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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늦어도 괜찮아. 50대, 파리 유학생이 되다

1년간 방치된 통신 단자함이 알려준 파리식 삶의 방식

by Selly 정

타향살이, 10년이면 익숙해질 줄 알았는데

"타향살이가 쉽지 않다"는 말을 듣곤 했다. 10년이 넘도록 이곳에서 살다 보니, 이제는 '그런가 보다' 하고 어깨를 으쓱하게 된다.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할까. 그런데도 여전히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의문과 불평은 대체 뭘까?

파리 12구로 이사 온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처음 3개월은 딸 혼자였다. 나는 한국에서 마무리할 일들이 있어 늦게 합류했다. 딸아이는 모바일 데이터로 버텼기에 굳이 인터넷을 설치하지 않았단다. 그런데 내가 도착하고 나니, 둘 다 데이터를 쓰자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인터넷 회사 Free에 전화를 걸었다.

일주일 뒤, 톡톡톡.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인터넷 기술자가 도착했다. 다행히도 친절한 기사님이었다. 그의 차분하고 꼼꼼한 작업 덕분에 우리는 그날부터 쌩쌩 터지는 인터넷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아,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네!"

여기까지는 참 좋았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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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 사건은 시작되었다

다음 날 아침, 현관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어?"

어제 인터넷 기술자가 열어놓았던 통신 단자함이 대충 걸쳐진 채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복도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쿵! 하고 떨어진 모양인지, 단자함 안쪽의 전선들이 알록달록 드러나 보였다.

'설마 관리인이나 집주인이 해결해 주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내도 답장이 없었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문득 파리 13구에 살던 시절이 그리워졌다. 바로 옆집에 집주인이 살았고, 이런 문제가 생기면 다음 날 바로 "아, 제가 고쳐드릴게요!" 하며 달려와 주던 그 상냥한 주인이 그리웠다.

그런데 이번 집주인은?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안 보고. 마치 세상 밖으로 떠나버린 사람처럼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이 건물에는 관리인도 없었다. 딱 일주일에 한 번 청소하러 오시는 아주머니만 계실 뿐.


속이 뒤집히는 풍경

며칠이 흘렀다.

통신 단자함은 속을 훤히 드러낸 채 복도에 널브러져 있었다. 전선들이 빨강, 파랑, 노랑으로 얽혀 있는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마치 누군가의 창자를 들여다보는 것 같아 속이 메스꺼웠다.

위험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보기가 너무 끔찍했다.

'내가 해야 하나?'

결국 나는 용기를 내어 고성능이라고 자랑하던 유리테이프를 들고 단자함 앞에 섰다. 복도 바닥에 의자를 놓고, 딸에게 의자를 꽉 잡아달라고 부탁했다.

"엄마, 조심해!"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천천히 테이프로 단자함을 벽에 고정시키기 시작했다. 하나씩, 하나씩. 위아래를 전부 테이프로 칭칭 감았다.

휴우. 한숨을 돌렸다.

보기엔 영 시원찮았지만, 어쩌겠는가. 기술자가 아닌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런데 마음 한편에서는 원망이 솟아올랐다.

'아니, 자기가 이렇게 대충 해놓고 갔으면 다시 와서 제대로 고정하고 가든지 해야지. 이게 뭐야!'

'집주인도 너무한 거 아니야? 전화 한 번 안 받고, 문자 한 번 안 보고. 세입자가 할 수 없으니까 이렇게 애걸하는데!'

화가 났다. 하지만 화를 낸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전혀 아니었다.

중이 절이 싫으면 떠나면 그만이듯, 나도 이곳이 싫으면 1년 계약 채우고 이사 가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사가 어디 쉬운 일인가? 이곳 파리는 이사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그래, 참고 살자. 조금만 더.'

나는 스스로를 다독였다. 위로했다.


쿵! 다시 떨어진 현실

그렇게 며칠이 지났을까.

어느 날,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문을 열었다. 아이고 맙소사.

내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붙였던 테이프들이 단자함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다시 복도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큰 단자함은 전선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고, 작은 단자함은 바닥에 아예 떨어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순간, 입에서 긴 한숨이 새어 나왔다.

"어머나... 내가 저걸 얼마나 힘들게 붙였는데. 최강력이라던 비싼 테이프가 뭐 이렇게 힘이 없어?"

나는 한심한 내 처지와 힘없이 떨어진 값비싼 테이프를 보며 맥이 쫙 풀렸다. 힘들게 작업했던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치며 또다시 큰 한숨만 나왔다.

당시 나는 매일 감사일기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이 상황을 보고 어떻게 감사할 수 있단 말인가? 감사할 마음이 일지 않았다. 그냥 나도 내버려 두고 싶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신경 안 쓸 거야. 문제가 생기면 주인이 알아서 하겠지.'

'뭔 나라가 이 모양이야! 통신 단자함 같은 전기가 통하는 것에 문제가 생기면 빨리 조치를 하든지, 관리인이 있든지, 주인이 속히 해결하든지 해야지!'

게다가 더 이상한 건, 청소하는 아주머니도, 같은 층에 사는 사람들도 하루에 몇 번씩 오가며 이 모습을 봤을 텐데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아무도 이 흉물스러운 모습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바라만 봤다. 남의 일엔 전혀 관심 없는 사람들처럼.

'네 문제이니, 네가 알아서 해. 해결하든 말든 그건 네 문제일 뿐이야.'

그런 느낌이었다.

나는 한 번 실험을 해보고 싶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상태로 유지될까? 한번 내버려 두고 보자.'


1년이라는 시간

그렇게 한 달, 두 달이 지나고 어느새 9월이 되었다.

1년이 다 되어갔다.

그 사이 아무도, 정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심지어 옆집에 사시는 분에게서도 한마디 들은 적이 없었다. 물론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로 복도에서 마주친 적도 없긴 하다.

전선에 대롱대롱 매달린 단자함과 바닥에 툭 떨어진 작은 단자함은 1년째 그렇게 방치되어 있었다.

그걸 볼 때마다 힘든 사람은 바로 나였다.

'아니, 나도 어느새 이 나라 사람들처럼 무관심해진 걸까?'

문득 파리 사람들의 습관이 떠올랐다.

옷가게나 슈퍼마켓에서 바닥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지도 않고 관여하지도 않는 사람들. 남이 해놓은 상태 그대로 내버려 두는 사람들. 내 일 아니면 관심조차 없는 사람들. 심지어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성실하게 사는 것도 못마땅해하는 사람들.

그들은 그저 주어진 시간에 주어진 자기 일만 하는 사람들이었다. 남이 시키지 않은 일까지 열심히 하는 것을 싫어한다니, 정말 이해하기 힘든 품성이었다.

복도나 교실, 특히 옷가게에서 바닥에 옷이 떨어져 있으면 주워서 걸어놓거나 판매원에게 가져다주는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상식이었다.


다시 테이프를 들고

결국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었던 내가 다시 테이프를 들었다.

의자를 바닥에 놓고, 이번에는 좀 더 강력한 테이프를 사용해서 하나씩 단자함을 벽에 고정시켜 나갔다.

정말 보기 민망한 모습이 되었다.

테이프로 여기저기 사방팔방 칭칭 감긴 모습은 마치 최고급 브랜드로 꾸며진 옷을 입은 여인이 묘한 화장으로 흉칙해진 꼴 같았다. 계단을 올라가 집에 이를 때마다 테이프로 둘러싸인 단자함 때문에 흉가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어찌하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데, 기술자를 부르자니 출장비만 최소 130유로인데, 주인은 아무 응답이 없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것뿐인데.

정말 다행인 것은, 이렇게 보기 싫게 땜질하듯 해놓았어도 아무도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시나 이들은 관심도, 관여도 하지 않는다.

참 묘한 사람들이다.


그 남학생의 말

예전에 한 유학생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날도 온갖 쓰레기들이 바람에 나뒹굴고 있었다. 하얀 휴지 조각들이 바람에 팔랑팔랑 하늘을 날고 있었다.

나는 그 남학생에게 말했다.

"파리는 생각보다 지저분해요. 쓰레기가 이렇게 나뒹굴도록 청소도 잘 안 해요."

그랬더니 그 남학생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저는 좋은데요. 자유롭잖아요. 파리는 자유분방해요. 이 나라는 누구든지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사는 것 같아서 저는 오히려 더 좋아요. 한국처럼 남을 의식하지 않잖아요."

왜 이때 이 말이 떠오르는 걸까?

정말 파리는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다양한 민족, 다양한 인종, 다양한 삶의 모습들. 누구도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 갖지 않고, 관여하기도 싫어하면서 동시에 자신도 관여받기 싫어하는 사람들. 느린 행정 속에서도 편안함과 자유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곳이 파리가 아닐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왜 그곳에 사세요? 뭐가 그렇게 좋아요?"

사실 이것 때문이다라고 콕 집어 말할 수는 없다.

물론 그 남학생처럼 자유로움이 좋아서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것이 자유함보다는 '자유를 빙자한 방종'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니까.

그렇다면 무엇일까?

파리의 삶이 한국보다 편안하고 행복한 삶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이 '돈만 있다면 살기 가장 좋은 나라'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도 내가 이곳의 삶을 고집하는 이유는, 아마도 한국과는 다른 문화를 자주, 그리고 많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볼 곳도 많은 나라, 볼 것도 많은 나라, 한국과는 다른 건물과 문화가 있는 나라. 다양한 인종들이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에서 보이는 조화로움. 고딕 건물의 숨 막히는 아름다움. 어디를 가든 자연과 마주할 수 있는 도시의 구성들. 현대식 건물로 획일적인 서울의 모습과는 다른, 뭔가의 낭만이 숨 쉬는 나라.

이것이 아직은 내가 이곳 파리에 살고 싶은 이유가 아닐까.

한국보다 1.6배나 비싼 물가 때문에 경제적 부담이 어마어마한 나라지만, 아직은 나는 이곳에 살고 싶다. 통신의 불편함, 어느 것 하나 쉽게 해결되지 않는 부가 서비스의 불편함이 있지만, 아직은 나는 이곳 파리를 떠나고 싶지 않다.

이런 불편함과 불만에도 불구하고, 파리는 여전히 매력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금 매일 나는 테이프로 난잡하게 감긴 단자함을 본다.

분명 내게는 최선이었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참 볼품없는 모습이다. 마치 상처 입은 몸에 급하게 붕대를 감아놓은 것처럼, 그렇게 서툴고 어설프게 고정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도 감사일기를 쓴다.

"비록 서툴지만, 내 두 손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힘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이 일을 통해 불평 대신 수용을, 원망 대신 이해를 배울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때로는 완벽하지 않은 것들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만든다. 테이프로 엉성하게 감긴 단자함처럼, 우리의 인생도 어딘가 모자라고 비뚤어진 채로 버텨내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파리 유학을 낭만으로 꿈꾸는 당신에게

파리는 세느강의 석양처럼 아름답지만, 동시에 11월의 잿빛 하늘처럼 우울하기도 한 도시입니다.

많은 분들이 파리 유학을 '에밀리, 파리에 가다'처럼 상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떨어진 통신 단자함을 스스로 고정해야 하는, 집주인에게 열 번 전화해도 답장 한 통 오지 않는 평범한 일상입니다.

한국에서 겪던 어려움이 파리에 오면 마법처럼 사라질 거라는 환상은 접으시길. 단지 문제의 언어와 색깔이 다를 뿐입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파리 유학을 권합니다. 바로 그 '다름' 때문입니다.

낯선 풍경들, 예상치 못한 문제들, 전혀 다른 시간의 흐름. 이 모든 것이 당신이라는 그릇에 새로운 색을 칠해줄 테니까요. 그 색들이 모여 당신만의 그림이 됩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 진부하지만 진실입니다.

늦어도 괜찮습니다. 50대, 파리 유학생이 되어도 괜찮습니다.

당신의 인생이라는 캔버스에 파리라는 물감을 한 번 찍어보세요. 그 그림은 오직 당신만의 것이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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