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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늦어도 괜찮아. 50대, 파리 유학생이 되다

문학 기행: 레 미제라블이 탄생한 그곳에서 만난 감동

by Selly 정

"엄마, 진짜 여기가 그 유명한 빅토르 위고가 살던 집이야?"

대학생 딸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지난주 보주 광장을 처음 찾았을 때는 보슬보슬 비가 하루 종일 내렸었는데, 오늘은 9월 중순 파리의 약간 추울 정도로 쌀쌀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며 스며든다. 가끔씩 떨어지는 빗방울이 볼을 톡톡 건드릴 뿐, 다행히 우산 없이도 걸을 만했다. 옷깃을 여미며 걷는 우리 모녀의 마음만큼은 이 서늘한 날씨보다 훨씬 따뜻하고 설렘으로 가득했다.

보주 광장에 발을 딛는 순간, 지난주 보슬비 내리던 그날의 기억이 스르르 되살아났다. 이미 한 번 와본 곳이라 그런지,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벅찬 감동보다는 오히려 편안하고 익숙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17세기의 우아한 건물들이 마치 "또 왔구나, 반가워"라고 다정하게 인사하는 것 같았다. 광장 중앙의 루이 13세 동상 주변으로는 아이들의 재잘재잘한 웃음소리가 메아리쳤고, 벤치에 앉은 노부부의 다정한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았다.



KakaoTalk_20240410_100728808_23.jpg [빅토르 위고 생가 건물 외관]


드디어, 그 문턱을 넘다

"Maison de Victor Hugo"라고 적힌 간판 앞에서 나는 잠시 숨을 고른다. 50대 중반, 파리 유학생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살아가는 요즘, 이런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는다.

"드디어 나는 빅토르 위고의 집을 방문했구나. 이번에는 사랑하는 딸과 함께."

입구에서 가방 검사를 받으며 딸과 나는 마치 보물찾기를 떠나는 모험가가 된 기분이었다. 무료 입장이라니! 파리가 주는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검사관 아저씨의 친절한 미소가 우리를 반겨주었고, 그 순간 나는 이 도시가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문화를 선사하고 있는지 새삼 감사했다.

딸이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엄마, 우리 정말 특별한 일을 하고 있는 거 같아. 이렇게 함께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거잖아."

그 말에 내 가슴이 뭉클해졌다. 언제부터인가 나와 멀어진 듯했던 딸이, 파리에서는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나와 손을 맞잡고 걷고 있었다. 시간이 주는 마법일까, 아니면 이 특별한 공간이 주는 선물일까.


19세기로의 시간여행

계단을 오르며 드르륵드르륵 나는 나무 소리가 마치 위고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것만 같았다. 각 계단마다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계단을 오르며 위고의 흔적을 찾아왔을까.

첫 번째 방에 들어서자, 위고의 초상화가 우리를 맞았다. 그 깊은 눈빛 속에는 수많은 이야기가 숨어있는 듯했다. 나는 그 초상화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같은 50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의 눈빛에서 무언가 깊은 공감을 느꼈다. 인생의 무게, 창작의 고뇌, 그리고 끝없는 열정이 그 눈빛에 모두 담겨 있었다.

"와, 엄마 봐! 저 중국풍 찻잔들!"

딸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위고가 수집한 동양풍 소품들이 반짝반짝 빛나며 진열되어 있었다. 19세기 파리 지식인들의 동양에 대한 호기심과 낭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엄마, 그 시대에도 사람들이 다른 나라 문화에 관심이 많았구나."

딸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호기심과 배움에 대한 열망은 시대를 초월한다. 지금 내가 50대에 파리에서 공부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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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의 서재와 집필 공간 - 책상과 의자 그리고 그의 친필]


『레 미제라블』이 태어난 그 방에서

위고의 서재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나는 전율을 느꼈다. 여기서 장 발장이, 코제트가, 그리고 마리우스가 태어났구나. 벽면을 가득 채운 책들 사이로 스며드는 오후의 햇살이 마치 영감의 빛처럼 신비로웠다.

딸이 조용히 내 팔을 끼며 속삭였다. "엄마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멋있어. 50대에 파리에서 공부하고, 이렇게 글도 쓰고."

그 순간, 내 눈가에 촉촉한 무언가가 맺혔다. 늦어도 괜찮다고, 지금이라도 괜찮다고 나 자신을 위로했던 수많은 밤들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꿈을 미뤄뒀던 그 시간들, 이제와서 공부한다고 주변의 시선을 걱정했던 마음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위고의 책상 앞에 서서 나는 깊이 숨을 들이마셔다. 이 책상에서 그는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을까. 창작의 고통과 기쁨을 동시에 맛보며, 끝없이 글을 써내려갔을 그를 생각하니 마음이 뭉클해졌다.

"엄마, 여기서 『레 미제라블』이 쓰여진 거야?"

딸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바로 여기서. 그리고 엄마도 지금 여기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는 거야."


침실에서 만난 영원

위고가 마지막 숨을 거둔 침실은 고요했다. 그의 침대와 책상, 그리고 벽에 걸린 가족사진들이 말없이 이야기하고 있었다.

'인생은 끝나지 않는다. 다만 새로운 장으로 넘어갈 뿐.'

위고의 말이 가슴 깊이 스며들었다. 나의 50대도, 파리에서의 유학 생활도, 그리고 이 순간 딸과 함께하는 이 시간도 모두 새로운 장의 시작인 거구나.

침실 한 구석에 놓인 그의 마지막 유품들을 보며, 나는 삶의 유한함과 동시에 무한함을 느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어디선가 누군가는 『레 미제라블』을 읽으며 감동받고 있을 것이다.

딸이 내 손을 꼭 잡았다.

"엄마, 나도 엄마처럼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이가 들어도 계속 새로운 걸 배우고, 도전하는."

그 말에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내가 보여준 모습이 딸에게는 용기로 보였구나. 나 자신에게는 그저 필사적인 몸부림이었는데.



KakaoTalk_20240410_095929643_19.jpg [위고의 침실 - 그의 침대와 마지막 순간을 담은 공간]


보주 광장을 나서며

미술관을 나와 보주 광장을 한 바퀴 돌며 딸과 나는 오늘 본 것들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근처 카페에서 마신 따뜻한 쇼콜라 쇼의 달콤함이 아직도 혀끝에 남아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컵을 두 손으로 감싸며, 우리는 마치 파리지엔이 된 듯한 기분을 만끽했다.

"엄마, 우리 오늘 정말 좋은 하루 보냈지? 이런 시간들이 계속 기억에 남을 것 같아."

딸의 환한 미소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늦어도 괜찮다는 것을, 지금 이 순간이 얼마나 완벽한지를. 그리고 무엇보다 딸과 함께 이런 소중한 경험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카페 창가에 앉아 보주 광장을 바라보며, 나는 위고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세상에서 가장 넓은 바다보다도, 하늘보다도 넓은 것은 인간의 마음이다.'

50대에 시작한 파리 유학, 처음에는 두렵고 막막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마음만 열려 있다면, 언제든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여정에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한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은 없다는 것을.

파리의 저녁 하늘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어가고, 보주 광장의 가로등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길 위의 낙엽들이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발밑에서 춤췄다.

딸이 내 팔에 기대며 말했다.

"엄마, 고마워. 이런 특별한 경험을 함께 할 수 있게 해줘서."

나는 미소 띤 얼굴로 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대답했다.

"고마운 건 엄마야. 엄마의 늦은 도전을 응원해줘서, 그리고 이렇게 함께해줘서."

내일은 또 어떤 이야기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50대 파리 유학생의 하루하루는 이렇게 소중한 순간들로 채워져 간다. 늦어도 괜찮다. 지금이 바로 나의 시간이니까.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

� 늦어도 괜찮아 시리즈

파리 유학 일기는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연재됩니다

50대의 도전과 꿈, 그리고 딸과 함께하는 파리에서의 소중한 순간들을 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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