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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는 불행을 마주하고 나서야

무탈하다는 것은 축복의 다른 이름

by haru

눈뜨면 오는 아침, 투덜대면서도 갈 곳이 있는 안정적인 직장, 따스한 집과 나를 반겨주는 사랑하는 가족들, 곁에서 격려해 주는 친구들. 이 많은 것들이 한때는 당연히 주어지는 건 줄 알았다.


상실과 불행을 마주해보지 않았다면 바뀌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생각이다.

나는 상실을 통해 비로소 소중함을 느끼는 어리석음의 인간화였다.

무탈한 하루에 감사는커녕 지루하고 모든 것이 시틋해졌다. 재밌는 이슈가 생겼으면 했고, 하루걸러 하루는 다이내믹하길 바랐던 날도 있다.


머지않아 이슈가 생겼다. 안 좋은 쪽으로.

그날부터 수 일, 아빠가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병원에서 환자복에 슬리퍼 차림으로 몸을 떠는 낯설고 쇠약한 모습. 연신 나와 엄마를 보며 존댓말을 하고 수 십 번 인사하는 아빠를 마주하는 게 괴로웠다. 흐르는 눈물과 아리는 마음은 어떤 것으로도 치유될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위로가 아닌 버거움인 순간들도 많았다. 타인의 격려와 위로는 손에 쥔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사이로 다 빠져나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당시 나는 그다지 살갑지 않은 딸이었음에도 후회되는 것 투성이었다. 건강할 때 여행 한 번 갈걸, 짜증 내지 말 걸, 가슴 후벼파는 송곳같은 말 내뱉지 말걸.

존재에 대한 회의감이 들던 시간이 흘러 기적처럼 나의 아빠는 예전의 모습을 찾았지만, 다시 나를 알아보고 일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억겁의 인내와 눈물이 함께 했고 치유되지 못한 후유증도 우리 마음에 남았다.

그 과정을 겪으면서 늘 머릿속을 지배하는 생각이 있었다. 무탈하다는 것은 축복의 다른 이름이라는 것.


삶이 무료하게 느껴지고 지루하게 느껴질 때면 떠올려 주길 바란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결코 당연하지 않은 일상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만으로도 ,

적어도 지금보다는 행복에 자주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것을.


불행을 마주하고 나서야 깨닫는 참담한 어리석음이 반복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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