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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끝에 놓인 희망: 숲 공원의 가을 산책

연재) 늦어도 괜찮아. 50대, 파리 유학생이 되다

by Selly 정

늘은 넓고 탄탄한 산책로 대신, 사람의 발자국이 만들어낸 가느다란 오솔길만을 골라 걸었다. 낙엽이 바스락바스락 발밑에서 속삭이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어폰 너머로 흘러나오는 오디오북의 목소리와 자연의 소리가 묘하게 어우러졌다.

방센느 숲 공원. 이곳은 내가 매일같이 찾는 안식처이자, 마음의 정원이다.


나무들이 그려낸 가을의 팔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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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화가다. 오렌지빛 열정과 붉은 빨강의 격정, 노랑의 온화함과 연노랑의 부드러움을 한 폭의 캔버스에 쏟아붓는다. 나무들은 서로의 색을 나누어 입고, 그 경계에서 이름 붙일 수 없는 오묘한 색채들이 태어난다. 마치 인상파 화가의 붓끝에서 번져나온 물감처럼, 나무들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사각사각 흔들린다.

호숫가에는 기러기와 오리들이 유유자적 물장구를 친다. 찰랑찰랑, 물결이 그들의 깃털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 너머로 백조가 고개를 쳐들고 있다. "나는 우아함 그 자체야." 그들의 하얀 목선이 말없이 외치는 것만 같다. 공작새들은 더 요란하다. 커다란 몸집을 뽐내며, 무지개를 통째로 삼킨 듯한 깃털을 펼쳐 보인다. '어때, 난 이렇게 화려해!' 하고 소리 없이 자랑한다.


좁은 길을 걷는 이유

사진 속 길을 보라. 넓은 산책로도 있건만, 나는 자꾸만 좁은 길로 발길을 돌린다. 사람의 발이 오래 밟아 다져진, 풀과 흙이 뒤섞인 오솔길. 이 길을 걸을 때면 자꾸만 괴테가 떠오른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 그는 매일 오후 4시, 같은 공원을, 같은 시간에 산책했다고 한다. 그의 산책이 얼마나 규칙적이었던지, 동네 사람들은 괴테의 모습을 보고 시간을 가늠했다고 한다. "아, 벌써 4시구나."

나 역시 거의 매일, 오후 3시쯤 이 길을 찾는다. 그러니 나도 작은 괴테인 셈이다. 이 숲길을 걸으며 나는 비로소 이해한다. 왜 그가 매일 같은 길을 걸었는지를.

산책은 생각의 매듭을 푸는 시간이다. 복잡하게 엉킨 마음의 실타래들이 한 걸음 한 걸음 풀려나간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발밑의 낙엽처럼 부서지고, 그 자리에 감사와 희망이 싹튼다. 괴테도 이 길을 걸으며 이런 마음이었을까? 글의 영감을 떠올리고, 이야기의 조각들을 주워 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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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 대한 시들

걷다 보니 시가 떠올랐다. 괴테의 「방랑자의 밤노래」.

"모든 산봉우리에는 안식이 깃들고
모든 우듬지에는 한 가닥 숨결조차 느껴지지 않네.
기다려라, 머지않아 그대 또한 쉬리니."

이 시처럼, 가을 숲은 고요했다. 나뭇잎들조차 숨을 죽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모든 것이 쉼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나도, 이 길도, 저 나무들도.


그리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이 덜 간 길을 택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달라지게 했습니다"

나도 오늘 넓은 대로가 아닌, 좁은 오솔길을 택했다. 이 선택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이 길에서 나는 더 많이 느끼고, 더 깊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김용택 시인의 「길」이 떠올랐다.

"사랑은
이 세상을 다 버리고
이 세상을 다 얻는
새벽같이 옵니다

이 봄
당신에게로 가는
길 하나 새로 태어났습니다"

'당신에게로 가는 길 하나 새로 태어났습니다.' 이 한 문장이 가슴을 친다. 길은 원래 거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해 가는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나도 그랬다. 파리로 오는 길은 원래 없었다. 음악을 향한, 꿈을 향한, 나 자신을 향한 마음이 이 길을 만들어냈다.

이 좁은 오솔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내 인생의 길도 이와 같지 않을까. 때로는 좁고, 때로는 낙엽에 덮여 잘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어딘가로 이어지는 길.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유학생의 현실

사실 오늘,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다. 11월이면 또다시 거주증(carte de séjour)을 갱신해야 한다. 매년 이맘때면 찾아오는 이 불안은, 계절처럼 규칙적이고 피할 수 없다.

통장에 최소 6,500유로 이상이 있다는 증명, 음악학교 피아노 학과 재학 증명서, 증명사진... 서류 자체는 어렵지 않다. 문제는 그 후다. 이 모든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해도, 승인이 날지 안 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것이 가장 불안하다.

더군다나 거주증 카드는 신청 후 거의 1년이 지나야 나온다. 5~6개월쯤 지나야 허가 증명서라도 받을 수 있고, 그때부터 비로소 프랑스 밖을 여행할 수 있다. 작년에는 12월에 신청해서 4월에야 허가증을 받았다. 그 바람에 2월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2월 행사에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것이 유학생의 현실이다. 매년 반복되는 비자와 거주증의 불안. '올해는 어떻게 될까?' 하는 두려움. 이 무게는 어학원생이든, 나처럼 음악학교를 다니는 학생이든,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특히 10월, 11월쯤이면 유학생들의 마음은 더욱 예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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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주는 위로

이런저런 생각을 품고 오솔길을 따라 걸었다. 나처럼 작은 가방 하나 메고, 이어폰을 꽂고 걷는 사람들을 종종 마주친다. 우리는 서로의 이름도 모르지만, 같은 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 동료가 된다.

산책이 명쾌한 답을 주는 건 아니다. 거주증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불안이 단번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한 바퀴를 돌아 집으로 돌아올 때면 마음속에 작은 목소리가 들린다. '잘 될 거야.'

손미나 작가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깨달았듯이, 길은 그 자체로 이미 답이다. 길을 걷는다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괜찮아, 그 길 끝에 행복이 기다릴 거야."

그렇다. 내가 걷는 이 길 끝에도 분명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거창한 성공이 아니어도, 작은 기쁨이어도 좋다.

파리에서의 유학 생활은 여전히 불안하다. 매년 갱신해야 하는 서류들, 언제 나올지 모르는 허가증. 하지만 그 불안 속에서도 나는 이 길을 걷는다. 낙엽을 밟으며, 시를 떠올리며, 호수의 백조를 바라보며.

어쩌면 우리는 매 순간 이곳에 머물 자격을 증명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여기 있어도 되는 사람일까?

그 질문에 방센느 숲이 답한다. 낙엽이 쌓인 오솔길이,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들이, 호수에 비친 가을 하늘이 답한다.

"그래, 너는 여기 있어도 돼."

나는 고개를 들고 걷는다. 손에 든 책의 무게가 든든하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나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알고 있다. 이 길을 걷는 한, 나는 길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고마워, 나의 산책길!.
오늘도 나는 이 길을 걸었고, 내일도 나는 이 길을 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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