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미국 비자 3번 거절당한 내가 다시 꿈을 꿀 수 있었던

연재) 늦어도 괜찮아. 50대, 파리 유학생이 되다

by Selly 정


미국 비자 3번 거절당한 내가 다시 꿈을 꿀 수 있었던 이유

요즘 프랑스가 시끄럽다.

한국 뉴스에도 대규모 데모 사진이 실리고, 프랑스가 IMF를 신청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먼 타국의 뉴스 같지만, 이곳 파리에서 생활하는 나에게는 피부로 와닿는 현실이다.

파리에 살면서 가장 실감하는 건, 장을 볼 때다.

가장 기본적인 식품들을 살 때, 몇 가지 품목만 샀을 뿐인데 금방 수십 유로가 나온다. 장바구니는 갈수록 가벼워진다. 확실히 프랑스가 점점 살기 쉽지 않다는 것을 매일 느낀다.

청소년 시절, 아니 대학생 때만 해도 프랑스 하면 낭만의 도시가 떠올랐다.

우아하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여인들과 멋지게 정장을 차려입은 멋쟁이 신사들이 거니는 도시. 그런 환상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파리를 바라보고 있으면, 건물은 여전히 고상하고 우아한데 그 앞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어딘가 우중충해 보인다. 미소 짓는 사람들은 정말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거기다 파리 시내를 걸어다니다 보면, 여기가 북아프리카인지 중동 국가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상황에서도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은 여전히 남아있다.

나름 이 나라에 매력을 찾아 온 유학생들이 많이 있다. 그중의 한 사람이 나와 내 딸인지도 모르겠다.


한국의 위상, 그리고 나의 현실

지금쯤은 어느 정도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이미지가 상승되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공항에서 마지막 출국 절차를 밟을 때, 한국인과 유럽 연합 국가들은 따로 마련된 통로로 가서 절차를 밟는다. 지문과 얼굴 인식만으로도 바로 통과가 되는 참으로 간단한 절차를 밟는 그런 나라가 되었다.

이렇게 한국이라는 나라의 위상이 높아져서 참으로 흐뭇할 때가 있다.

하지만.

개인의 현실은 또 다른 문제였다.


미국 비자 3번 거절, 그 트라우마

50대 초반.

그 나이에 유학생이 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딸아이는 튀니지에서 프랑스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인터내셔널 고등학교를 다녔다. 우리나라의 학력고사처럼 바칼로레아 시험을 치르고 프랑스 리옹 대학에 합격했다. 딸아이는 대학생으로 당당히 유학 비자가 바로 나왔다.

문제는 나였다.

50대 초반이라는 나이. 갑자기 유학생으로 프랑스에 간다면 어떻게 갈 수 있을까? 과연 나를 유학생으로 받아줄 수 있는가? 과연 나의 유학 비자가 순조롭게 나올 것인가?

그러다 문득 떠올랐다.

미국 비자 3번 거절당했던 그때가. 그 트라우마가 떠올라 심장이 두근거렸다.


우연처럼 찾아온 기회

그러다 우연히 에듀프랑스 유학원을 알게 되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이곳 유학원 원장님에게 나의 상황과 입장을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했다.

50대 초반이라는 나이, 미국 비자 3번 거절당한 트라우마, 그럼에도 프랑스로 유학을 가야 하는 절박한 사정까지.

원장님은 내 상황을 구체적으로 다 질문하고 알아본 후에 말했다.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안 되지는 않을 거예요.
그러니 걱정 마시고, 우리 함께 서류 잘 준비해서 최선을 다해 봅시다."

'우리 함께.'

그 말이 주는 힘이 있었다. 하늘에서 갑자기 튼튼한 동아줄이라도 내려온 느낌이었다. 너무나 절실했기에, 간절함을 가지고 원장님을 붙들었다.


함께 준비한다는 것의 의미

원장님이 준비하라고 하는 서류들을 꼼꼼히 다 챙겼다.

면접할 때 해야 할 말들, 조심해야 할 말들을 꼼꼼히 되새기면서 원장님의 지시들을 아주 조심스럽게 따르며 비자 준비를 해나갔다.

내가 비자를 준비해야 할 시기에도 요즘처럼 유학생 비자를 잘 주지 않던 시기라서 더욱더 주의를 기울이면서 한 단계씩 비자 서류를 준비해 나갔다.

에듀 원장님과 서류를 준비해 나가면서 점점 나는 원장님에 대한 신뢰가 쌓였다.

너무나 좋은 분이셨다.

유학원 원장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할 뿐 아니라, 개인적인 친분을 가진 분처럼 내 마음까지 어루만지시면서 위로하시고, 격려하시고, 용기를 주셨다.

"괜찮으세요. 잘하실 거예요."

"이 부분은 이렇게 준비하시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함께 있잖아요."

이런 말들이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른다.


비자 인터뷰 당일, 서울에서

드디어 비자 인터뷰 당일.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갔다. 상당히 날카롭고 까다로운 면접 담당자를 만나서 은근히 당황스럽고 긴장이 많이 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계속 에듀 원장님이 내게 격려와 용기를 주셨기에, 나는 담대히, 그리고 솔직하고 당당하게 인터뷰를 했다.

그날, 원장님은 맛있는 음식까지 사주셨다.

그리고 지방 내려갈 때 쓰라고 용돈까지 챙겨주셨다.

세상에. 유학원에서 이렇게까지 해주는 곳이 있다니. 처음 겪는 일이었다. 아니, 들어본 적도 없는 일이었다.



제목을 입력해주세요_-001.png


1주일 후, 그 전화

1주일 후, 비자가 나왔다.

이 소식을 나는 에듀 원장님에게 바로 알려드렸다.

서울에서 인터뷰하던 날, 맛있는 음식까지 사주시고 지방 내려갈 때 쓰라고 용돈까지 챙겨주신 원장님의 얼굴이 바로 떠올랐다.

너무 기쁘고 감사해서 전화를 걸었다.

"원장님, 저 비자 나왔어요. 감사해요. 원장님, 다 원장님 덕분이에요."

감격의 기쁨을 나누었다.

전화기 너머로 원장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머, 잘 되었어요. 나온다고 했잖아요. 이제 걱정하지 마시고 파리에서 유학 잘 하셔요. 그리고 언제든 도움이 필요하면 전화 주세요. 걱정하지 마시고, 제가 할 수 있으면 최선을 다해서 도와드릴게요."

정말 나는 이런 분을 만난 것이 내 인생에 행운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두드린 유학원인데,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니. 이 무슨 행운이란 말인가? 이 무슨 복받은 인생이란 말인가?

너무 너무 기쁘고 감격되고 감사했다.


파리에서의 시작, 그리고 매년 찾아오는 불안

에듀 원장님의 헌신적인 도움과 지도하심으로 나와 딸은 유학생 비자를 받고 파리에서 유학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나처럼 나이가 있는 유학생들은 매년 비자를 거주증으로 갱신해야 한다.

이것이 쉽지는 않다.

순조롭게 진행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론 비자 갱신 거주증이 거절되기도 한다. 그래서 매년 비자 갱신 시기가 다가오면 사실 마음이 편치 않다.

여러 유학생들 중에 내 딸처럼 대학원생 입학을 신청했는데 비자가 거절되어 한국에 추방 명령을 받는 경우가 발생한다.

내가 알았던 한 유학생도 이런 경우에 처하게 되었는데, 에듀 원장님을 소개받고 원장님의 도움으로 무사히 비자를 받아서 대학원을 다니게 되었던 경우도 있었다.


천하에 둘도 없는 든든한 지원군

내게 있어서 에듀 원장님은 천하에 둘도 없는 든든한 지원군 같았다.

비자와 관련된 모든 문제들에 대해서 도움과 조언을 요청할 때면 언제든지, 어느 때든지 연락을 주시고 조언과 지도를 해주셨다.

미국 비자 3번 거절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원장님은 말했다.

"프랑스에 있을 때 비자나 거주증 문제로 곤란한 일을 겪을 때마다 이제 스스로 해결하지 말고 곧바로 저한테 연락하세요. 언제든지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 테니, 미안해하지 말고 성가시게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언제든 필요하면 연락하세요."

이 얼마나 든든하고 위로가 되는 말인가?

이보다 더 큰 지원군이 어디 있을까?

한 번의 인연으로 끝나지 않고, 언제까지나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 신뢰가 되는 관계로 발전되었으니, 정말로 감사하고 감사하다.


딸아이에게 찾아온 황당한 일

그런데 최근 딸에게도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딸은 비즈니스 학과 대학원에 합격을 했다. 합격증도 있고, 심지어 실습과 학습을 병행할 수 있는 곳에 취직까지 이미 다 된 상황이었다.

그런데 거주증 거절과 심지어 '추방 명령'이라는 용지까지 받았다.

너무나 기가 막혔다.

아니, 무슨 범죄자도 아니고, 심지어 대학원 입학 합격까지 받은 유학생인데 무슨 불법 체류자처럼 추방 명령이라니. 너무 놀랍기도 하고, 어이없기도 하고, 어안이 벙벙했다.


이때 우리가 생각난 사람은 오직 한 분,

바로 에듀프랑스 유학원 원장님이셨다.

에듀프랑스 원장님, 이분은 우리에게 정말 은인 같은 분이셨다.

처음 내가 프랑스에 유학을 올 때도, 50대 초반을 넘긴 나이에 미국 비자 3번 거절의 트라우마를 안고 망설이던 나를 이끌어주셨던 그분.

매년 비자 갱신 시기마다 마음 졸이던 나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주셨던 그분.

이번에도 딸을 위해 원장님의 문을 두드렸다.


여전히, 변함없이

이번에 딸도 인터뷰하던 날, 서울에서 원장님을 만났는데, 아 글쎄, 맛있는 식사까지, 그리고 또 예전의 나에게 하셨던 것처럼 용돈까지 주셨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유학원 원장님이 계실까?

아니, 프랑스 유학원 원장님들은 다 이렇게 하는 건가?

아니다.

나는 이렇게 한다는 원장님에 대한 소문을 지금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정직과 성실로서 유학원 원장과 직원으로서 최선을 다하시는 분들은 많다.

그러나 이처럼 유학을 준비하는 사람의 마음까지 살피면서 격려와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또 어리버리한 초보 유학 준비생을 위해 섬세하게 인터뷰 준비까지 다 일일이 가르쳐 주시고, 더 나아가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에게 점심까지, 심지어 지방 내려가는 차비까지 용돈으로 주시는 분들이 계신가?

나는 아직까지 만나보지 못했다.


나도 하지 못했던 일

솔직하게 말하면, 나도 한국어 교사로서 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또 그들이 한국에 왔을 때 도움을 주긴 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온 마음과 정성으로 그들을 챙기거나 도와주지는 못했다. 솔직하게.

그런데 원장님은 기본적으로 남을 돌보고 섬기는 품성이 몸에 밴 분 같다. 그렇지 않고서 이처럼 친절하게 섬세하게 다른 사람을 돕지 않는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정말로 복이 많아서 이와 같이 마음 따뜻하고 실력 있고 유능한 유학원 원장님을 만났는지 모른다.

정말 내 인생에서 또 한 명의 은인을 만났다.

프랑스에서 유학생으로 살면서 비자 문제로 곤란한 일을 만날 때마다 나와 딸은 에듀 원장님에게 전화한다.

내가 아는 지인들이 나처럼 비자나 거주증으로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나는 언제든지 에듀 원장님을 소개해드렸다.

그리고 유학 비자이든, 대학원 비자이든, 모든 분들이 다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에듀프랑스 유학원 원장님, 감사합니다.

당신은 정말 내게 말할 수 없이 감사한 지원군이십니다.

내 인생에서 당신을 만난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입니다.

당신은 나의 행운의 네잎클로버입니다.


혹여나 이 글을 읽는 유학 준비생들에게

혹여나 유학생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내 글을 읽는다면, 에듀프랑스 유학원의 문을 두드려 보시길.

에듀 유학원장님은 진심과 정성, 최선을 다해서 여러분의 유학 비자 문제를 도와드릴 것이다.

특히 나이 때문에 망설이는 분들, 비자 거절의 트라우마가 있는 분들, 복잡한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 감히 추천한다.

원장님은 단순히 서류를 대행해주는 분이 아니다.

함께 준비하고, 함께 걱정하고, 함께 기뻐하는 동반자다.


에필로그

종로구 종로12길 18, 우석빌딩 6층.

에듀프랑스 종로본원, 그곳에서 내 인생의 은인을 만났다.

당신은 나의 행운의 네잎클로버다.

"함께 준비해봅시다."

그 한마디가 내 인생을 바꾸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길 끝에 놓인 희망: 숲 공원의 가을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