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책빵의 기적
철학자 칸트는 산책을 즐겼다. 성인이 되고 나서 죽을 때까지 그는 일정한 시각에 일정한 루틴으로 일정한 장소를 거닐었다고 한다. 그가 집을 나서는 것을 보고 동네 사람들은 시계를 맞췄다. 그의 산책로는 영감과 사유가 출몰하는 자리였다. 다른 말로 하면, 사고다발(思考多發) 구역이었다.
나에게도 그런 사고다발 장소가 있다. 인생 오후에 접어들어 생긴 루틴이다. 아침 8시부터 가 있는 당구장. 스무 명 남짓한 시니어들이 고요히 공을 굴린다. 큐와 공이 맞닿는 소리, 공과 공이 부딪치는 소리, 간간이 터지는 웃음과 탄식이 전부인 세계. 이 고요한 전쟁터에는 온갖 지략과 전략이 횡행한다.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는 思考들이 근육의 일사불란함과 합을 이루지 못하면, 곧장 事故가 터진다. 노인들의 당구장은 정겨운 사고다발(事故多發) 구역이기도 하다.
나의 또 다른 사고다발구역은 동네 책방이었다. 도서관에서 나오는 길에 자주 들렀고, 졸음을 이기지 못해 발길을 돌릴 때면 큰길 가의 그 서점이 나를 맞아주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내부 수리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더니, 책방은 끝내 과일가게로 바뀌어 있었다. 동네의 유일한 책방이 사라지자, 나의 사고다발구역도 당구장 하나로 제한되고 말았다.
그런데 뜻밖의 순간이 찾아왔다. 당구장에서 한 골목 비켜난 건물 지하 1층, 책방이 새로 문을 열었다. 전보다 매장은 훨씬 넓었고, 문구와 책, 빵과 커피까지 어울린 작은 잡화점 같은 풍경이었다. 나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떠올렸다. 책이 있고, 학용품이 있고, 빵과 커피까지 있으니, 이곳에서 기적이 일어나지 말란 법이 없었다. 언젠가 책빵이 글빵이 되고 공부빵이 되는 순간이 올 거라고 믿었다.
기적은 실제로 일어났다. 당구를 마치고 들른 책방에서 신간 코너를 훑던 내 눈앞에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내 책 <광고에 말 걸기>와 <참견과 오지랖>이, 그것도 10권씩 가지런히 쌓여 있었던 것이다. 베스트셀러 코너에도 세권 이상 놓여 있는 일이 없었다. 신간 뉴스에 다소 무심할 듯한 주인장. 너무 파격이라 저자임을 숨기고 슬쩍 물어봤다.
"이 책은 왜 이렇게나 많이..."
“글쎄요, 어르신 한 분이 주문하셨네요.”
잠시 후 의문은 풀렸다. 당구장에서 얼굴을 익힌 어르신들이 두어 분 들어오신다. 책을 구입하고는 내게 싸인을 요청했다. 얼결에 ‘인생프로 ○○○님께’라 적고 그 아래 작은 글씨로 내 이름을 남겼다. 곧이어 매장 한켠 카페에서 ‘저자와의 대화’가 열렸다. 책값만큼 다과비가 들었지만, 그보다 값진 지출이 또 어디 있겠는가. 때마침 찾아온 소비쿠폰 찬스가 불러낸 기적 같은 사건이었다.
그 기적은 일주일 내내 이어졌다. 당구를 마친 어르신들이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책방으로 향했다. 나도 그들을 따라가서 사인을 하고, 대화의 시간을 나누었다. 특별소비 이벤트 마지막 날, 나 역시 책 다섯 권을 주문했다. 원소윤의 소설 <꽤 낙천적인 아이>. 동네 도서관에 구입희망 도서로 들여놓고는 정작 대출가능 기간을 놓쳤다. 그리곤 한 달 내내 차례가 돌아오지 않는 책이었다. 독서의 여운은 책을 선물하고 싶은 충동으로 이어진다. 몇 권은 내 책의 애독자들께 나눔을 할 생각이다.
이 책의 존재를 안 것은 페이스북에 장석주 시인이 남긴 짧지만 강렬한 독후감 때문이었다. 아침에 펼쳐 저녁 무렵까지 반쯤 읽다가 나도 페이스북에 짤막한 감상문을 올렸다.
원소윤의 소설을 읽다 보니, 다른 작품들이 불쑥불쑥 겹친다. ‘꽤 낙천적인 아이’의 발랄한 시선, 셰릴 스트레이드의 '와일드'가 보여주는 자기 탐험의 여정, '호밀밭의 파수꾼'의 고독한 악동의 반항끼와 위악. 그리고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세상 무심한 표정과 권태의 그림자. 이 연상들은 전혀 무관한 듯 보이지만, 내 안에서는 하나의 결로 모여들었다.
책을 읽는다는 건 텍스트와 나 사이의 만남만이 아니라, 그 순간 내 안에 저장돼 있던 기억과 감각, 다른 책들과 이미지들이 스파크처럼 터져 나오는 경험 같다. 낯선 도시에 혼자 여행 갔던 날, 호텔 창문 너머로 비스듬히 들어오던 햇살이 호퍼의 그림처럼 느껴졌던 순간. 대학 시절,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고 괜히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어 했던 밤. 그리고 몇 해 전 산길을 걸으며 ‘나도 언젠가 저렇게 길 위에 내 몸을 던져볼까’ 생각했던 순간들.
책은 이렇게 다른 책과, 또 내 삶의 한 장면과 이어진다.
원소윤의 소설은 단지 하나의 텍스트가 아니라, 다른 작품들과 은밀히 연결된 다리였던 셈이다. 그 다리를 건너며 나는 새로운 감각을 얻는다. 읽기는 결국 ‘연상’의 예술, 나의 세계와 작품의 세계가 엮이며 확장되는 순간이다.
사고다발구역은 이제 다시 늘어났다. 당구장과 책방. 思考와 事故가 교차하고, 기적이 불쑥불쑥 솟아나는 공간들.
칸트가 쾨니히스베르크의 거리를 걸었듯이, 나는 오늘도 당구장과 책방 사이를 거닌다. 그 길목마다 기적 같은 사고다발이 터지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