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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와라, 자주 와"

연재) 늦어도 괜찮아. 50대, 파리 유학생이 되다

by Selly 정

엄마의 목소리 - 2부

초점 없이 멍한 눈빛으로 날 보는 엄마. 내가 말할 때마다 눈물 방울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엄마, 괜찮아. 엄마, 괜찮아."

중얼거리며 엄마 눈물을 닦아주었다.

"엄마, 이제 천국에 가세요. 아프지도 않고, 병도 없고, 슬픔도 외로움도 없는 천국에서 매일매일 행복하게 즐겁게 지내세요."

시꺼멓게 멍든 엄마 팔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엄마는 식사를 할 수 없었다. 링거 주사를 계속 맞으셨고, 기운이 없어 피 주사도 맞으셨다. 링거와 혈액 주사. 그것으로 힘겹게 하루하루 연명하셨다.

엄마 생명줄은 질겼나 보다.

의사들은 이미 며칠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숨을 멎을 듯하면서도 멎지 않으셨다고 했다. 엄마는 세상을 사랑하셨다. 자신의 삶을 무척 사랑하셨다. 그래서 쉽게 놓을 수 없으셨나 보다.


엄마는 남편이 공무원인 것을 누구보다 자랑스러워하셨다.

아니, 자신의 일생 일대 꿈을 이룬 셈이었다.

농사짓는 남자가 아닌, 직장 가진 남자와 결혼하는 것. 그것이 시골 처녀였던 엄마의 평생 소망이었다. 그 소망대로 직장 있는 남자와 결혼했다.

어디 그뿐인가.

가난한 농부의 딸 출신. 뭐 하나 굳이 내세울 것 없던 시골 아가씨가 면사무소 직원의 아내가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남편은 군청 계장이 되더니, 나중엔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면장이 되었다.

'직장 다니는 남편이면 족하다'던 시골 처녀의 소망. 그 소망이 한 마을을 관리하는 면장 부인이 되는 것으로 이루어졌으니, 그 어디 세상 부러울 것이 있겠는가?

그뿐이랴.

딸 넷, 아들 셋. 자식들도 더 이상 바랄 것 없을 정도로 완벽한 조합이었다. 엄마는 정말 자신의 소망을 다 이루었다고 말하곤 했다.

또 자신이 정 씨 집안에 시집와서 대단히 큰일을 해냈다고 은근히 자랑하셨다. 자신 덕분에 남편이 면장까지 출세했다고. 자신이 복이 있어 자녀도 딸, 아들 남부럽지 않게 많이 낳았다고. 엄마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물론 아픔도 있었다.

비록 큰아들이 본인보다 일찍 세상을 떠나는 안타까운 일을 겪었지만, 그래도 다른 자녀들은 특별한 병치레 없이 다 잘 자라주었다. 각자 밥벌이할 정도로 교육도 시켰고, 작게나마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식들이었다.

얼마나 뿌듯하고 행복했겠는가.

엄마 본인만 건강하면 되는, 큰 탈 없는 삶. 자식들을 자주 못 보는 외로움만 빼면, 엄마는 무척 만족스러운 삶을 사셨다.


다치기 전까지만 해도 엄마는 건강하셨다.

매일 저녁 동네 한 바퀴 산책을 하셨다. 동네 산책길에 있는 운동기구에서 열심히, 나름 최선을 다해 운동도 하셨다. 열혈 할머니셨다.

새벽 4시 30분이면 어김없이 일어나셨다.

그리고 바로 '목욕 재개'를 하셨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머리를 감고, 화장을 하고, 잠옷을 평상복으로 갈아입는 것. 그것이 엄마의 매일 루틴이었다.

참 부지런한 분이셨다.

생각해보라.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 감고, 세수하고 곱게 화장하는 일. 그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엄마 집에 머물 때, 나도 엄마처럼 부지런해지고 싶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엄마처럼 머리 감고, 세수하고, 화장하고, 잠옷을 갈아입는 시도를 해봤다.

딱 하루.

그렇게 하고 포기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은 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어나자마자 매일 머리 감고 화장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았다. 집에 있을 때는 그냥 눈곱만 떼고 편한 잠옷 차림으로 한참 있다가, 외출 시간이 되어서야 옷을 갈아입는 게 익숙해진 나로서는 도저히 엄마의 생활 패턴을 따라갈 수 없었다.

언젠가 한번 엄마한테 물었다.

"엄마는 힘들지 않아? 그렇게 매일 아침마다 머리 감고 세수하고 화장하는 일이 귀찮지 않아? 왜 매일 그렇게 화장을 해. 집에 있는데도?"

"나는 이게 습관이 돼서 괜찮아. 그리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엄마는 답답해서 못 살아. 엄마는 결혼한 이후에 쭉 80평생을 이렇게 살아왔어. 18살에 시집와서 할아버지, 할머니 모시고, 직장 다니는 아빠 출근시키려면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야 했거든. 그래서 새벽에 일어나서 항상 머리 감고, 세수하고 곱게 화장을 했어."

그 말을 듣고 나니 엄마가 더 대단하게 느껴졌다.

80평생을 그렇게 사셨다니. 18살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남편을 출근시키고, 일곱 자녀를 키우면서도 한 번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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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내 머릿속에는 선명한 엄마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하얀 광목천으로 된 발목까지 내려오는 앞치마를 두르고 부엌에서 일하는 엄마. 단정하게 빗어넘긴 검은 머리. 때론 하얀 삼각천을 머리에 두르고 수증기 자욱한 부엌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엄마.

뿜어져 나오는 고소한 냄새를 따라 부엌 안으로 들어가면, 긴 무명천 앞치마를 두른 엄마가 온갖 종류의 부침개를 매운 연기를 손으로 닦아가며 부지런히 부치고 있었다.

"엄마, 뭐 해?"

다가가면 엄마는 이것저것 종류별로 부침개를 손에 쥐어주곤 했다.

"오늘 할아버지 제사날이야. 저녁에 제사 끝나고 나면 많이 먹어. 지금은 안 돼."

하시면서도 뜨거운 명태전을 손에 쥐어주곤 했다.

지글지글 기름에 튀겨지는 소리. 매콤하면서도 고소한 냄새. 뜨거운 명태전을 호호 불어가며 먹던 그 맛. 지금도 생각하면 입에 침이 고인다.

참으로 부지런한 엄마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화장하고, 밥상을 차리고, 식구들을 챙기고, 제사 때면 온갖 음식을 준비하시던 엄마. 늘 단정하고, 늘 부지런하고, 늘 자식들을 먼저 챙기시던 엄마.


내가 엄마를 생각하면 늘 추억하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대추'였다.

나는 유독 대추를 좋아했다. 대추만 생각해도 지금도 입에 살짝 침이 고인다.

시골 읍 단위에 살았을 때, 우리는 커다란 마당을 가지고 있었다. 대문에서 집안까지 오는 마당길이 있었다. 그 마당길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수돗가와 장독대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다양한 꽃들과 나무들이 심겨 있었다.

또 부엌을 돌아 뒷마당에는 각종 채소를 심어 놓은 텃밭과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솟아 있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었다.

어릴 때 이런 풍경이 참 좋았다.

장독대의 정겨움. 사시사철 마당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는 과일나무와 꽃들의 향연. 가을이면 노랗다 못해 눈부실 정도로 마음을 뭉클하게 물들이는 은행나무의 붉고 노란 빛깔. 그 화려함이 내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 마당 풍경 속에 유독 날 가장 흥분하게 한 것은 바로 대추나무였다.

초가을로 접어들 때쯤부터 대추나무 가지는 휘어져 축 늘어졌다.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대추들의 무게에 짓눌려 땅까지 가지를 축 늘어뜨렸다.

싱그럽게 달콤한 대추를 따 먹는 재미. 그것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매끈하고 윤기 나는 팽팽한 초록 껍질. 햇살 받는 쪽만 살짝 붉게 물들기 시작한 타원형의 작고 단단한 열매. 그 대추 한 알을 입에 넣고 오독오독 씹을 때의 행복함이란...

그 순간만큼은 그 무엇도 부럽지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였다.

"제사상에 놓아야 한다고, 다 따 먹지 마라!"

엄마의 잔소리를 매년 듣고 살았던 어린 시절이었다. 하지만 엄마도 내가 대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셨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엄마는 대추를 나에게만 챙겨주셨다.

제사를 다 치르고 새벽에 일어나 제사 밥을 먹을 때마다, 엄마는 내 앞에 늘 대추를 놓아주었다. 때론 설탕으로 버무려진 이제 막 익어가는 얼룩덜룩한 대추를. 때론 붉게 익은 통통한 주름진 대추들을. 언제나 내 앞에 놓아주었다.

대추는 나에 대한 엄마의 사랑이었다.

엄마는 병원에 입원하시기 전까지, 파리에서 한국에 와서 엄마 집을 방문할 때마다, 대추가 있으면 어김없이 내 앞에 대추를 가져다 주었다.

설탕에 때론 너무 많이 버무려져서 설탕을 손가락으로 탈탈 털어가면서 먹는 대추 한 알. 그 대추 한 알은 날 가장 행복한 아이로 만들어주었다.

어른이 되어서도,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나서도, 파리에 살면서도, 엄마가 내 앞에 놓아주시던 그 대추는 변함없었다.

그 대추 한 알에는 '내 딸이 좋아하는 걸 기억해'라는 엄마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멀리 있어도 너를 생각한다'는 엄마의 사랑이 담겨 있었다.


엄마 손을 잡고, 계속 흘러내리는 엄마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말했다.

"엄마, 엄마, 괜찮아. 이제 편히 쉬어. 엄마, 좋은 데서 우리 다시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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