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투자라는 이름의 꿈 /1장. 새벽의 불안
"돈을 잃는 방법은 두 가지다.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어니스트 헤밍웨이 (Ernest Hemingway),
천장의 물자국을 봤다.
작년 겨울, 비가 샌 자리였다. 고쳐야지 고쳐야지 하면서 벌써 몇 달째. 물자국은 지도처럼 보였다. 해안선 같기도 하고 강줄기 같기도 했다. 서경자는 침대에 누워 그 모양을 따라갔다.
휴대폰을 봤다. 새벽 세 시.
옆에서 남편 김정수가 자고 있었다. 깊은 숨소리. 규칙적인 호흡. 이십 년 넘게 외국계 회사 다니면서도 이렇게 자는 사람이었다. 내일 출근하고 월급 받고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
경자는 달랐다.
요즘 잠이 안 왔다. 밤이 되면 숫자가 보였다. 월급, 생활비, 등록금, 노후 자금. 그 숫자들이 머릿속에서 돌고 돌았다.
일어났다.
거실로 나갔다. 창문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들어왔다. 은은한 주황빛. 밖은 고요했다. 새벽 세 시면 다들 자고 있었다.
소파에 앉았다. 낡은 소파였다. 십여 년 넘게 앉은 자리라 푹 꺼져 있었다. 등받이 쿠션도 딱딱했고 팔걸이 천은 닳아서 실밥이 보였다. 하지만 깨끗했다. 경자가 매주 먼지를 털고 커버를 빨았다. 낡았어도 지저분하지 않게. 그게 경자의 방식이었다.
거실 벽시계가 똑딱거렸다. 딸 수진이가 고등학교 입학할 때 산 시계.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조용한 새벽에는 그 소리가 크게 들렸다.
창밖을 봤다.
작은 마당이 보였다. 삼십 년 넘게 산 집이었다. 결혼할 때 들어왔다. 대구 남구의 오래된 동네. 단독주택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 요즘 신축 빌라들이 하나둘 들어서지만 경자네 집은 그대로였다.
벽돌집이었다. 빨간 벽돌이 군데군데 금이 가 있었다. 지붕도 낡았다. 비 오면 샜다. 하지만 벽돌 하나하나를 경자가 닦았다. 봄마다 고압 세척기를 빌려서. 지붕은 어쩔 수 없었지만 벽만큼은 깨끗하게 유지했다.
마당도 작았다. 평 남짓. 거기에 장독대 몇 개 놓고 고추 몇 포기 심었다. 작년에는 상추도 심었는데 잘 안 자랐다. 그래도 경자는 마당 한쪽을 정리해서 작은 화분들을 놓았다. 봉선화, 맨드라미. 돈 안 드는 꽃들. 씨앗 뿌리면 자라는 것들.
이 집에서 아이들을 키웠다. 세 명. 큰아들 민준이, 둘째 민수, 막내딸 수진이. 좁은 방 두 개에서.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한 방에서 셋이 잤다. 커서는 아들 둘이 한 방, 딸이 한 방.
지금은 아들 둘 다 독립했다. 서울에서 직장 다녔다. 수진이만 남았다. 대학생이었다.
집은 낡았다. 삼십 년이 넘었으니 낡을 수밖에. 화장실 타일도 깨졌고 부엌 씽크대도 녹슬었다. 보일러는 십여 년 됐다. 겨울만 되면 걱정이었다. 언제 고장 날지.
고칠 돈이 없었다.
하지만 더럽지는 않았다. 경자는 매일 청소했다. 낡은 타일이라도 깨끗하게. 녹슨 씽크대라도 반짝이게. 그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새 집을 살 수는 없어도 깨끗하게는 살 수 있었다.
TV 리모컨을 집었다. 켰다. 소리를 최대한 줄였다.
뉴스 채널이었다. 새벽 재방송.
"코로나19 확진자가 또다시 급증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됩니다."
앵커가 말했다. 화면에 그래프가 떴다. 확진자 수. 빨간 선이 가파르게 올라갔다.
"자영업자들의 폐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정부 지원금이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화면이 바뀌었다. 거리 인터뷰였다. 육십대쯤 보이는 남자가 나왔다. 식당 주인이었다.
"사십 년 넘게 가게 했는데 이제 접어야 될 것 같아요. 거리두기 때문에 손님이 없어요."
다음 인터뷰. 이십대 여자였다. 카페 알바생이었다.
"가게 문 닫아서 저도 일 못 해요. 알바비로 학비 냈는데 이제 어떡하죠."
또 다른 인터뷰. 삼십대 남자였다.
"무급휴직 당했어요. 한 달에 백만 원 지원해준다는데 그걸로 뭐 해요. 애 둘 키우는데."
경자는 화면을 봤다.
이천이십 년 가을이었다. 코로나가 터진 지 반년 넘게 지났다. 세상이 달라졌다. 마스크, 거리두기, 폐업. 뉴스에서 매일 나왔다.
대구가 제일 심했다. 코로나 첫 대규모 확산지였다. 이천이십 년 봄, 대구가 뉴스에 나왔다. 확진자가 폭증했다. 병원이 부족했다. 사람들이 죽었다. 대구 전체가 멈췄다.
그때부터였다. 모든 게 바뀌기 시작한 건.
동네 가게들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치킨집, 카페, 옷가게. 임대 표지판이 붙었다. 사람들은 말했다. "코로나 때문에." 그게 다였다.
화면 속에서 또 다른 뉴스가 나왔다.
"급여 삭감과 무급휴직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소기업과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타격이 큽니다."
그래프가 떴다. '2020년 가계 소득 감소율'. 빨간 막대가 내려갔다.
경자는 한숨을 쉬었다.
남편 월급도 삭감됐다. 작년까지만 해도 삼백만 원 가까이 받았는데 올해 들어 이백오십으로 줄었다. 외국계 건설자재 회사 사정이 안 좋아졌다고 했다. 코로나로 건설 현장이 멈췄다. 자재가 안 팔렸다. 회사는 직원들 월급을 이십 퍼센트 깎았다.
남편은 말이 없었다. 그저 회사 다니고 월급 받고. 삭감된 것도 그냥 받아들였다. "어쩔 수 없지 뭐." 그게 다였다.
경자 월급도 마찬가지였다. 슈퍼마켓 근무시간이 줄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영업시간이 단축됐다. 손님도 줄었다. 원래 백오십만 원 정도 받았는데 지금은 백이십. 삼십만 원이 줄었다.
작은 돈이 아니었다.
둘이 합쳐 한 달에 삼백칠십.
코로나 전에는 사백오십이었다. 팔십만 원이 줄었다. 그 돈으로 뭘 할 수 있었을까. 딸 수진이 학원비 조금 더 보내주고, 경조사비 내고, 여름에 선풍기 대신 에어컨 켜고.
이제는 다 아껴야 했다.
채널을 돌렸다.
경제 방송이었다.
"개미투자자들의 주식 열풍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입니다."
앵커가 설명했다.
"코로나로 주가가 폭락하자 개인투자자들이 대거 시장에 뛰어들었습니다. 집에서 주식하면 된다는 분위기입니다."
화면에 증권가 풍경이 나왔다. 사람들이 화면을 보고 있었다. 젊은 사람도 있고 나이 든 사람도 있었다.
인터뷰가 나왔다. 삼십대 남자였다.
"회사 다녀봤자 월급 얼마 안 되잖아요. 주식으로 한 달에 몇백씩 버는 사람도 있대요. 저도 해봐야죠."
다음 인터뷰. 칠십대 할아버지였다.
"연금으로는 못 살아요. 주식이라도 해야죠. 손주 용돈이라도 줘야 하는데."
또 다른 인터뷰. 이십대 여자였다.
"취업이 안 되니까... 주식이라도 하면 돈 벌 수 있잖아요."
경자는 그 얼굴들을 봤다. 다들 비슷했다. 조급한 눈빛.
화면 속 전문가가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의 순매수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특히 삼사십대뿐 아니라 오십대, 육십대, 심지어 칠십대까지 주식 시장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경자는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작년 이맘때였다.
슈퍼마켓 동료 미숙이가 말했다.
"언니, 주식 해요?"
"아니, 나는 그런 거 모르는데."
"저 요즘 하는데 돈 벌어요. 백만 원 넘게 벌었어요."
"진짜?"
"네. 집에서 휴대폰으로 하면 돼요. 요즘 다들 해요."
그날 저녁 집에 와서 검색했다. '주식 투자 방법'. 영상을 봤다. 블로그를 읽었다. 어렵지 않아 보였다. 계좌 만들고 돈 넣고 주식 사면 됐다.
며칠 고민했다.
그리고 시작했다.
처음에는 백만 원만 넣었다. 조심스럽게. 삼성전자를 샀다. 며칠 후 십만 원 올랐다. 팔았다. 십만 원이 통장에 들어왔다.
신기했다.
슈퍼마켓에서 하루 종일 서 있어도 만 원도 안 되는데. 주식은 며칠 만에 십만 원.
더 넣었다. 이백만 원. 삼백만 원. 계속 올랐다. 이십만 원, 삼십만 원. 통장 잔고가 늘었다.
주변 사람들도 다 했다. 미숙이뿐 아니라 슈퍼마켓 아르바이트생도 했다. "저 어제 오십만 원 벌었어요." 젊은 애들이 그렇게 말했다.
뉴스에서도 나왔다. '동학개미'. 외국인과 기관이 팔 때 개인이 샀다. 애국심이라고 했다. 한국 경제를 살린다고 했다.
경자는 계속 넣었다.
오백만 원. 천만 원. 천오백만 원.
십여 년 넘게 슈퍼마켓에서 모은 돈이었다. 전업주부 때 알뜰하게 모은 돈도 있었다. 장 볼 때 천 원이라도 아끼고 옷도 안 사고 외식도 안 하고. 명절에 시댁 갈 때도 선물 싸게 사고. 이 집 보일러 고장 나도 참고 견디고. 겨울에 내복 겹쳐 입고. 여름에 선풍기만 틀고. 그렇게 모았다.
다 합쳐 삼천만 원 정도 있었다. 이천만 원 가까이를 주식에 넣었다.
처음 몇 달은 좋았다.
통장 잔고가 이천이백, 이천삼백, 이천오백. 계속 올랐다.
그런데.
작년 가을쯤이었다.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루에 십만 원씩. 이십만 원씩. 처음엔 곧 오르겠지 했다. 기다렸다. 그런데 계속 떨어졌다.
이천삼백, 이천, 천팔백, 천오백.
손절을 해야 했다. 그런데 못 했다.
'조금만 기다리면 오를 거야.'
'지금 팔면 손해야.'
'다시 오를 때까지 기다리자.'
계속 기다렸다.
천이백, 천, 팔백.
결국 남은 건 오백만 원 정도였다.
천오백만 원 넘게 날렸다.
그날 밤을 잊을 수 없었다.
휴대폰을 보다가 소파에 주저앉았다. 손이 떨렸다. 숨이 막혔다. 울음이 나왔다. 소리 없이. 남편이 깰까봐.
십여 년.
십여 년 넘게 모은 돈.
하루 여덟 시간씩 서서 일하고. 손님들 짜증 받아가며. 무거운 물건 나르고. 명절에도 나가고. 아플 때도 참고. 이 낡은 집에서 보일러 고장 나도 참고. 겨울에 내복 겹쳐 입고. 여름에 선풍기만 틀고. 마당에 꽃 심어가며 위안 삼고. 그렇게 모은 돈.
다 날렸다.
그날 이후 다짐했다. 다시는 투자 안 한다고. 주식 같은 거 안 한다고.
계좌를 닫았다. 남은 오백만 원을 빼서 저축 통장에 넣었다. 원래 있던 저축 오백만 원과 합쳐서 천만 원.
그게 전부였다.
삼천만 원이 천만 원이 됐다.
TV를 다시 켰다.
또 다른 뉴스가 나왔다.
"부동산 시장이 과열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잇따라 규제 대책을 내놓지만 집값은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화면에 아파트 단지가 나왔다. 서울 강남이었다.
"강남 아파트 값이 작년 대비 사십 퍼센트 넘게 올랐습니다. 정부가 스무 번 넘게 대책을 발표했지만 효과가 없습니다."
인터뷰가 나왔다. 사십대 남자였다.
"정부를 믿고 기다렸는데 집값만 올랐어요. 이제 내 집 마련은 포기했습니다."
다음 인터뷰. 삼십대 부부였다.
"지금 안 사면 영영 못 살 것 같아요. 무서워서라도 사야죠."
화면 속 전문가가 말했다.
"규제가 오히려 집값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공급은 부족한데 수요만 억제하니까 패닉바잉이 일어나는 겁니다."
패닉바잉.
공포에 질린 구매.
지금 안 사면 못 산다는 공포.
경자는 그 말을 되뇌었다.
화면이 바뀌었다. 또 다른 뉴스였다.
"경매 시장도 뜨겁습니다. 부동산 경매 강의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화면에 강의실이 나왔다.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다. 젊은 사람도 있고 나이 든 사람도 있었다.
강사가 말했다.
"경매로 싸게 낙찰받으면 시세보다 이삼십 퍼센트 싸게 살 수 있습니다. 그게 기회입니다."
수강생 인터뷰가 나왔다. 육십대 남자였다.
"연금으로는 못 살아요. 경매라도 배워서 집 하나 사서 월세 받아야죠."
또 다른 인터뷰. 사십대 여자였다.
"남편 월급만으로는 애들 키우기 힘들어요. 경매 배워서 투자해야 할 것 같아요."
경자는 TV를 껐다.
조용해졌다.
냉장고 소리만 들렸다. 윙- 하는 소리. 낡은 냉장고였다. 십 년 넘게 쓴 것. 소리가 컸다. 새걸로 바꿔야 하는데 돈이 아까워서 미뤘다. 그래도 경자는 주기적으로 냉장고 안을 닦았다. 낡았어도 깨끗하게. 그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창밖을 봤다.
아직 어두웠다. 작은 마당이 보였다. 장독대가 어둠 속에 있었다. 삼십 년 넘게 산 집. 결혼할 때 들어온 집. 낡은 벽돌집. 지붕도 낡았고 벽도 금이 가 있었다.
하지만 경자의 손때가 묻은 집이었다. 매일 닦고 쓸고 정리하고. 낡은 타일이라도 반짝이게. 녹슨 수도꼭지라도 물때 없이. 작은 마당이라도 잡초 뽑고 꽃 심고.
이 집에서 아이들을 키웠다. 좁은 방 두 개에서. 부엌도 작고 화장실도 작고. 그래도 여기서 살았다. 깨끗하게. 정갈하게. 그게 경자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자산이 뭐가 있나.
이 집? 삼십 년 넘었다. 재개발도 안 되는 동네였다. 팔아봐야 얼마나 받을까.
은행 저축? 천만 원.
그게 다였다.
휴대폰을 들었다.
인터넷을 켰다. '부동산 뉴스'를 검색했다.
기사들이 쏟아졌다.
"서울 집값, 일 년 새 삼십 퍼센트 급등"
"영끌족 늘어난다... 빚내서라도 집 사야"
"무주택자 절망... 정부 믿었는데 집값만 올라"
"자영업자도 부동산 투자... 가게 팔아서 집 사"
경자는 기사를 읽었다. 하나하나.
'서울 강남 아파트값이 작년 대비 사십 퍼센트 넘게 올랐다. 정부가 스무 번 넘게 대책을 내놨지만 효과가 없었다. 오히려 규제가 집값을 더 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무주택자들은 절망하고 있다. 정부를 믿고 기다렸는데 집값만 올랐다. 이제는 영영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반면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번 사람들도 있다. 작년에 집 한 채 샀는데 올해 몇천만 원 올랐다는 사람들. 집이 곧 재산이 되는 시대다.'
'코로나로 가게 문 닫은 자영업자들도 부동산에 뛰어들고 있다. "가게는 망해도 집은 오른다"는 말이 나온다.'
경자는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부엌으로 갔다. 물을 마셨다. 찬물. 목을 타고 내려갔다.
씽크대를 봤다. 어젯밤 설거지가 조금 남아 있었다. 아침에 해야지. 녹슨 수도꼭지가 보였다. 고쳐야 하는데 계속 미뤘다. 그래도 경자는 매일 수도꼭지 주변을 닦았다. 녹은 지워지지 않았지만 물때는 없었다.
냉장고를 열었다. 계란, 김치, 어제 남은 반찬. 별로 없었다. 장을 봐야 했다. 그런데 요즘 물가가 올랐다. 같은 돈으로 사는 게 줄었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했다. 유통이 안 되고 물류가 막혔다고. 그래서 모든 게 비싸졌다. 쌀값도 올랐고 채소값도 올랐고 고기값은 더 올랐다.
슈퍼마켓에 오는 손님들도 말했다.
"요즘 물가가 왜 이래요?"
"예전 같으면 만 원이면 이것저것 샀는데 이제는 몇 개도 못 사네."
"월급은 그대론데 물가만 오르니까 못 살겠어요."
경자는 대답했다.
"그러게요. 저희도 힘들어요."
실제로 힘들었다. 물가가 오르는데 월급은 줄었다. 코로나로.
냉장고를 닫았다.
거실로 돌아왔다. 소파에 앉았다.
시계를 봤다. 네 시가 가까웠다.
세 시간 후면 나가야 했다. 슈퍼마켓이 여덟 시 반에 문을 열었다. 한 시간 전에 나가서 준비했다. 진열하고 청소하고 계산대 켜고.
십여 년 넘게 하는 일이었다.
원래는 전업주부였다. 아이들 키우면서 집에 있었다. 이 낡은 집에서. 좁은 부엌에서 밥하고 빨래하고. 그런데 아이들이 크면서 돈이 많이 들었다. 학원비, 등록금, 생활비. 그래서 일을 시작했다. 동네 슈퍼마켓 캐셔. 시급제였다.
십여 년 일해도 한 달에 백이십 정도였다.
휴대폰을 다시 들었다.
유튜브를 켰다. '부동산 투자'를 검색했다.
영상들이 떴다. 썸네일이 화려했다. 빨간 화살표, 큰 글씨.
"50대 주부도 할 수 있는 부동산 투자"
"월세로 노후 준비 끝!"
"작은 돈으로 시작하는 부동산"
"경매로 집 싸게 사는 법"
하나를 눌렀다.
화면 속 남자는 젊었다. 서른 초반쯤. 깔끔한 정장에 반듯한 머리. 배경은 고급스러운 사무실이었다.
"여러분, 지금 부동산 시장이 뜨겁죠? 집값이 계속 오르고 있습니다. 주식은 위험하지만 부동산은 다릅니다."
경자는 소리를 더 줄였다. 남편이 깰까봐.
"주식은 하루아침에 반토막 나지만 부동산은 실물이잖아요. 건물이 있고 땅이 있으니까 안전합니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맞았다. 주식은 숫자였다. 화면에 뜨는 빨간색 파란색. 실체가 없었다. 그런데 부동산은 달랐다.
"특히 월세 받는 집 하나 있으면 노후 걱정 없습니다. 매달 통장에 월세가 들어옵니다. 여러분이 일하지 않아도요. 자는 동안에도요."
화면이 바뀌었다. 그래프가 나왔다.
"월세 수익률 보세요. 연 오육 퍼센트 나옵니다. 은행 이자보다 훨씬 높죠? 게다가 집값도 오르니까 일석이조입니다."
경자는 계산했다.
월세가 한 달에 백만 원이면. 일 년에 천이백. 십 년이면 일억 이천.
지금 슈퍼마켓에서 일해봐야 한 달에 백이십. 일 년에 천사백사십. 십 년이면 일억 사천사백.
거의 비슷했다.
그런데 슈퍼마켓은 매일 나가야 했다. 여덟 시간씩 서 있어야 했다. 무거운 물건을 날라야 했다. 손님들 짜증도 받아야 했다. 명절에도 나가야 했다. 아파도 참아야 했다.
월세는 달랐다. 집이 있으면 됐다.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통장에 돈이 들어왔다. 자는 동안에도. 쉬는 동안에도.
화면 속 유튜버가 계속 말했다.
"요즘 정부가 다주택자 규제한다고 난리인데요. 사실 그거 서울 강남 얘기고요, 지방이나 소형 오피스텔은 괜찮습니다. 오히려 기회예요."
경자는 영상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경매도 좋습니다. 시세보다 싸게 낙찰받을 수 있거든요. 요즘 경매 강의 많이 하잖아요. 배우면 됩니다."
경매.
경자도 들어봤다. 슈퍼마켓 동료들이 말했다.
"언니, 요즘 경매 배우는 사람 많대요."
"경매로 집 싸게 사서 월세 놓으면 돈 벌 수 있대요."
미숙이도 관심 있다고 했다.
"저도 경매 강의 한번 들어볼까 해요. 인터넷으로도 할 수 있대요."
경자는 영상을 계속 봤다.
다른 영상도 눌렀다.
"부동산으로 노후 준비하는 법"
"월세 한 채로 인생 역전"
"오십대도 늦지 않은 부동산 투자"
계속 봤다.
시계를 보니 다섯 시였다.
일어났다. 침실로 들어갔다. 남편은 여전히 자고 있었다. 평온한 얼굴이었다. 아무 걱정 없는 얼굴.
경자는 옷장을 조용히 열었다. 슈퍼마켓 근무복을 꺼냈다. 초록색 조끼. 십여 년 입은 것. 낡았지만 깨끗했다. 경자가 매주 빨았다.
욕실로 갔다. 세수를 했다. 거울을 봤다. 오십 넘은 얼굴. 피곤한 얼굴. 눈 밑 다크서클. 주름. 백발도 몇 개 보였다.
옷을 갈아입었다.
부엌에서 물을 끓였다. 커피를 탔다. 믹스 커피. 한 잔 마셨다. 달았다. 설탕이 많이 들어간 커피였다. 건강에 안 좋다는 걸 알았지만 마셨다. 아침마다 마시는 거였다.
가방을 챙겼다. 지갑, 휴대폰, 교통카드.
지갑을 열어봤다. 만 원짜리 몇 장. 오늘 점심 먹을 돈. 저녁에 장 볼 돈.
현관문을 열었다. 마당을 지나갔다. 작은 마당. 장독대가 보였다. 화분에 심은 봉선화가 보였다. 시들었다. 가을이니까. 대문을 열었다.
골목이 조용했다. 이 시간이면 다들 자고 있었다.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대구 남구의 오래된 동네. 재개발도 안 되는 곳. 하지만 경자처럼 알뜰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 곳.
큰길로 나왔다.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청소차가 지나갔다. 새벽 배달 트럭도 지나갔다.
걸으면서 생각했다.
주식은 실패했다. 천오백만 원 넘게 날렸다. 십여 년 모은 돈. 다시는 안 한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노후는 어떻게 하지.
남편은 몇 년 후면 정년이었다. 회사가 육십까지였다. 지금 쉰다섯. 오 년 남았다. 오 년 후면 월급이 끊겼다.
그때는 어떻게 하지.
국민연금은 얼마나 나올까. 남편은 한 달에 백만 원 정도. 경자는 칠십도 안 될 것 같았다. 슈퍼마켓 십여 년 일했지만 고용보험만 냈다.
둘이 합쳐 백칠십 정도.
그걸로 한 달을 산다? 이십 년을? 삼십 년을?
뉴스에서 말했다. 노후에 최소 한 달에 삼백만 원은 있어야 한다고.
백칠십.
부족한 게 백삼십.
어디서 구하지.
주식은 실패했다.
그럼 부동산?
부동산은 실물이니까 안전하다고 했다. 월세도 몸 안 움직이고 들어온다고 했다. 집값도 오른다고 했다.
지금 안 사면 못 산다고 했다.
슈퍼마켓이 보였다. 초록색 간판. '행복마트'. 십여 년 다닌 곳.
문을 열고 들어갔다.
불을 켰다. 진열대가 보였다. 상품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계산대로 갔다. 컴퓨터를 켰다.
창밖을 봤다.
날이 밝기 시작했다. 거리에 차들이 다니기 시작했다. 출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마스크를 쓴 사람들. 코로나 시대였다.
경자는 앞치마를 둘렀다.
하루가 시작됐다.
그런데 머릿속에는 여전히 그 생각뿐이었다.
부동산.
월세.
노후.
주식은 실패했지만 부동산은 다를 거라고.
실물이니까 안전할 거라고.
몸 안 움직여도 돈이 들어온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