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0 잠이 쏟아져서 고민이다
P여사는 잠이 너무 많다. 어제 밤, 12시에 잠자리에 들어 아침 8시반에 일어났다. 그 정도면 하루 수면량이 충분하지 않는가. 하지만 오늘 저녁 8시에 자서 '오늘밤은 쓰고 자야지' 하며 밤10시에 일어났다. 하루에 잠으로 10시간 이상을 보낸다. 적절한 수면을 넘어 과수면 상태다. 극심한 육체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잠을 많이 자니 고민이 된다.
P여사의 과도한 잠의 역사는 10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3때다. 전날 보리타작을 했다. 피곤한데 푹 쉬지 못했는지 쓰러져서 양호실에 간 적이 있다. 고3때여서 공부를 많이 한다는 오해를 샀다. 그후 대학에 가서도 과도한 잠 때문에 장학금을 못 받았다. 친구들은 날밤 새는 약을 먹고 공부하는데, 시험준비로 도서관에 가면 잠이 왔다.
결혼 후 큰 애를 임신하자 잠이 쏟아졌다. 잠 때문에 맞벌이를 포기했다. 방과후 교사를 지원했는데 잠 때문에 면접에 못 갔다. 결혼후 악착같이 일하기가 싫기도 했다. 시집에 다니러 가도 잠이 쏟아졌다. 잠순이로 찍혔다.
몇 년 전 글쓰기 수업에서 잠에 대해 쓴 적이 있다. 지금처럼 잠이 너무 많아 고민이라고 했다. 강사는 자신은 정반대라고 했다. 서울대를 나온 강사였다. 그녀는 잠을 줄여가며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치는 알바를 하며 집안의 가장으로 살았다고 한다. 그 후유증으로 40대 후반부터 몸이 망가졌다고 한다. "잠이 많은 점이 건강을 위해 좋지 않냐"라고 위로했다. 큰 병이 없긴 했다.
P여사, 잠이 많으면 깨어있는 시간을 잘 쓰면 되는데 동영상에 수시로 빠진다. 정리해야 할 일이 자주 뒤로 미루어져 고민이다. 어느 신문에 보니 우리나라는 쉬는 것을 죄악시하고 게으르다고 생각한다는데 P여사도 그런 기준으로 자신을 본다.
한 가지 위안이 되는 점은 불면으로 고생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휴식없는 열정은 번아웃을 불러온다고 한다. 열정보다 충분히 쉬며 꾸준함으로 긴 인생 여유를 가지고 살아 보자고 P여사 자신에게 셀프 위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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