
“옷? 아, 사람들은 옷을 입었었지, 참!”
“너도 사람이면서 아까부터 자꾸 왜.. 그.. 혹시 물귀신이야?”
“뭐? 하하! 나도 너랑 같은 사람이야 이거 왜 이래! 조-금 남들과 다를 뿐이야. 근데 너 괜찮니? 아까 잘 안 일어나던데!”
여자애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쉴 새 없이 떠들어댔다. 일반 사람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듯했다. 오랫동안 무법지대에서 살아온 짐승처럼 행동이 경박하고 말도 어눌하게 토해냈다. 하지만 일반 사람과는 다른 활기차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갖고 있어 승학은 그런 느낌이 나쁘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승학은 처음엔 성심 성의껏 대답해 주다 이내 지쳐 쓰러져 나머지는 단답으로 답했다.
“이렇게, 이렇게, 해서, 또—-그래서! 널 보게 된 거야!”
“으음.. 그렇구나. 그렇구나..”
"우헤헤-!"
"흐흥.."
“그런데 말이야.. 넌 어쩌다가 여기 오게 됐니? 아까 보니까 수영도 잘 못하던데-”
천방지축 유인원 아가씨는 대화 시작 몇 시간 만에 드디어 생산적인 질문을 시작했다.
“아.....그게.. 처, 처음 본 상대한테 심도 있는 질문은 좀.. 아닌 것 같고.. 통성명부터 하자. 난 승학이야, 산승학.”
“아~넌 승학이구나! 난 사람이야!”
“아, 아니 그건 그냥 명사고.. 넌 이름 없어?”
“흠.. 보통 어선 사람들한테 인어아가씨라고 불리기는 하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는 몰라”
“인어.. 같긴 하네 물고기처럼 물에서 숨을 쉬니까...(근데 그분들은 왜 널 발견하고 신고를 안 했을까..)”
“뭐! 내가 저런 힘없고 멍청한 물고기랑 같다는 거야? 난 그 이름 싫어. 다른 거로 할래!”
“그럼.. 생각해 보든지”
이 물음표 살인마는 입이 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승학은 맞장구 쳐줄 체력마저 다 소진했는지 무심코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물에 젖어서 전원이 켜지지도 않았을 텐데 아, 물이 다 말라있다. 그렇다면 시간이 많이 지난 것인데.. 세상에, 5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그건 뭐야?”
“핸드폰인데.. 슬슬 어두워져서 이만 가봐야겠어”
“아, 그렇네 인간은 매일 자야 하니까! 응! 잘 가!”
핸드폰 화면을 바라봤다. 10시가 지나도 집에 들어가질 않았는데 아무런 연락이 없다. 방임주의 집안의 장점은 개인의 생활이 보장되는 것, 단점은 소리소문 없이 누가 없어지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승학이 대회에서 상을 받고 돌아갔을 때에도, 피멍투성이로 집에 돌아갔을 때도 집사람들은 무정한 무관심에 의해 승학을 바라보는 것을 거부했다.
“집에 가기 싫어..”
“뭣! 그럼 어디서 자려고?”
“넌 어디서 자는데?”
“난 저어-기!”
“바다.. 저기는 밤에는 추울 텐데..”
“괜찮아! 내가 저 밑에 보금자리를 만들어뒀거든, 같이 갈래?”
“아니.. 그럼 죽을지도..”
“어어?”
여자애가 승학의 뒤쪽을 보자 한울도 그 시선을 똑같이 따라갔다. 그곳에는 커다란 배가 있었다. 불을 켠 선박이 낮은 교량을 향해 직진했다. 그 광경을 본 주변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왜 멈추질 않지? 뭐가 잘못된 건가? 다시 선박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콰광!
엄청난 굉음에 우린 동시에 귀를 틀어막았다. 몇 초간의 큰 소음이 멈추자 여자애는 울먹거리며 말했다.
“으엉어엉어엉 우리 집..!”
“뭣.. 저기 밑에 집.. 이 있어?”
“안돼! 우리 집! 왜 저 배는 오늘 갑자기 이리로 온 거야!? 집을 잃었어! 흐어엉”
“아..”
저쪽은 갈 곳이 아예 사라졌네..입장이 바뀌었다. 그래도 본인을 살려준 사람이니 이쪽이 도와줘야 할 차례이다.
“일단 오늘 밤 묵을 곳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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